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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이야기(171)  죽 한그릇에 담긴 13년의 정성

리전      발표시간: 2026-05-18 15:25       출처: 길림신문 选择字号【

대형기획계렬보도-백성이야기(171)  

죽 한그릇에 담긴 13년의 정성

—훈춘 본죽&비빔밥 리광일·구명화 부부의 가게 지킴 이야기

훈춘 본죽&비빔밥 가맹점 주인장  리광일·구명화 부부

훈춘 시내 중심가, 아침 6시가 조금 넘은 시간, 아직 거리는 조용하기만 한데 ‘본죽&비빔밥’ 가게 안은 벌써 분주하다. 젊은 사장 구명화(35세)가 오늘 쓸 재료를 손수 골라내고 남편 리광일(37세)이 칼질을 시작한다. 두 사람이 이 가게를 오픈한지는 벌써 13년째다. 

연변의 많은 료식업체의 신로교체가 빈번히 진행되는 요즘, 이 젊은 부부는 이 자리에서 죽 한그릇에 정성을 쏟고 있다.

최근, 기자는 훈춘 본죽&비빔밥 가게를 찾아 리광일·구명화 부부의 가게 지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고향의 부름, 꿈을 안고 돌아오다

안도현 명월진 농촌에서 농사 짓는 부모님 슬하 두 자매중 막내로 자란 구명화의 어린 시절은 넉넉하지 않았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가 재가해 갈 곳 없는 사촌오빠까지 함께 살다보니 가정형편은 풍요롭지 못했다. 공부 뒤바라지를 위해 자식들이 소학교 때에 한국에 로무를 간 부모님 덕분에 언니는 훌륭한 소아과 의사가 되였고 구명화는 안도현에서 초중을 졸업한 뒤 연변1중을 거쳐 동북림업대학교(할빈) 일본어전업을 졸업했다.

이른 아침부터 주방일군과 함께 바삐 돌아치고 있는 리광일, 구명화 부부. 

구명화는 졸업후 심양의 한국기업 SK C&C에 취직해 IT 개발자로 일하면서 남편 리광일을 만났다. 대련에서 대학교를 졸업한 리광일 역시 안도현 출신으로, 두사람은 입사 동기로 인연을 맺고 함께 미래를 그렸다. 신입사원의 얼마 안되는 수입으로는 동북에서도 내노라 하는 대도시인 심양의 높은 집값과 교육비용을 감당하기엔 빠듯했다. 

“심양에서 장기간 세집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인 판단이 서자 두 사람은 긴 대화 끝에 결혼후에 태여날 아이에게 안정된 환경을 마련해주고 아이의 성장과정을 함께 해주기 위해 귀향창업하자고 합의했다. 

량가 부모님 모두 해외에 진출한 경험이 있기에 그들은 돈도 중요하지만 아이의 성장과정에서 부모의 빈자리는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다는 사실을 더욱 절실하게 깨달았다. 하여 두 사람은 심양 생활을 과감히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훈춘서 귀향 창업의 꿈을 펼치다

안도 출신인 그들이 왜 훈춘을 꿈의 터전으로 선택했을가? 

구명화는 대학 입시 후 친구와 함께 훈춘에 놀러왔던 기억을 떠올렸다. “거리는 로씨야인들로 북적여 외국에 온 것 같았어요. 연변에서 연길 다음으로 류동인구가 많고 발전 전망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남편 리광일의 부모님 또한 일찍부터 로씨아 무역을 해오셨기에 국제도시 훈춘의 잠재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귀향창업을 하려면 료식업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남편의 외삼촌 내외가 연길에서 ‘본죽&비빔밥’ 가게를 운영하며 안정된 수입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병원 근처에 위치한 그 가게를 방문할 때마다 몸이 편찮은 손님들이 끊이지 않았고 “죽을 드시고 병도 나았다.”는 오가는 말들을 듣는 순간 두 사람은 이 아이템에 확신을 가졌다.

각기 자기의 역할을 분담하며 열심히 일하고 있는 리광일·구명화 부부의 일상이다.

“죽은 몸이 아픈 사람이나 먹는게 아니냐?”라는 통념을 깨고 본죽은 건강과 정성을 내세운 프리미엄 죽 전문점으로 자리매김되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이미 ‘죽의 대명사’로 불리우며 전국에 2,000여개 매장을 보유한 대형 프랜차이즈로 성장했다. 그 비결은 무엇보다 ‘정성’에 있었다. 구명화 부부는 이 점을 누구보다도 잘 리해하고 있었다.

