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어금
눈보라 쉬여가는
빈 가지 우로
피여선 떨지 않는 불꽃 하나
그 붉은 입술이
겨울의 긴 침묵을 깨고
생명이라는 이름의
첫 언어를 토해낸다
얼음장 같은
아픔을 뚫고 나온
그 진한 피빛만이
세상의 텅 빈 심장에
봄을 북돋운다
하얀 설원 우에
고난의 날개가 펼쳐지니
비로소 눈부신
탄생이 되여 선다
노란 매화꽃
꽁꽁 언 대지 우로
해오름 빛 몰고 와
눈 속에 묻힌 봄을
깨우는 작은 등불
찬바람 흔들어도
떨어지지 않는
저 금빛 약속은
미리 도착한
따스한 봄날의 예언
아직 남은 서리에도
꺾이지 않는 저 기운
하나 둘 모이는 노을빛 속에
온 겨울 내 참아왔던
세상의 설렘이
부풀어 오르는 봄의 눈(眼)이 되여 서 있다
흰 매화꽃
하얀 침묵으로 덮인
겨울의 가슴팍에
눈보라보다 더 차가운
고독 하나 피워내니
세상의 욕심 잊고
오직 맑음으로만
겨울을 앓은 그 자리
아무도 모르는
청렴이 서리다
저 혼자 떨며 지킨
소복한 절개 끝에
비로소 걷히는 눈물
내 마음의 먼지까지
그 하얀 꽃잎이
닦아내고 지나가네
새 생명의 노래
아픔의 터널을 지나
비명과 찬양이 한데 엉켜
불러온 이름, 생명
미지의 세상
첫발을 내디딘 그대
눈부시게 하얀 종이 우에
담대한 첫 획을 그린다
지난 계절의 맺힌 서리발도
어머니의 젖줄기처럼
이제는 윤기있는
삶의 언약이 되여
타오르는 작은 심장
그가 들이 마시는 숨결마다
온 세상은 재빛 잠에서 깨여
푸르게 설레기 시작한다
编辑:안상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