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계를 뛰여넘어 완벽한 꿈을 일구는 조선족 농민 박정선의 이야기
7월 한여름, 이글거리는 태양이 구불구불한 시골길 우로 쏟아져내렸다. 55세 조선족 농민 박정선은 굳은살이 박인 거친 손으로 옆에 놓인 드론을 어루만지며 기자들에게 ‘하늘의 조수’가 가진 놀라운 능력들을 차근차근 설명해줬다. 그의 왼손 끝 세 손가락은 온전하지 못했다. 젊은 시절 사고로 남겨진 흔적이였다. 하지만 그는 바로 그 손으로 최첨단 농기계를 능숙하게 다루며 비옥한 흑토지 우에 새 시대 농민의 이야기를 새겨가고 있었다.
초보 농부의 눈물겨운 도전
박정선은 길림성 교하시 오일촌 하와자툰(夏洼子屯) 토박이로, ‘교하시박정선가정농장’의 주인이다. 젊은 시절 그는 꿈을 안고 고향을 떠났다. 2006년 한국으로 건너가 로동자로 일했던 것이다. 2012년 그는 가족이 그리워 귀국했고 쌓아온 경험과 자본을 바탕으로 가구 제조업, 식품 류통업, 양 사육업까지 다양한 분야에 도전했다. 하지만 여러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그는 자신이 태여나고 자란 이 농촌 땅에서 ‘농업’을 평생의 업으로 삼기로 마음을 굳혔다.
하와자툰은 예로부터 조선족들이 모여 살던 활기찬 마을이였다. 전성기에는 300여 가구가 이곳에서 살았다. 그러나 개혁개방 물결 속에서 많은 주민들이 언어 장점을 살려 청도, 상해 등에서 통역 일을 하거나 한국으로 일하러 떠났다.
“이렇게 좋은 땅이 그냥 황무지로 되는 걸 볼 수만 없었습니다.” 박정선의 목소리에는 깊은 안타까움이 배여있었다. 그래서 그는 촌민들이 버려둔 토지를 임대하기로 결심했다. 처음 100무에서 시작해 점차 규모를 늘려 현재는 300무를 관리하고 있다. “일단 시작한 일은 제대로 해야죠. 500무까지 도맡았지만 나이가 들면서 300무 정도가 딱 적당합니다. 무리하지 않으면서도 정성껏 농사 지을 수 있는 규모거든요.”
물론 농사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였다. 초보 농부였던 박정선은 처음에는 옥수수 재배만 알 뿐이였다. 작물에 병이 생기면 잎사귀 몇 장을 따서 부랴부랴 농약상을 찾아가 조언을 구해야 했다. 그때마다 그의 눈에는 풍년에 대한 간절한 바람이 서려있었다. 수익을 높이기 위해 딸기, 참외 같은 고부가가치 작물 재배에도 도전했다. 하지만 재배 규모가 커질수록 문제점들이 드러났다. 전통적인 인력 중심의 농업 방식은 효률이 낮고 비용은 높았다. 특히 비료를 뿌릴 때 사람 손으로는 정확한 량 조절이 어려웠다. 고르지 못하게 뿌려진 비료는 랑비될 뿐만 아니라 작물 생장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박정선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농장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과학기술의 힘을 빌려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드론을 어루만지며 기자들에게 ‘하늘의 조수’가 가진 놀라운 능력을 차근차근 설명해주는 박정선
55세에 선택한 첨단기술과의 동행
2024년, 박정선은 신중한 고민 끝에 드론 한대를 구입했다. 첨단 장비를 다뤄본 경험이 전혀 없던 그에게는 결코 작지 않은 도전이였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독학한 끝에 마침내 드론 조종 자격증을 따냈다. 자격증을 손에 쥔 순간, 그의 얼굴에는 성취감 넘치는 환한 미소가 피여났다. 마치 온 세상을 향해 당당히 선언하는 듯했다. “이제 나 박정선도 첨단 농기계의 ‘날개’를 마음대로 펼칠 수 있게 됐다!”
이제 박정선은 드론으로 자신의 농장에 정밀하게 비료를 살포할 뿐만 아니라, 린근 농가들까지 드론을 리용해 비료를 살포해 주고 있다.“스마트폰으로 간단히 조작할 수 있고, 비료 량도 정밀하게 조절됩니다. 장애물을 만나면 자동으로 피해가고요. 작업시간과 인건비를 대폭 절약할 수 있어서 이제 혼자서도 농장 관리를 완벽하게 해낼 수 있어요.”
특히 그는 정부의 농업 지원 정책에 깊은 감사를 표했다. “드론을 구매할 때 1만 4천원의 보조금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다른 농기계들도 혜택을 받았습니다. 이런 정책들이 우리 농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있어요. 덕분에 파종부터 수확까지 모든 과정이 획기적으로 빨라졌습니다.”
신뢰받는 ‘사장’이 된 농부의 또 다른 소명
농장 운영 외에도 박정선은 하와자툰의 총책임자 역할을 맡고 있다. 대부분의 조선족 주민들이 장기간 외지에 나가 있어 마을 일을 처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주민들은 일이 생기면 항상 박정선을 먼저 찾는다. 증명서 발급부터 각종 서류 수령, 대리 업무까지… 어떤 일이든 그는 한 번도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도와주었다. 모두들 그를 친절히 ‘사장’(社長) 이라고 부른다.“이렇게 믿어주시는데 저야말로 영광이죠.” 그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웃들의 인정과 신뢰에서 오는 진정한 기쁨이였다.
다른 주민들처럼 외지에서 일하지 않고 고향을 지키는 리유를 묻자, 박정선은 사고로 상한 왼손을 내밀며 환하게 웃었다.
“이 손으로는 정교한 작업은 어렵지만 농사일은 신심있어요. 무엇보다 우리 고향을 지킬 사람은 있어야 하잖아요. 고향의 땅이 살아있어야 우리 아이들도 미래를 볼 테니까요.” 밭둑에 앉아 무의식중에 다리를 주무르던 그의 해볕에 그을린 얼굴에는 농민 특유의 순박함과 우직함이 배여있었지만, 목소리에는 확고한 의지가 묻어났다. 마치 오랜 세월 농촌에 뿌리내린 나무처럼, 자신을 키워준 이 땅을 묵묵히 지켜내며 고향의 번영을 위해 헌신하고 있었다.
논밭에서 일하는 박정선의 분주한 모습은 드론과 어우러져 현대적인 농업 풍경을 그려냈다. 그는 전통적인 농민에서 ‘기술 농민’으로 거듭나는 생생한 실례이자, 향촌진흥전략을 충실히 실천하는 선구자이기도 하다. 정부의 든든한 지원과 개인의 끊임없는 노력이 만나 황페해질 번 했던 흑토지에 다시 생명력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희망으로 가득 찬 들녘에서는 박정선과 같은 수많은 농민들이 근면과 지혜로 새시대 농촌 발전의 아름다운 교향곡을 연주하고 있다.
/길림신문 손맹번, 최화, 김명준, 주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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