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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문화유산순방] 조선족칼춤, 그 아름다움을 이어가는 사람들

      발표시간: 2026-01-30 09:35       출처: 选择字号【

- 칼춤 전승인 김향란, ‘챙챙’ 소리로 전하는 ‘칼’ 이야기

◎ 손에 칼을 잡고 추는 춤-칼춤

조선족칼춤은 길림성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여 보존 노력이 진행 중인 대표적인 전통 예술이다.

그렇다면 칼춤이란 어떤 춤일가? 사료에서는 칼춤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칼춤은 두 손에 짧은 칼을 잡고 연기하는 녀성의 춤으로서 검무라고도 한다.” 

원래 궁중에서 공연되던 무용이였으나 점차 민간에 전해지며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2007년에는 길림성인민정부로부터 제1차 성급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는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았으며 주요 전승 지역은 연변조선족자치주와 조선족 거주 지역이다.

칼춤의 기원이 궁중무용까지 거슬러 올라가다보니 초기에는 긴 칼날을 휘두르며 승리를 기리는 의미가 강했다. 그러다가 점차 예술적 표현으로 변화하며 민간에 뿌리내렸다. 특히 연변 지역은 다민족 융화와 교류를 형성한 력사적·문화적 배경을 지닌 곳으로 칼춤이 다양한 문화적 요소를 흡수하며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되였다. 주요 류전지역인 연변에서 조선족칼춤의 력사는 유구하다. 또한 무명문화유산인 칼춤에 대한 보호 사업에도 큰 힘을 기울이고 있다. 

연변가무단 소속 김향란(1972년생)은 조선족칼춤 제4대 전승인이다. 이처럼 조선족칼춤이 여러 세대를 거치며 계승, 발전 할 수 있었던 데는 이 예술문화를 지키고저 하는 문화인과 전승인들의 노력이 깃들어있다.

◎ 궁중의 칼, 민간의 춤이 되다

그렇다면 제4대 전승인인 김향란에게 조선족칼춤은 어떤 의미일가?

그는 첫마디로 “책임감’을 꼽았다. 그러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조선족칼춤의 매력을 알리고 싶다.”고도 표했다.

칼춤은 녀성 특유의 유연함과 남성적인 강인함이 한데 어우러진 독특한 동작이 특징이자 매력이다.

칼춤의 무대는 특별히 제작된 도구와 전통 의상이 만들어내는 시각적 조화로 눈길을 끄는데 공연에 사용되는 칼은 실제 무기가 아닌 특수 제작된 도구이다. 칼날과 자루를 절단한 후 철고리로 련결하여 칼날이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만들어 연기자가 칼을 돌릴 때마다 규칙적이고도 경쾌한 ‘챙챙’ 소리가 울린다.

칼춤을 출 때 연기자는 전통 복식인 치마저고리 우에 ‘쾌자’(전복)를 걸치고 머리에는 ‘전립’을 쓴 뒤 허리에 전대를 두르며 비단신을 신는다. 일반적으로 붉은색 비단치마에 검푸른색 갑사쾌자, 남색 전대, 초록색 신발을 착용해 색채의 대비를 통해 우아함과 활력을 동시에 강조한다.

기본 동작에는 칼 휘두르기, 칼 끼우기, 칼 교차 뽑기, 칼자루로 땅 치기, 팔뚝을 마주하며 칼 돌리기 등이 포함된다. 연기자는 춤추는 동안 칼날이 빛을 발하며 날리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며 칼을 휘두를 때는 힘찬 소리가 나도록 해야 한다.

칼춤은 녀성 특유의 유연한 움직임을 잘 반영해야 하며 동시에 강하고 힘있는 남성적인 동작이 결합되여야 한다. 이 춤은 상당한 팔의 힘을 필요로 한다.

팔로 칼을 조작하며 소리를 만들어내고 력동적인 힘을 표현해야 하는 무용이기에 김향란 전승인이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았지만 그보다는 책임감이 더 컸다.”고 말한 리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조선족 무형문화유산 ‘칼춤’을 지키는 사람들

그렇다면 전승인이 칼춤을 접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가?

그는 “제 예술인생의 멘토와 같은 송미라 선생님의 인도 아래 칼춤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배워가게 되였다.”며 말문을 열었다. 

김향란 전승인에게는 인생의 멘토와 같은 송미라 선생님(왼쪽)은 칼춤을 전승하고 보급하기 위해 노력하는 예술인중 한명이다.

여기서 잠간, 칼춤과의 인연을 얘기하려면 먼저 그의 예술인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춤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름다운 춤사위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기술 습득과 오랜 연습이 필수적이다. 

김향란 전승인의 춤 인생은 소학교 5학년부터 시작되였다. 그는 무용에 적합한 신체조건을 지니고 있었고 우연하게도 학교 무용대 선생님의 눈에 띄였다. 떡잎을 알아본 선생님은 “춤을 한번 춰볼래?”하고 제안을 보냈고 그렇게 그는 소학교 무용대에 합류하게 되였다. 본인의 우스개 소리처럼 그야말로 ‘어망결’이였다.

