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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의 도시] 길림시와 동년배인 동관제묘

차영국      발표시간: 2025-06-24 13:48       출처: 강성일보 选择字号【

후한 말년의 명장 관우는 충성과 용기, 의리로 인해 민간에서 "관제(关帝)"로 숭배 받아왔다. 청조 시기, 길림 시가지(吉林城)과 주변 지역에는 관우를 제사 지내기 위한 많은 관제묘가 건립되였다.

현재 길림시 북산공원 동봉에는 청조 강희 40년(1705년)에 건립된 관제묘의 향불이 여전히 성하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은 길림 시가지 소동문 밖(현 세무만금호텔 자리)에 북산 관제묘보다 규모가 더 크고 력사가 더 오래된 동관제묘가 있었다는 점이다.

1. 력사적 기원

력사자료에 따르면 길림 시가지가 건설될 당시 성 내외에는 이미 성황묘, 서방사, 관제묘 등 사찰이 새워져 있었다. 청조 도광년간의 《길림외기》는 동관제묘에 대해 ‘시가지 소동문 밖 반리 지점에 위치, 정전 3칸, 향전 3칸, 좌우 배무 각 8칸, 종루, 고루, 희루 각 1개, 대문 3칸, 동서 문 각 2개’라고 기록되여 있다.

이 력사자료에서는 동관제묘가 청조 건륭 9년(1744년)에 건립된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더 이른 시기인 청조 강희 12년(1673년)에 산서 상인들이 건립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는 안주호(安珠瑚)가 송화강가에 길림 시가지를 건설하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해 동관제묘는 길림 시가지와 동년배 라고 할 수 있다.

2. 사찰의 구조와 확장

동관제묘는 여러 차례 중복 건설과 확장을 거쳤다. 청조 광서 14년(1888년) 마지막 주요 구조를 완성했는바 정전, 삼대전, 배전, 종루, 고루, 희루, 마전 등이 갖추어졌다.

특히 1929년 일본 건축학자 무라타 지로가 측정한 평면도에 따르면 동관제묘는 북산 관제묘보다 훨씬 큰 규모였으며 정전과 삼대전 사이에 추가로 대전이 있었다.

3. 제사와 민간 신앙

동관제묘는 주로 관우를 제사 지냈지만 불교, 도교, 유교가 혼합된 다신 숭배의 성격을 띠였다.

후전인 대웅각에서는 옥황상제, 룡왕, 화신, 자손마마(子孙娘娘) 등의 제사를 지냈고 서이방에는 주선사가 있었다. 특히 매년 음력 4월 18일에는 자손마마를 위한 대규모 묘회가 열렸다.

4. 문화유산의 상실

1934년 길림 시가지 영구제방 건설로 동관제묘가 철거되였고 현재는 그 흔적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일부 유물은 북산 관제묘로 옮겨졌지만 많은 비문과 편액은 소실되였다.

/강성일보


编辑:유경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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