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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라노 림숙, 음악으로 빚어낸 인생의 하모니

김가혜      발표시간: 2026-03-06 11:14       출처: 길림신문 选择字号【

- 음악이라는 한길 걸어온 소프라노 림숙의 예술 인생

- 상해음악학원에서 독일 함부르크까지

- 그리고 엄마를 울린 무대 연변음력설야회에 서기까지

2026년 연변음력설야회에서 열창하는 소프라노 림숙.

그믐날 저녁엔 중앙TV 춘절야회 보기가 공식과도 같은 것이라면, 초하루날 저녁의 연변음력설야회 역시 연변사람들에게는 굳어져있는 년중행사’와도 같은 의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2026년 연변라지오텔레비죤방송국 음력설문예야회 무대에 올라 열창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눈도장을 찍은 림숙에게 2026년 연변라지오텔레비죤방송국 음력설문예야회 무대는 단순한 공연 그 이상이였다. 어릴 적부터 텔레비죤으로 시청하던 바로 그 무대에 자신이 연출자로 선다는 것, 그것은 마치 꿈만 같았다.

“고향 연변을 대표하는 무대에 설 수 있어 영광”이였다고 말하는 소프라노 림숙(1987년생)음력설 련휴를 맞아 고향을 찾았던 그를 만나 성악이라는 한 우물을 파온 순정파 소프라노의 음력설야회 뒤이야기와 그의 음악인생에 대해 들어보았다.

그의 회상에 따르면 그가 이 특별한 무대에 서게 된 것은 일종의 운명같은 인연이였다. 지난해, 림숙은 중국음악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연변대학 허은경 선생님의 작품 록음을 위해 고향 연변을 찾았다. 한차례 고향행이 우연한 기회로 이어졌다고 봐도 무방한데 당시 록음을 책임졌던 연변가무단의 한택수 선생은 림숙의 독특한 음색을 높이 평가하면서 그를 연변음력설야회 음악 총감독인 림봉호 감독에게 추천했기 때문이다. 

림숙의 노래를 들어보던 림봉호 감독은 바로 러브콜을 보냈다. 수십년간 음악이라는 한길 인생을 걸어온 그는 어릴 적부터 보고 자란 연변음력설야회 무대에 서는 영광을 안았다. 

“이건 후에야 들은 얘기인데 음력설야회 록화 현장을 엄마랑 함께 갔었거든요. 관중석에서 눈물을 흘렸대요 엄마가.” 연변사람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음력설야회, 그 무대에 딸이 서있다는 사실이 엄마에게도 너무나 자랑스럽고 감격스러웠다.

◎ 엄마의 손을 잡고 시작한 음악

그도 그럴 것이 림숙의 음악 인생을 거슬러 올라가면 엄마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지금 생각해보면 유치원 때부터 림숙은 항상 노래를 흥얼거렸단다. 예술을 하려고 그랬던 건지 악기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손풍금도 배워보고 피아노학원도 다녔지만, 유독 노래는 매일 해도 전혀 싫증이 나지 않았던 것 같다고 림숙은 웃었다.

“딱히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예요. 그냥 노래하는 게 좋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제 천성이였나봐요.”

그리고 딸의 음악적 잠재력을 가장 먼저 알아본 사람은 어머니였다.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어머니였지만 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을 알고 있었다.

“어릴 때 제가 아무거나 흥얼거리면 엄마는 ‘이 부분은 이렇게 하면 좀 더 흥이 나지 않을가? 여기서는 힘을 좀 빼면 더 간드러질 것 같다.’고 조언해주셨어요.”

무엇이든 ‘딸이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 응원’했다는 어머니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서 음악적 재능을 키워온 림숙은 중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는 본격적인 음악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프로인 림승용 선생님을 찾아가 개인 지도를 받으며 성악의 기초를 다졌다. 림승용 선생님은 림숙의 가능성을 내다봤다. 성량과 가창력을 확인한 후 림숙에게 성악을 추천했다. 전문적인 길로 나아갈 것을 권유했다.

“그때 선생님께서 ‘너는 성악이 잘 맞을 것 같다.’고 하셨어요. 사실 그때만 해도 성악이 뭔지 잘 몰랐는데 선생님 말씀을 듣고 성악 공부에 더 매진하게 됐죠.”

