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급 무형문화유산 조선족장고춤 제5대 대표성 항목 전승인 박성섭의 이야기

북소리에 깃든 꿈
1976년, 열여섯살 소년 박성섭은 인생에서 처음으로 조선족장고춤의 울림을 마음속 깊이 담았다. 그 소리는 마치 장백산 계곡을 흐르는 맑은 시내물처럼 청아했고 두만강의 흐름처럼 힘차고 유장했다. 배움을 시작한 그 순간, 그는 이 북소리가 단순한 악기가 아니라 조선족의 령혼이 담긴 문화의 메아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어린 시절, 그는 지역에서 유명한 장고춤 애호가였던 어머니를 따라다니며 장고를 치고 춤추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랐다.
박성섭은 중학교 때 학교 무용반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무용을 배우기 시작했고 대학은 연변대학 예술학원 무용과를 선택해 체계적인 무용 리론과 기예를 익혔다. 졸업후 박성섭은 국가 2급 무용배우로서 무대 우에서 빛나는 순간들을 보냈다.

1990년대, 사회가 급변하며 새로운 문화의 파도 속에서 전통 예술은 점점 삶의 변방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우리의 장고소리가 잊혀진다면 우리 민족의 한가지 중요한 목소리를 잃는 것과 같습니다." 이 위기의식이 박성섭으로 하여금 단순한 예술가에서 문화 전승자로 거듭나는 결정적 계기가 되였다.
도전과 결심: '두만강장고춤전승예술단'의 탄생
1994년 5월 1일, 박성섭은 뜻이 맞는 동료들을 모아 두만강장고춤전승예술단의 전신인 예술단체를 세웠다.
당시에는 자원과 경비가 극히 부족했고 단원들은 순수한 열정으로 뭉쳤다. 그들은 공장 창고, 마을 마당, 학교 강당 등 어떠한 공간이라도 무대로 만들었다. 박성섭은 단장으로서 예술적 지도뿐만 아니라 조직 운영, 자금 모집, 대외 교류까지 전방위적으로 고민해야 했다.
그의 핵심 철학은 명확했다. "전통을 지키는 것은 박물관에 진렬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숨쉬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단순한 공연 복제를 거부했다. 대신 오래된 장고춤 예인들을 찾아다니며 구술과 시범으로 전해지던 동작, 장단, 의식을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정리했다. 그는 장고춤이 제사나 풍년 기원 등 민속 의식에서 비롯된 종교적·생활적 의미를 강조하며 무용 자체가 가진 이야기성과 정서 표현에 주목했다.

2007년과 2008년, 그의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장고춤이 성급 및 국가급 무형문화유산으로 차례로 등재된 것이였다. 이는 단순한 명예가 아니라 전승 작업에 확실한 정체성과 체계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계기가 되였다. 2021년 5월 30일, 예술단은 정식으로 등록되여 도문시문화라지오텔레비죤방송관광국 산하의 전승 단체로 자리매김했다. 두만강장고춤전승예술단은 국가급 무형문화유산인 장고춤과 칼춤을 중심으로 전승, 제자 양성, 공연, 연구를 아우르는 종합적 기능을 수행하면서 년간 60여차례의 공익공연을 통해 지역사회와 문화 혜택을 나누고 있다.
전승의 길: 무경계의 공동체를 향하여
박성섭의 전승 철학은 '열림'과 '공유'에 있다. 그는 장고춤이 조선족만의 유산이 아니라 중화민족공동체의 소중한 문화 보배라고 확신하고 있다. 따라서 두만강장고춤전승예술단은 일찍이 문호를 개방했다. 현재 40여명의 단원은 조선족 뿐만 아니라 한족, 만족, 회족 등 여러 민족들로 구성되여있으며 평균 년령은 58세이다. 이들은 직업, 나이, 민족을 초월해 '장고춤'이라는 공통 언어로 화목하게 소통하고 있다.
"가장 나이가 많은 제자는 70세가 넘었고 가장 어린 제자는 겨우 6살입니다." 박성섭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는 년령과 신분에 구애받지 않는 다양한 전승 방식을 주장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흥미로운 기초 교실을 열었고 사회구역에서는 중장년층을 위한 건강과 여가를 겸한 훈련반을 운영했다. 특별 강좌를 통해 리론과 력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위한 깊이있는 과정도 마련했다. 매년 300명 이상이 그의 가르침을 직접 받고 있으며 지금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장고춤 기예를 접한 사람은 무려 수천명에 이른다.
그의 지도 아래 예술단은 농촌, 사회구역, 양로원, 국경 검문소, 부대 등을 찾아가는 공익공연을 매년 60여차례 이상 진행하고 있다. 화려한 무대가 아니라 땀과 열정이 스며든 현장에서 진정한 문화의 따뜻함과 힘을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2012년, 그가 주도한 장고춤 기네스기록 도전 활동은 전국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대중의 관심을 폭발시켰다. 장고춤 공연과 전시를 통해 그는 단순한 기술 전수가 아닌, 문화적 자긍심과 공동체의식을 고취하는 데 힘썼다.
창조와 빛남: 전통에 새 시대의 생명력을 불어넣다
박성섭은 보수적인 수호자가 아니다. "전통의 혼을 지키되, 시대의 호흡을 담아야 합니다." 이것이 그의 창작 원칙이였다.
예술단의 대표 작품인 <두만강 고운>(图们江鼓韵), <장고소리>, <들끓는 두만강>, <민족단결의 꽃 피여나다>, <형제자매는 한가족>, <손에 손잡고>,<빈곤해탈 난관공략> 등은 전통 장고춤의 기본 동작과 장단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민족단결, 국가 발전, 시대정신과 같은 현대적인 주제를 담아냈다. 례를 들어 무용작품 <꿈속의 진달래>는 전통 민요를 현대적인 편곡과 무대 연출로 재해석해 2019년 건국 70주년 무용경연에서 금상을 따냈다. 그는 장고춤을 단독 공연에서 벗어나 <도혼>(刀魂), <도신>(刀神)등 칼춤과 결합하거나 현대 무용극, 무대극 등 다양한 예술 형식과 접목시키는 실험을 멈추지 않았다. 이를 통해 장고춤의 표현력을 확장하고 젊은 관중층의 공감을 이끌어내려 노력했다.


