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정희
30년 가까이 이어온 직장 생활이 끝났을 때 나는 스스로가 사용 기간이 만료된 물건처럼 느껴졌다. 아침마다 출근하며 맞이하던 그 익숙한 패턴이 사라지자 시간은 무겁게 흘러갔다. 서재에 쌓인 책들, 창가에 놓인 커피잔, 텔레비죤에서 흘러나오는 드라마... 모든 것이 무미건조하게 느껴졌다. 그때까지 나는 ‘직장인’이라는 타이틀에 가려 정작 내가 무엇을 좋아 하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책장을 정리하다 서재 구석에 놓인 오래된 책들 사이에서 《길림신문》을 발견했다. 그동안 구독만 하던 신문이였는데 시간적 여유가 생기니 내 글도 한번 발표해 보면 안될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노트를 꺼내 들고 오래전부터 마음에 품고 있던 로년의 감정을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한줄 한줄 적어 내려가는 시조는 마치 돌을 깎아 조각품을 만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시조 10편을 완성하고 원고를 《길림신문》 편집부로 보냈다. 처음으로 시조 10편을 써서 투고했을 때의 마음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그중 <로년의 삶>이라는 제목으로 쓴 시조는 로년의 외로움과 함께 찾아온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를 담아내려 애쓴 작품이였다. 원고를 보내고 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과연 내가 쓴 작품이 실릴까?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으면 어쩌지 하면서 걱정 반 기대 반이었다. 그 순간부터 마음은 조각조각 흩어지는 것 같았다.
매번 《길림신문》이 발표 될 때마다 문학판을 펼쳐 보았다. 한주, 두주, 한달, 두달이 지나도록 내 작품은 보이지 않았다. 아, 역시 내 글은 부족한가 보다 하며 실망하고 있을 때 쯤, 2024년 12월 17일 신문종이 위에 활자로 박힌 내 이름 석자와 <로년의 삶(외 3수)>가 실린 것을 보았다. 그 순간, 눈앞이 흐릿해 졌다. 손가락으로 글자를 더듬으며 몇번이고 다시 읽었다. 마치 어린 아이가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써본 것처럼 그 기쁨은 순수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나의 첫 시조가 발표되던 날은 지금도 기억이 또렷하다. 내가 쓴 글이 세상에 나갔다는 사실이 너무나 뿌듯했고 내 마음에 이렇게 정겹게 다가올 줄은 몰랐다. 정말 꿈만 같았다. 무엇이나 처음이란 것에는 설레임이 있나 보다. 처음 받아본 원고료도 역시 설레임이였다. 돈이 아닌 마치 문학상이라도 받은 듯한 성취감을 느꼈다
첫 작품이 실린 후 나는 조금씩 변해갔다. 주변 풍경을 바라보는 눈이 예전과 달라졌다. 길녘에 핀 들꽃, 지나가는 로인의 표정, 아침 이슬에서도 시적인 순간을 발견하려고 애썼다.
《길림신문》에 두번째 투고한 수필 <석양의 빛은 왜 아름다운가?>는 빛을 잃은 순간조차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석양처럼 내 인생 한 구석에 남은 하얀 여백에 나의 모든 순간이 빛나기를 소망해 보는 글이였다. 투고한지 얼마 안되여 《길림신문》편집부에서 소식이 왔다. “선생님 글 잘 읽었습니다. 다음 달에 실을 예정입니다.” 그 말씀은 나에게 마치 프로 작가 같은 대우를 해주는 것 같아 흥분 상태에 빠져 들었다.
《길림신문》은 나에게는 단순히 구독 신문이 아니다. 단지 글을 실어주는 매체가 아니였다. 그 곳은 내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이자 나도 글을 쓰면서 무언가를 남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었고 늦게 시작한 문학이지만 노력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빛을 발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친구같기도 하다.
글을 쓰는 것은 이제 단순한 취미를 넘어 내 삶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가진 일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종이 우에 내 이름이 활자로 찍혀 나올 때마다 나는 다시 태어나는 기분을 느끼며 신문지상에 피여난 내 인생의 두번째 꽃 향기를 느껴본다.
编辑:안상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