◎ 인생을 바꾼 멘토의 한마디

림숙은 “음악의 길에서 참 고마운 사람들이 많았다”고 운을 떼며 림승용 선생님이 성악의 문을 열어주었다면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시절에는 자신의 인생을 바꿔준 멘토를 만나게 되였다고 말한다. 바로 당시 개인 지도를 해주던 리종천 선생님이였다.

인생의 방향을 바꿔준 멘토 리종천 선생님의 2019년 ‘리종천의 제자들, 음악회’에서 림숙은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을 노래했다.

“사실 그때 제 실력에 대해 확신이 없었어요. 주변에 저보다 잘하는 친구들도 많았고 과연 제가 원하던 예술대학에 갈 수 있을가 자신이 없었죠. 그때 리종천 선생님께서 ‘너는 충분히 실력이 있으니 상해음악학원에 지원해도 되겠다’고 신심을 북돋아 주셨어요.”

중국에서 손꼽히는 예술 인재 요람인 상해음악학원은 림숙에게 꿈의 대학이였다. 하지만 전국에서 단 11명만 모집하는 경쟁률은 상상을 초월했다. 주저하는 림숙에게 리종천 선생님은 자신의 가르침을 믿고 지망하라고 조언했다. 그 조언과 추천에 힘입어 림숙은 과감히 도전을 결심했고 결국 당당히 합격의 영광을 안았다.

◎ 꿈의 대학 상해음악학원에서 연구생 졸업하기까지 그 치렬한 나날들

전국에서 모인 인재들 사이에서 림숙은 자신의 부족함을 절감했다. 

“치렬한 경쟁을 뚫고 모인 친구들이라 다들 실력이 출중했어요. 거기서 살아 남으려면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하루하루가 치렬했어요.”

열심히 노력하면 반드시 행운이 찾아온다고 했던가. 상해음악학원에서 림숙은 또 한명의 인생 멘토를 만난다. 본과 5년, 연구생 3년 동안 지도교수였던 리수영 교수는 학업 뿐만 아니라 생활 방면에서도 림숙에게 수많은 조언과 도움을 주었다.

2025년 제3회 전국박사포럼 음악회에서 만난 스승과 제자, 상해음악학원 리수영 성악교수는 학업 뿐만 아니라 생활적으로도 많은 조언과 도움을 준 인생 멘토라고 림숙은 거듭 고마움을 전했다.

“리수영 교수님은 정말 어머니 같은 분이셨어요. 음악적으로는 물론이고, 인생의 방향을 잡을 때마다 현명한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죠. 지금의 제가 있기까지 리수영 선생님의 영향이 정말 컸습니다.”

연구생을 1등으로 붙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더 넓은 세계에서 좀 더 배우고 싶어했던 림숙에게 리수영 교수는 자신의 경력을 바탕으로 고민 해결자를 자처했다. 제자가 더 배워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유학을 선택했을 때 리수영 교수는 적극적으로 추천하며 응원해주었다.

◎ 독일의 명문 대학에서 만점 졸업자로 거듭나기까지... 그 도전과 성장의 시간들

2016년, 그렇게 림숙은 독일 류학길에 올랐다. 국내에서 배운 전공을 이어 림숙은 독일 명문 국립 예술대학교인 함부르크 국립음악-연극대학교(HfMT HAMBURG)에서도 성악 전공 연구생과 박사 과정을 완수했다.

“독일에서의 생활은 쉽지 않았어요. 언어부터 시작해서 모든 게 새로웠고 또 한번 치렬한 경쟁 속에 뛰여들어야 했죠.”

하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 하나로 버틸 수 있었다고 그는 그때를 회억했다. 독일에서도 림숙은 변함없는 노력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갔다. 외국어 공부부터 전공에 이르기까지 피나는 노력을 기울인 결과, 2021년 박사과정을 만점으로 졸업하는 쾌거를 이뤘다.

“독일에 남을 수 있는 기회도 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그래도 중국에 돌아오고 싶었어요. 제가 배운 음악을 중국에서 펼치고 싶다는 생각이 컸죠.”