두만강장고춤전승예술단의 발걸음은 지역을 넘어 전국, 더 나아가 세계로 뻗어나갔다. 2007년 중국 성도 세계무형문화유산축제에 참가했고 길림성 및 연변주 '무형문화유산의 날' 행사, 각종 국가급 전람회 및 문화 교류 활동 참가를 통해 조선족장고춤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렸다. 중앙방송, 봉황위성, 《민족화보》 등 유명 매체의 지속적인 보도는 이 작은 변경 도시의 예술단이 가진 거대한 문화적 에너지를 전국에 널리 알렸다.
비전과 유산: 멈추지 않는 북소리
30여년의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박성섭과 두만강장고춤전승예술단이 만든 '조선족장고춤' 브랜드 효과는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조선족장고춤은 이제 중국을 대표하는 조선족 문화 브랜드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그는 결코 이에 만족하지 않는다. 고령화된 단원 구조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젊은이들의 지속적인 참여 의욕을 어떻게 자극할 것인가, 창작의 질을 어떻게 한단계 더 향상시킬 것인가, 시장과의 접목을 통해 자생력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앞으로의 도전은 여전히 거대하고 간고하다.
그러나 박성섭의 미래 비전은 명확하다. 전승 기반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전승기지'를 설립하고 체계적인 교육 교재를 편찬하여 장고춤 전승을 표준화·학술화하는 것이다. 또한 디지털 시대에 발맞추어 온라인 교실을 열고 미니영상 등을 통해 젊은 네티즌의 관심을 끌어들일 계획이다. '문화+관광' 모델을 적극 탐구하여 두만강지역 문화 관광의 살아있는 명함으로 조선족장고춤을 적극 내세우려는 타산도 하고 있다.

박성섭은 무엇보다도 조선족장고춤이 민족문화의 교량 역할을 해주길 희망하고 있다.
"이 북소리 속에는 조선족의 력사가 담겨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이 아름다운 생활을 향한 공동의 념원이 담겨있습니다. 우리는 이 소리로 중화민족공동체의식을 고취하고 아름다운 중국꿈을 함께 이루어가려 합니다."

오늘날, 박성섭의 머리카락은 이미 희끗희끗해졌지만 그가 두드리는 장고소리는 여전히 젊고 힘차다. 그의 손길은 장고를 두드릴 뿐만 아니라 한 민족의 문화 심장을 깨우고 다민족이 함께 하는 화합의 선률을 연주하고 있다.
박성섭과 그의 장고춤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그의 제자들과 더 많은 사람들의 참여와 전승 속에서 더욱 웅장한 문화의 합주곡으로 펼쳐질 것이다. 문화의 전승이란 과거를 보존하는 일이 아닌, 그 정수를 담아 미래를 창조하는 일임을 박성섭은 자신의 실천으로 증명하고 또 보여주고 있다.
/길림신문 안상근 기자
编辑:김가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