2013년 11월, 두 사람은 본죽&비빔밥 가게를 차렸다. 로씨야 무역을 접고 귀국한 시부모님이 신혼집과 차를 마련해주시는 대신 창업자금 수십만원을 흔쾌히 내주셨다. “집과 차는 스스로 벌어서 마련하라”는 부모님의 뜻은 오히려 젊은 부부에게 더 큰 동기 부여가 되였다. 그들은 하루도 쉬지 않고 열심히 하여 1년 남짓 만에 본금을 전부 회수했다. 연변에서 연길외에는 훈춘밖에 없다보니 본죽 가맹점은 현지에서 꽤 유명한 가게로 자리잡았다.

정성으로 13년을 지켜온 부부의 꿈

개업 초기 반응은 예상을 훨씬 뛰여넘었다. 상업거리와 가깝고 외국인이 많이 머무는 호텔 근처를 립지로 선택한 덕분에 가게는 로씨야 외국 손님들이 반이나 차지할 정도로 북적였다. 시부모님의 류창한 로씨야어 실력 덕분에 로씨야 고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또한 한국에서 지명도 높은 브랜드답게 한국에 다녀온 고객들도 많이 찾아주었다. 현지에 거주하는 한국인들과 장사하는 남방 상인들도 단골이 되였다.

개업 초기부터 이들 부부의 철학은 분명했다. “인기 맛집보다 맛과 정성을 기본으로 우리 아이들이 먹는다는 마음가짐으로 정성을 다하자.” 요즘처럼 반조리 식품을 사용하는 가게들이 늘어나는 시대에 구명화 부부는 매일 아침 6시에 가게에 도착해 하루치 재료를 구입하고 준비한다. 저녁 9시가 되어서야 가게 문을 닫는 그들의 하루 일과는 고단하지만 그래서 더욱 믿음이 간다. 그들에게 가게는 단순한 직장이 아니다. 매일 온가족이 함께 출근해 식재료를 준비하고 아이에게 아침을 먹여 등교시키며 아이는 가게에서 숙제도 한다. 거의 집과 마찬가지이다.

현재 죽 종류는 개업 초기보다 더 늘여30가지, 비빔밥은 8가지를 보유하고 있다. 비빔밥 종류는 오히려 줄였는데 주력 메뉴에 집중하기 위한 선택이였다. 소고기야채죽은 남녀로소 불문하고 가장 많이 찾는 메뉴이며 팥죽, 호박죽, 전복죽 역시 인기가 많다. 비빔밥은 시장가격보다 다소 비싼 대신만 종류가 많고 재료도 푸짐해 나름의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

로씨아 고객들을 위해 세심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그들의 입맛에 맞춰 해물탕의 매운 정도를 조절해주고 비빔밥도 맵지 않은 순한 소스로 바꿔주었다. 이러한 정성이 입소문을 타면서 개업 초기 하루 100명에 달하던 손님들은 더욱 늘어났다.

스스로 마련한 영업집 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기고 있는 리광일·구명화 부부와 아들 리승준.

2019년 11월, 드디어 자체 영업집을 마련했다. 부모님의 도움도 있었지만 대출 없이 자신의 단독주택과 영업집을 마련했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큰 자부심이였다. 그러나 이후의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특수시기, 루블 가치 절하, 이웃나라 세관 페쇄 등 어려움이 련달아 덮치면서 훈춘의 거리는 조용해졌고 외국인 관광객들이 급감하면서 초기에 하루 100여명에 달하던 손님들이 지금은 수십명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배달앱이 주름잡고 소비수준이 급락하는 시기, 젊은층은 자극적인 맛을 선호하는 다른 식당으로 빠져나갔다. 현재는 중년층이나 로인들 위주로 찾아오고 있으며 젊은층들은 몸이 편치 않을 때나 배달앱을 통해 주문하는 실정이다. 그래도 그들은 견지하고 있다. 포기하지 않았다.

“지금은 예전 같지 않아 생활만 유지하며 가게를 지키고 있는 편입니다.”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구명화의 솔직하게 털어놓은 말이 마음 깊이 다가온다. 화려한 성공스토리만이 감동을 주는 것은 아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많은 자영업자들이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기에 그녀의 이야기는 오히려 더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다. 그 속에는 지역 사회와의 인연, 손님들과의 추억, 어려운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버티는 료식업주의 진솔한 모습이 담겨 있다.

