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영옥
올해《길림신문》 창간 40돐이라는 큰 생일을 맞으면서 그간 《길림신문》과 맺어진 인연을 돌이켜보면 무한한 감사와 응원에 힘입었다는 생각에 잠기게 된다.
내가 제일 처음 《길림신문》과 만난 것은 1989년도 가을이였다. 어느날 친구집에 놀러갔는데 《길림신문》이 눈에 띄였다. 그때 《연변일보》에 신문원고를 쓰고 있었던 나는 그 신문을 들고 이리저리 훑었는데 기자가 아닌 통신원들의 글이 실린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신문의 글들이 독자들의 구미에 맞았고 취미성도 깊었다. 나는 원래 이야기글을 쓰기 좋아하다보니 앞으로 내가 쓰는 글들이 많이 실릴 것 같았다.
(옳지, 나도 이 신문에 투고해야겠다.)
그로부터 며칠후 나는 내가 살고 있던 안도현 만보향병원에 가서 한 산부인과 의사를 취재했다. 사람들한테서 그 의사에 대한 평가가 아주 좋은 것을 여러번 들은 적이 있었기때문이였다.
그해 11월 25일 <그저 본분을 지켰을 뿐인데요>란 제목으로 내가 그 의사를 두고 쓴 인물통신이 《길림신문》에 실렸다. 그 첫 글이 실린 것이 나에게는 나래가 돋친격이였다. 그 이듬해인 1990년부터 나는 생활의 미감이 넘치는 이야기에 시선을 돌리고 낮에는 출근하기에 저녁이면 손전지를 켜들고 취재대상들을 찾아갔다.
그해에 <이름 없이 피는 꽃>, <뻐스안에서 벌어진 오락>, <한 로인의 추구> 등 다양한 소재로 글을 써서 신문에 보냈는데 써 보낸 11편이 몽땅 신문에 실렸다. 여기에서 달콤한 재미를 느낀 나는 그 이듬해에도 그냥 써서 보냈는데 적지 않게 실렸다. 그것이 나한테 무궁무진한 신심과 희망이 되였고 글 쓰는 재미로 세월과 달리기하노라니 생의 무늬가 별처럼 반짝댐을 느꼈고 날로 원숙의 경지에 이르게 되였다.
어느날 《길림신문》사에서 편지가 왔다. 급히 뜯어보니 김부심기자였다. 편지 내용인즉 자신이 아버지를 따라 만보향 금화촌에 하방호로 내려가서 몇년간 살았다고 하면서 만보중학교때 나하고 한 반은 아니지만 한 학년이였다고 했다. 그런데 난 조금도 인상이 없었다. 김부심기자는 어느때 연길에 오면 꼭 신문사로 찾아오라고 간절히 부탁까지 하는 것이였다. 그 뜨거운 열정에 감동된 나는 후에 일보러 연길에 갔다가 김부심기자를 만나려고 《길림신문》사로 찾아갔다. 학교에서 본 기억이 전혀 없어서 어느 기자분과 문의하는데 저쪽 책상에 앉아있던 웬 남자가 환한 기색을 하고 걸어오더니 내 손을 덥썩 잡는 것이였다.
“동창생 반갑구만요. 나의 두번째 고향이나 다름없는 만보에서 우리 신문에 글을 써보내는 사람이 있다니 참 기특해나더군. 더구나 동창생이 통신원이 된 것이 너무 자랑스럽고 영광이요.”
그는 몹시 반가워하며 오후에 예술극장에서 공연이 있는데 내 관람표까지 얻어놓았다면서 같이 가자고 했다. 그 덕분에 나는 처음으로 이름만 들어온 예술극장에 들어가보게 되였는데 안의 구조와 장식에 눈앞이 황홀경이였다.
글을 좀 썼다고 그렇게도 반겨주고 그렇게도 칭찬을 아끼지 않고 고무격려해주는 그가 어찌도 고마웠던지 오래오래 잊혀지지 않았다.
1997년 안도에 아동문학협회가 성립되여 회장직을 맡게 되면서 아동문학 창작에만 몰두하고 신문글은 적게 쓰다보니 한동안은《길림신문》과 더 가까이하지 못했다.
2020년에 나는 자서전 《비운의 마라토너》를 출판하게 되였는데 굴곡적인 나의 인생사를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으로 《길림신문》홍길남 사장님한테 전화로 신문에 몇편이라도 실어줄 수 없는가하고 문의했는데 먼저 글을 보내달라고 하셨다. 며칠후 홍길남 사장님한테서 회답이 왔는데 전부는 못 실어도 련재로 어느 정도 실어주겠다고 했다. 순간 나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듯한 기분이였고 또 얼마나 감사하고 또 기쁜지 몰랐다.
2020년 6월 20일부터 <얼룩진 운명의 시작>, <내가 찾는 은인>, <계몽스승>, <아버지의 묵직한 사랑>, <가슴 뭉클한 모성애>, <고마운 은사님>, <내가 만난 남편>, <엄마> 등 이렇게 8편의 수기가 련재로 《길림신문》에 실렸다. 내용에 사진까지 배합해서 실었다. 그때 편집을 맡으신 홍옥선생님은 자주 나한테 련락을 하면서 정성스레 심혈을 기울여 편집했는데 나보고 이렇게 련재로 수기로 실린 적은 처음이라고 알려주었다. 아, 눈물겹도록 고마운 일이였다. 겹겹이 아픔을 덧칠한 몸으로 걸어오다보니 힘들었던 심령이 세척되는 느낌이였다. 어찌 단지 글을 실어주었다고만 보랴? 그것은 한 불우한 녀인에 대한 배려이고 긍정이였다. 지금도 그 련재수기를 실은 신문을 볼 때면 얼굴조차 모르는 홍길남 사장님의 그 응원이 감사하고 홍옥선생님의 수고에도 고맙다는 생각이다.
나한테 감격스런 이야기는 이뿐만 아니였다. 2021년 7월 《길림신문》사에서 주최한 <사랑+릴레이> 계렬 공익프로젝트 행사에서 작품 <시아주버님을 널리 자랑합니다>가 금상을 수상하여 번듯한 영예증서까지 타게 되였다.
그동안 나는 《길림신문》과 모름지기 깊은 인연을 맺어왔다. 늘 보듬어주고 아껴주는 《길림신문》때문에 내가 더 높이, 더 멀리로 날지 못할 리유가 없을 것 같다. 《길림신문》을 더 없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더없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숨겨진 힘의 저수지를 활용하여 좋은 글들을 많이 쓰도록 노력하고 싶을 뿐이다.
编辑:안상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