◎안생
1
한참이 된 것 같다
창 밖에서 가느다란 바람 스치며
내 귀가에 아버지 코고는 소리로 들린다.
2
초가집은 고요해 뒤창에서 스미는 해빛
밥은 다 지어지고 엄마는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3
꿈에 나는 또 고향에 갔더라
거기서
9월의 저물 녘, 아버지와 같이
조금씩 늙어가더라
4
산기슭 진달래 밭에선
여느 해와 같이
연분홍 꽃이 피였다 지고
꽃잎은 바람결에 날리고
굽이도는 개울물에 실려
멀리 가더라
5
머나 먼 그 봄날
바람이 두만강기슭을 스쳐갈 때
할아버지도 멀리 가셨단다
6
고향과 나를 버리고 멀리 가버린 봄날
다시 돌아오려나, 와서 이 부끄러운 얼굴 봐줄가
7
사랑스런 비술나무 못 본척 하는데
나팔꽃 콩꽃들아
너의 옛 주인 알아보느냐?
8
아버지의 발자국에 다져진 뜰
할아버지의 누런 책자, 약서랍, 작은 탁자
얼룩진 마루장과 처마밑 거미줄
저물 녘의 울타리
그리고 귀에 익은 아버지의 기침 소리......
9
얼마나 오랜 기다림이던가 이 사람들 속에서
이 대지에서 나는 다시 태여나련다
10
깊은 잠에 드신 할아버지
오늘 부끄러운 자손은
여기까지만 적어 올리나이다
엄마의 된장국이 나를 키웠더라
어릴 때
엄마는 항상 타이르듯 말했다
된장국을 많이 먹어라 그래야 힘이 세진단다
우리 된장에는 다섯 가지 맘이 있어
끈기, 오래 두어도 변하지 않는 성질
올곧음, 다른 것과 섞여도 변치 않는 맛
착함, 매운 맛도 부드럽게 하는 맘
어울림, 어떤 것들과도 함께 할 수 있는 너그러움
불성, 비릿한 냄새, 기름기도 없애는 힘
맑고 쓰린 그 나날
엄마는 된장국으로 나를 키웠다
그래서 내 깨우쳤더라
사람은 쉽게 변할 수 없지
참으로 좋은 사람은
넉넉한 가슴에 사악스러운 것 버리고
언제나 착한 켠에 서 있어야 하는 것을
제일 좋은 것 남에게 주고
넉넉한 맘에 그늘이 없어야 하는 것을
언제나 착한 켠에 서 있어야 함을...
编辑:안상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