본죽의 성공 사례에서 배울 수 있듯이 프리미엄 죽 전문점은 단순한 ‘아침 식사’가 아니라 ‘건강과 치유’의 이미지를 팔고 있다. 본죽이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죽을 ‘저가의 끼니’가 아닌 ‘나를 돌보는 시간’으로 포지셔닝하였기 때문이다. 구명화 부부의 가게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파는 것은 단순한 죽이 아니라 정성과 건강,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따뜻한 마음이다. 이렇게 그들 부부는 함께 13년동안 꿈을 지켜왔다.

평범한 지킴 속에 피여나는 보람

사실 이들 부부의 가게는 예전에 비해 ‘핫’하지 않다. 최근 경쟁이 치렬해져 근처에 새로 오픈한 조찬 가게가 가격도 저렴하고 메뉴가 다양하여 한족과 젊은층들의 인기를 많이 끌고 있다. 이에 대응해 소용기 포장 반반죽, 현지 입맛에 맞는 여름철 메뉴를 본사에 요청하여 출시했으나 현실적인 효과는 크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가게를 지키고 있다. 그 리유는 무엇일가?

“매일 아침 8시면 부모님께 우리 집 죽을 포장해가는 효자 고객이 있는가 하면 50원씩 하는 전복죽만 농촌에 계신 아버지께 포장해드리는 딸도 있고 된 감기에 걸려 ‘죽을 번’ 했는데 우리 집 죽을 먹고 다시 살아났다면서 롱담하시는 로인분들도 계십니다. 이 모두 것이 우리가 어려움 속에서 견지할 수 있는 가장 큰 보람입니다.”구명화 사장의 말이다. 특히 아침 8시면 어머님께 죽을 포장해가는 분이 죽 량이 한끼 먹기에는 많지만 두끼 먹기에는 적다는 말에 이들 부부는 돈을 추가하지 않고 량을 추가해 두끼 분량으로 포장드린다고 한다. 여러가지 맛으로 하루도 거른 적이 없다는 그 정성에 부부는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맛도 좋고 깔끔한 환경의 가게에서 음식을 맛보고 다음을 기약하는 외지 관광객 조선생 일가

“13년 가게를 견지해오다 보니 어린 고객들이 가게 음식을 먹으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습니다. 외지의 대학교에 갔다가 방학하여 돌아오는 딸이 기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음식을 준비해달라는 단골의 전화, 외지에서 공부를 마치고 오면서 ‘우리 집 음식이 가장 그리웠다.’는 아이의 말… 이런 작은 순간들이 오늘까지 어려운 시기를 버텨내며 견지해오게 하는 동력입니다.”라고 말하는 남편 리광일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피여있다. 

“우리가 평범한 일상을 견지하며 우리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십여년간 가정을 지켜오면서 아들의 교육에 아낌없이 투자할 수 있어 너무 기쁩니다.”

13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들 부부의 역할 분담은 뚜렷하다. 섬세한 남편은 가게에 있는 시간이 길어 주방과 료리사 역할, 재료 관리를 맡고 구명화는 홀 서빙 위주로 하면서 주방일을 겸한다. 아이를 키우느라 손이 많이 가고 가게를 지키지 못할 때면 남편이 묵묵히 자리를 지켜주었다.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모든 일을 손수 해왔다.

가끔 외지에서 리더로 성장한 친구들을 보면 큰 도시 생활이 그립고 “청춘을 작은 도시에서 랑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무럭무럭 커가는 아들을 보면 모든 것이 만족스럽다는 이들 부부이다.

“창업은 도전과 기회가 가득한 려정입니다. 지름길이 없고 오직 신념, 끈기, 끊임없이 학습하려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함께 화이팅 합시다!”라고 예비 창업자들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전했다. 

“다양화한 음식점으로 개인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로 발전시키는 것이 목표입니다.”라고 이들 부부는 밝혔다. 

리광일·구명화 부부의 오늘은 훈춘의 작은 가게에서 아침 6시의 정성으로 시작된다. 평범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당당하게 그들의 정성은 오늘도 훈춘시민과 관광객들의 위를 따뜻하게, 포근하게 해주고 있다.

/리전기자

编辑:유경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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