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경의 작은 마을 삼합진에서 듣는 향촌진흥의 생생한 노래
【편집자주】
본 보도는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룡정시 삼합진에서 펼쳐지는 향촌 진흥 실천을 통해 중화민족공동체의식이 어떻게 변경 기층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지를 조명하고저 한다. 한족, 다우르족, 쫭족, 투가족, 만족 등 여러 민족 서부계획 대학생 봉사자들이 륙속 마을에 찾아와 기층 건설에 합류하면서 원래 조선족 촌민이 대부분이던 삼합진은 현재 다민족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아름다운 향촌으로 거듭나고 있다.
제1장 귀향 ,정착과 공생의 하모니
◎ 백년 마을-삼합진으로 가보다
룡정시에서 동남쪽으로 50km 떨어진 변경마을 삼합진.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조선과 마주한 이 작은 마을에 최근 새로운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다. 한적한 산촌에 젊은 감각의 커피숍이 문을 열었는가 하면 민박 시설이 생겨났으며 관광 기반 시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 마을이 젊어졌어요.” 주민들의 이 소박한 감탄은 삼합진이 맞이한 새로운 시대를 고스란히 담아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룡정에 속하는 삼합진은 두만강의 물결 따라 66.8km의 변경선을 가지고 있으며 마을 력사는 백년도 더 거슬어 올라간다. 삼합진은 송이버섯으로 유명한 동네일 뿐만 아니라 입쌀과 사과배 등 특산품으로도 이름을 떨치며 명실상부 ‘산 좋고 물 맑은 고장’이다. 자연 매력과 지역 별미가 넘쳐나는 삼합이였지만 한때는 G331국도 변의 조용한 산간마을에 불과했다. 젊은이들의 대도시 이동으로 인한 인구 구조의 변화, 제한된 촌 집체수입, 단일한 산업 구조 등 여러 과제를 안고 있었던 것이다.

상쾌한 공기와 목가적인 풍경이 고요한 힐링을 안겨주는 북흥촌, 이 마을에도 커피숍과 민박이 들어서며 들썩이고 있다.
그러던 삼합진이 최근 국가의 향촌 진흥 정책 지원과 ‘서부계획’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의 류입, G331 변경 관광 대동맥의 활성화 등 동풍을 타고 새로운 활력을 얻고 있다. 마치 철새처럼... 고향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이들의 발걸음과 다양한 지역에서 찾아온 젊은이들의 열정이 삼합진 당조직의 인솔하에 조화롭게 어우러지며 다민족이 조화를 이루는 융합의 장이 열리고 있다.
“삼합진의 변화는 단순한 경제 발전이 아닙니다. 바로 여러 민족이 함께 어우러져 서로를 존중하고 도와가며 공동으로 발전해가는 과정을 통해 중화민족공동체의식이 실제로 구현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삼합진은 이러한 융합의 기반을 바탕으로 현재 갖고 있는 관광업 잠재력을 충분히 방출하면서 G331이 경유하는 삼합구간을 가장 아름다운 변경 명품 관광로선으로 발돋움 시켜보렵니다.” 삼합진당위 서기 박호범의 다부진 전망이자 욕심이다.
◎ 타향에서 피는 고향의 꽃
삼합진은 예로부터 교육열이 높아 “소를 팔아서라도 자식을 공부시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교육을 중시해왔다. 이 외진 변경마을에서는 많은 우수한 인재들이 배출되였다. 지금 전국 방방곡곡과 해외까지 퍼져나간‘삼합인’들이 마치 철새처럼 고향을 떠나 먼 타지에서 새로운 삶을 일구면서도 고향과 세계를 련결하는 문화적·경제적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절강성 림안시에서 3대째 이어온 죽염제조 기예를 전승하고 있는 김성섭의 이야기는 삼합인들이 고향을 떠나 새로운 터전에서 성공을 거둔 전형적인 사례이다.
1959년 삼합에서 태여난 김성섭은 어릴 적부터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서 죽염제조 기술을 배웠다. 1980년대초, 35세에 이르러 이 기술을 바탕으로 창업을 결심하였고 죽염 제조에 적합한 절강성 림안구 청산호가두 홍촌촌에 공방을 열게 되였다. 림안의 자연환경과 풍부한 대나무 자원을 활용하여 선대의 전통 기술을 발전시키고저 했던 그의 열망은 1999년 ‘림안 삼화원 죽염식품공장’ 설립으로 결실을 맺었다.
