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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침략 죄행은 론박할 수 없다

—일본 력사학자, 쏘련의 일본 731부대 심문 기밀 해제 문서 론하다

2025년 9월 18일,사람들이 중국 침략 일본군 731부대 죄증 진렬관을 참관하고 있다. /신화넷

최근 중앙서류관은 로씨야측이 이관한 쏘련의 일본 731부대 심문 기밀 해제 문서 자료 일부를 공개하여 일본침략군이 세균전을 실시한 것은 조직적이고 사전에 모의한, 우로부터 아래까지 체계를 이룬 국가범죄임을 다시 한번 립증하였다. 일본 아이치(爱知)학원대학 문학부 력사학과 부교수 히로나카 이세이는 앞서 신화통신 기자와의 독점 인터뷰에서 일본의 침략 죄행은 론박할 수 없다며 이번에 공개된 문서는 731부대의 죄행을 진일보 폭로하는 데 중요한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는 731부대 구성원에 대한 심문 기록, 731부대 죄행 조사보고서, 쏘련 관내 서한 등이 포함되며 시간 범위는 1939년 5월 11일부터 1950년 12월 25일까지이다.

히로나카 이세이는 1939년 일본과 쏘련간 노몬한(诺门罕)전쟁이 발발했고 이 전쟁에서 731부대가 세균무기를 강에 투하했다고 지적했다. 쏘련은 일찍부터 731부대의 조직 성격과 활동에 주목하고 관련 조사를 시작했다. “쏘련이 이렇게 이른 시기에 이미 731부대에 주목하고 조사를 진행했다는 점은 과거에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나는 이번 문서 자료 공개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본다.”

이번 문서 자료는 하바롭스크(伯力) 재판 문서를 주체로 재판전, 재판중, 재판후 세 력사적 단계가 포함되였다. 문서 자료는 하바롭스크에서의 쏘련의 재판 전기(前期) 수사 과정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731부대 죄행과 관련된 인원이 200여명에 달하고 핵심 전쟁범 및 증인에 대한 집중적인 증거 확보를 거쳐 최종적으로 12명의 전쟁범을 확정하여 공개재판을 진행했다.

히로나카는 현재 731부대 관련 자료는 한정적으로 이렇게 체계적인 문서를 공개한 것은 관련 연구에 중요한 토대를 제공한다면서 이는 731부대의 진실한 면모를 복원하고 리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히로나카는 731부대가 표면적으로는 ‘방역급수부대’(防疫给水部队)라 불렸지만 실제로는 세균무기 연구개발을 담당했다는 사실은 론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731부대가 비록 일본 관동군의 한 부대였지만 그들이 실행한 세균전은 륙군 참모본부, 륙군성 등 기관이 참여한 조직적인 행동이였다고 말했다. 세균전 실행 과정에 731부대는 륙군 참모본부의 지시를 받고 륙군성과 관동군의 자금 지원을 받았다. 731부대 세균전은 또 일본 륙군 군의학교 연구 프로젝트의 일부였다. “작전, 자금 등 면에서 볼 때 731부대가 실행한 세균전은 체계적이였다.”

1945년 8월 11일부터 15일까지 일본 관동군은 여러 전용렬차를 특별히 비준하고 연선에 우선 통행을 지시했다. 731부대 구성원들은 전용렬차를 타고 할빈을 출발해 통화, 안동(현 료녕성 단동시), 부산을 거쳐 나중에 배를 타고 일본으로 도주했다. 전쟁후 일본군은 원본 문서를 소각하여 죄행과 력사적 진실을 의도적으로 은페했다.

히로나카는 대량의 침략전쟁 관련 문서가 일본 패전 전후 체계적으로 소각되였다며 이러한 상황은 731부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는 침략 력사를 부인하고 심지어 전쟁을 미화하는 발언에 공간을 제공하게 된다.

히로나카는 현재 일본 국내에서는 여전히 남경대학살, 731부대의 존재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어떠한 경우에도 일본의 침략 력사와 가해 사실, 그리고 중국인민에게 가한 고통은 부인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다음 세대가 차분하고 객관적인 태도로 이 력사를 직시하기 바란다.” /신화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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