◎ 음악이라는 한 우물 판 그는 이젠... 두 마리 토끼 잡고 싶다

2022년 귀국한 림숙은 2023년 9월, 광주의 성해음악학원에서 교단에 올랐다. 무대에 서는 것도 좋아하지만, 배운 지식을 전수하는 성취감도 남다르다고 한다.

“제자들이 제가 가르쳐준 대로 스펀지처럼 흡수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어요. 그 아이들이 언젠가는 제가 섰던 무대, 더 큰 무대에 서서 노래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정말 행복해요.”

노래가 좋아서 음악을 시작했던 그 아이는 이젠 어엿한 음악인으로 성장했고 성악이라는 한 우물만 우직하게 파오던 그는 이젠 무대와 교단,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싶다. 가수로서의 활동과 교육자로서의 역할을 병행하며 자신의 음악적 열정을 나누려 한다.

◎ 기나긴 세월 딸의 꿈에 ‘올인’한 부모님의 헌신 덕분에...

“무슨 음악공부를 10년이 넘게 하냐?”는 주위의 리해 못할 시선도 가끔 있었지만 림숙은 이루려는 목표가 확실했기에 걸어가고 싶은 길을 뚜벅뚜벅 흔들림없이 걸어왔다. 방황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지만 힘듦은 있었어도 포기는 없었다. 

그리고 드디여 “제 무대를 보면서 행복해하는 부모님을 보면 공부한 보람을 느껴요. 그분들이 계셨기에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어릴 때부터 딸의 결정과 의사를 충분히 존중해주었던 부모님에 대한 존경과 감사함은 한두마디로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지금까지 음악이라는 한 우물을 묵묵히 팔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가족에게서 나왔다. 특히 어머니의 전폭적인 지원과 응원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신도 없을 거라고 거듭 말한다.

영원한 1호팬인 가족의 지지는 림숙이 음악의 길을 걸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다.

“저희 엄마는 제가 하고 싶다는 일에는 무조건 ‘오케이’였어요. 그런 엄마가 있었기에 저는 무슨 일이든 자신감을 가지고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예술쪽으로 크게 지지하지 않았던 아버지도 제가 음악에 진심으로 매달리는 모습을 보시고는 나중엔 오히려 외국에 나가 돈을 벌어 뒤바라지할 정도로 변하셨어요. 온 가족이 제 꿈에 ‘올인’했죠.”

림숙의 가족은 이번 연변음력설야회 방송을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시청했다고 한다.

“제가 텔레비죤에 나오는 걸 보고 친척들로부터 전화가 쇄도했어요. 지인들의 축하문자도 끊이지 않았고요. 부모님이 그렇게 기뻐하시는 얼굴을 오랜만에 봤어요. 그 모습을 보면서 저도 십여년의 공부가 헛되지 않았음을, 그리고 포기하지 않은 제 자신이 너무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 음악이라는 외길, 그리고 앞으로의 꿈

림숙에게 음악은 삶 자체이며 호흡과도 같은 존재이다. 모든 것을 쏟아부을 수 있고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무대가 정말 행복한 만큼, 교단에 설 때는 또 모든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음에 성취감으로 충만하다.

2025년 림숙은 두번째 제자들을 졸업시키며 후대양성의 성취감을 알아가고 있다.

그래서 둘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똑같이 소중하다고 음악에 대한 욕심을 내비치기도 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으니 그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음악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싶다고 생각을 밝혔다. 

“성해음악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무대 활동도 계속할 거예요. 언젠가는 더 큰 무대에 서서 음악으로 사람들에게 힐링을 선사하고 싶어요.”

어릴 적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던 평범한 소녀에서, 상해음악학원을 거쳐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이제는 교단에 올라 후학을 양성하며 무대에서 노래하는 소프라노 림숙, 그녀의 음악 인생은 현재 한창 진행형이다. 그의 목소리가 닿는 곳, 그곳이 바로 그의 무대이며 그 무대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확장될 것이다.

“음악은 제 삶의 전부예요. 앞으로도 음악과 함께, 음악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며 살아가고 싶어요. 그리고 언젠가는 고향 연변에서 더 큰 음악회를 열어 저를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길림신문 김가혜기자

编辑:안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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