김성섭 한사람, 한손, 한땀으로 시작한 그의 회사가 지금의 규모로 성장하기까지, 그 수십년의 세월에 고난이 없었겠냐만 그는 “목표가 있으면 그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고 인생 신조를 터놓으며 “이젠 생각도 안난다.”며 웃어 넘겼다. 그러나 낯선 타향에서 창업하며 겪은 시행착오와 좌절, 그리고 외로움의 나날들은 한두마디 말로는 담아낼 수 없는 무게이다.
그렇게 끈질기게 파고든 그의 노력은 마침내 세상의 인정을 받았고 타향에서 고향의 민족전통기예가 끝내 뿌리 내리고 꽃을 피웠다. 2015년과 2018년, 그는 각각 림안시와 항주시 시급, 그리고 절강성급 무형문화유산 대표성 전승인으로 등재되였으며 2025년에는 그가 일군 ‘삼화원’이 ‘제2진 절강성급 무형문화유산 공방’이라는 영예칭호를 품에 안았다.

김성섭 씨가 일군 ‘삼화원’은 이 지역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인정받고 있으며, 지역의 일자리 창출을 이끄는 등 더불어 지역 경제 활성화와 공동체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사진 본인제공
3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면서 김성섭씨는 이곳에서 낯선 이방인으로 부터 이 지역의 진정한 ‘구성원’이 되였다. 김성섭은 나고 자란 삼합을 제1 고향이라 부르며 이제는 림안을 제2의 고향이라고 말한다. 긴 시간동안 변함없이 지켜온 그의 김성섭씨의 착실함과 꾸준함을 지켜본 동네 사람들은 그를 형제처럼, 때로는 가족처럼 온전히 받아들였다.
현재 김성섭은 대부분의 업무를 딸과 사위에게 맡기고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죽염을 알리는 데 쓰고 있다. 그는 “내 작은 노력으로 더 많은 분들이 죽염의 독특한 가치를 리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소회를 전했다.
그의 성공은 고향을 떠나 새로운 곳에 터전을 잡은 삼합인들이 현지인들과 함께 고향의 전통 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상감식 융화를 보여준다.
◎ 귀향과 창업, 현장에서 일구는 실질적 변화
이처럼 련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는 ‘철새’들이 있는 한편, ‘유자’들의 귀향 창업 또한 삼합진의 활력을 높이고 있다.
학서촌 촌서기 김철규(1975년생)는 해외와 외지 생활을 경험한 후 2011년 고향으로 돌아온 ‘귀향 철새’이다. 학서촌에서 나고 자란 김철규는 촌의 전임 서기였던 김서기가 고향에 와서 함께 잘 살아보자고 설복해서 귀향을 했다고 말하나 그 기저에는 고향에 대한 애정이 깔려있었다.
귀향후에는 모래공장도 운영하고 사과배 판매에도 도전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그러다 2022년부터 촌의 회계 업무를 맡게 되였고 이어 촌주임으로서 고향 발전에 본격적으로 힘을 쏟기 시작했다. 지금은 촌서기로서 촌민들과 함께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고향에 대한 애정을 안고 귀향을 선택한 김철규는 촌민들과 함께 잘 살고 싶다고 했다.
그가 촌주임으로 취임했을 때 마주한 과제는 마을의 자랑인 사과배, 입쌀, 송이버섯이 제값을 받지 못하는 문제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영항농산품합작사를 설립했다. 단순히 농산품을 대리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과거 광고회사에서 일한 적 있는 경험을 살려 ‘왕훙 마케팅’과 틱톡 라이브방송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홍보를 꾀했다. 또한 등급 관리와 고급화 포장을 통해 제품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한편,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믿음으로 지역 농산품의 브랜드화에 주력하고 있다.
“촌간부를 비롯해 학서촌민위원회의 전폭적인 지지와 우리 촌민들의 협력 덕분에 지혜를 모아 혁신적인 방안을 모색중”이라고 밝힌 김철규, “아직 신생 소기업이라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단계여서 데이터로 보여줄 만한 큰 성과는 내지 못했다.”며 겸양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촌민들 손에 적치되여 있던 사과배나 입쌀을 사들여 대신 판매해주어 촌민들의 판매난를 해결해준다든가, 고급화 제품 전략을 꾸준히 추진해 학서촌 특산물의 시장 인지도를 높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노력은 수자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값지다고 동네 사람들은 입을 모아 고마움을 표했다.