그런데 그 우연으로 발을 뗀 무용의 길은 고된 연습의 련속이였고 어린 나이에 포기하고 싶었던 적도 많았다. 하루라도 연습을 거르면 몸이 굳는 무용은 매일 기초연습을 해야 하는 힘든 과정이였기 때문이다. “저희 어머니는 춤과 노래에 재능이 있었으나 기회가 없어서 그 꿈을 이루지 못하셨어요. 그래서인지 무용에 재능을 보인 저를 포기하려고 하지 않으셨어요.”게으름을 피우려 할 때마다 어머니는 ‘당근’과 ‘채찍’을 병행하면서 딸아이의 느슨해진 긴장끈을 조여주었다.

힘들었지만 포기는 없었고, 소학교-초중-예술학교라는 예술 코스를 밟으며 그는 쭉 무용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 과정에 견고한 기반을 다졌다. 예술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학교의 예술단에 남아 활동하다가 조선족예술단을 거쳐 2000년에 연변가무단에 입단했다. 

처음부터 칼춤을 췄던 건 아니다. 학교에서 무용을 배우면서 여러 쟝르의 무용을 두루 다 섭렵하지만 칼춤을 작품식으로 시작한 건 2006년에 북경에서 열린 제3회 소수민족문예경연에 참가했을 때부터이다. 

송미라 선생님의 눈에 띄게 된 것도 어쩌면 이렇게 차곡차곡 쌓은 경험치가 빛을 발했는지도 모른다. 2010년에 송미라 선생님의 추천으로 도문시가무단에 가서 칼춤 작품을 창작하기도 했다.

“무용수로서 춤에 대한 고민은 항상 있었고 언젠가 제가 선생님을 찾아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선생님은 칼춤을 추천해주셨어요. 선생님은 칼춤의 대가 끊기지 않길 바라셨어요. 칼춤이 힘들지만 그래도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겠냐 하셨죠.”

2011년에 그는 성급 전승인으로 선정되였는데 역시 송미라 선생님의 인도가 컸다고 덧붙였다. 제1대 전승인인 최옥주 선생님, 전승인으로 등록하지 않았지만 칼춤의 계승과 발전에 심혈을 쏟아부었던 조인혜 선생님, 그리고 송미라 선생님을 지켜보면서 책임감과 사명을 한층 더 느꼈는지도 모른다. 

“특수 제작된 칼을 사용하더라도 무용수는 도구를 흔들며 동작을 완성해야 하잖아요. 아무리 숙련된 무용수라 하더라도 연습 과정에서 칼이 팔에 부딪치는 상황은 피할 수 없습니다. 이로 인해 멍이 생기기도 하군 하죠.”이렇듯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도 놓을 수가 없었다. “제가 선배님들에게서 배웠던 걸 후배들에게 배워주고 싶어요.” 이건 김향란 전승인의 페부지언이다.

 2018년, 길림성 제2기 소수민족문예회연에서 김향란씨가 직접 짠 안무로 2등상을 획득한 후 연기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남겼다.

그리하여 2009년부터 무대를 떠나 가무단의 창작실으로 옮긴 그는 현재 예술 창작과 후대 양성에 집중하고 있다. 2018년, 그는 길림성 제2기 소수민족문예회연에 직접 안무를 짠 칼춤으로 참가해 2등상을 획득했다. 반년이 채 안되는 연습기간 동안 18명의 녀자군무를 완성해야 하는 도전이였지만 수상의 기쁨을 넘어 칼춤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다는 것에 성취감이 더 컸다.

김향란 전승인에게 칼춤은 개인의 예술적 성취이기 전에 책임과 사명의 무게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가 언급한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았지만 그보다는 책임감이 더 컸다.”는 고백은 이 예술이 단순한 공연 기술이 아니라 선배들의 유산을 고이 받들어 후대에 전해야 하는 문화적 소명임을 보여준다.

◎ 그리고... 칼끝에서 끊기지 않을 ‘챙챙’ 소리

칼춤의 전승에는 여전히 도전이 따른다. 무대 기회의 제한, 젊은층의 관심 부족, 전문 전승인 수의 제한 등은 현실적인 장애물이다. 

“칼춤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을거예요. 대중들과의 거리감을 좁히는 방법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봐야죠.”

무대가 적은 아쉬움도 있고, 더 많은 무대를 통해 칼춤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도 크다. 

그럼에도 희망의 빛은 여전하다. 현재 제자들이 학교에 들어가 교육을 통한 보급 활동은 이미 진행중에 있다. 김향란 전승인 또한 다양한 문화 행사에서의 공연 기회 확대, 디지털 미디어를 활용한 기록과 확산 등 새로운 접근법을 모색해보려는 의지도 강하다. 

선배님들이 그러했듯, 그리고 김향란 전승인이 제자 김련옥에게 칼춤을 전수하듯...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지식과 기술의 전달은 이 예술의 생명력을 유지하는 근원이 되고 있다.

취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오로지 예술에 대한 사랑으로 막전과 막후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음을 느꼈다. 이런 선순환이 이루어짐에 따라 전승인들의 손에 맡겨진 이 소중한 유산은 계속해서 빛을 발할 것임이 분명해보인다. 칼춤의 리듬이 멈추지 않는 한, 그 문화적 정신 또한 영원히 계승될 것이라는 희망도 보았다. 

김향란씨는 제자 김련옥(사진 왼쪽)을 칼춤 전승인으 배양하며 칼춤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길림신문 김가혜 김영화 기자


编辑:안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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