더우기 그의 노력은 이러한 성과와 함께 촌민들의 인식 변화를 이끌어냈다. 학서촌 제1서기 진설송은 “김철규 촌주임이 앞장서서 노력하는 모습이 마을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서 그의 선도적 역할을 높이 평가했다.
◎ 여러 민족 공동체, 소통과 협력으로 다지는 조화
취재를 다니면서 확인할 수 있었던 바, 이렇듯 곳곳에서 꽃을 피우는 삼합진의 변화는 개인의 노력만이 아니였다. 다양한 민족이 함께 어우러진 협력의 결과물이라는 걸 길림성 식량및물질비축국에서 파견된 진설송 제1서기의 입을 통해 료해할 수 있었다.
진설송 제1서기는 조선족이 대부분인 학서촌에서 유일한 ‘한족 간부’이다. 그런 그가 기자의 취재에 응하면서 제일 먼저 건넨 한마디가 바로 “이곳에서 대화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는 없다.”는 것이였다. 취재 도중에도 그는 소통의 힘을 거듭 강조했다.

조선족이 대부분인 학서촌에서 유일한 ‘한족 간부’라고 웃은 진설송 제1서기는 그러나 이 마을에서 대화로 해결 못할 일은 없다며 애정을 드러냈다.
“나이 많은 어르신들과는 언어상의 어려움이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거의 3년 함께 생활하다보니 이젠 손짓만 봐도 말뜻을 읽을 수 있겠더라구요. 더군다나 이 마을 촌민들은 저를 외지에서 온 파견간부로 생각하지 않고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으로 생각해준다는 겁니다.”
이러한 소통과 협력은 학서촌의 다민족 대학생 자원봉사자팀(다우르족, 쫭족, 투가족, 만족, 한족 구성)의 일상에서도 생생하게 드러난다.
한번은 마을의 한 77세 독거 로인이 급병으로 쓰러졌는데 촌 간부와 전역 군인, 이웃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외지에 있는 로인의 가족과 련락을 취하는 한편 한밤중에 로인을 병원에 호송하고 밤새 번갈아가면서 로인을 돌봐주었다는 훈훈한 미담이 있다.
이 로모의 아들은 “저는 쉰이 넘었지만 고향을 떠난 지 오래되여 어머니 병간호를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아들보다 주변 분들의 정성이 더 깊었습니다.”라는 내용의 감사 편지를 전했다. 고향땅에 뿌리내린 따뜻한 공동체 문화 덕분에 타지에서 시름놓고 일할 수 있게 되였다고 많은 이 마을‘아들’들이 입을 모았다.
이 마을에서는 서로 돌보며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끈끈한 뉴대가 이미 형성되였다. 젊은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은 어르신들의 스마트폰 사용법을 알려주거나 말동무가 되여주며 ‘봉사자’보다는 ‘손자, 손녀’처럼 지낸다.

대학생 자원봉사자 포모함은 내몽골에서 온 다우르족이다. 동네 어르신들을 살뜰히 챙기는 포호함을 어르신들은 우리 ‘손녀’라고 부른다.
“순박하고 근면한 우리 마을 주민들의 정신에 되려 감동받았다.”라고 말한 진설송 서기는 “올해로 파견 임무가 만기되여 원래 직장으로 돌아가지만 서로의 선한 영향력 속에서 나날이 조화로와지는 학서촌과 함께 한 3년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고 거듭 강조했다.
더불어 학서촌은 길림성의 시범촌으로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며 현대적 향촌 진흥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두만강이 흘러지나는 이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이제 더 넓은 공간으로 확장되고 있다. 김성섭의 죽염 사업과 김철규의 농산품 브랜드화 노력은 삼합인들이 고향과 세계를 련결하며 창출하는 경제적 가치를 보여준다. 그들의 노력과 성과는 개인의 성공을 넘어 공동체 전체의 발전으로 이어지며 서로 융합되여 다민족이 조화를 이루고 융화하는 아름다운 사회적 풍경을 이루고 있다.
/길림신문 유창진 김가혜 김영화 기자 영상 정현관 기자
编辑:유창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