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08版:종합 上一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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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길림신문》]

나를 이끌어준 《길림신문》

◎ 리미란

저자 리미란

내가 소학교 6학년 무렵이였을 것이다. 우리 학교 선생님 한분이 교실에 들어오셔서 《길림신문》이라고 하는 우리말 신문이 새로 생겼다면서 우리 모두 주문도 하고 열독도 했으면 좋겠다고 선전하시는 것이였다. 그때까지 신문에 대해 잘 몰랐던 나는 처음으로 우리말 《길림신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였다.

그러다가 연변대학 조문학부에 입학하면서부터 앞으로의 직업을 고민하게 되였는데 그때 내 눈에 딱 들어온 것이 아나운서나 기자 직업이였다. 그래서 졸업한 다음 이 두가지중에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내 최고의 직업 목표였는데 아쉽게도 나는 대학 지정 양성생이여서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기에 이 두가지를 다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졸업후 모교에 돌아와 교원사업을 하게 되였는데 처음에는 마음에 내키지 않아 들뜬 마음으로 보냈다. 그러다 차차 학생들과 정이 들면서 이 직업에 점차 마음을 붙이게 되였다. 마침 2008년에 건교 40주년을 기념하여 학교로부터 우리 조선어문조 교원들에게 《길림신문》에 좋은 글을 부지런히 발표하라는 임무가 내려졌다. 한창 담임사업을 하면서 학생들과 정을 붙인 나는 교원이란 직업도 참 성스럽고 애착이 가는 직업이란 것을 느끼면서 솔직하고 소박한 나의 마음을 담아 <후회 없는 선택>이란 글을 써보고 싶었다.

교직사업에 참가한 후 처음 쓰는 글이라서 발표 여부가 많이 걱정되였지만 대담하게 용기를 내여 원고를 보내기로 했는데 이메일로 넘기자고 보니 아직 내 자신의 이메일도 없는 상황이였다. 그때는 지금처럼 누구나 다 이메일이 있을 때가 아니였다. 발표될지 말지 하는 작품이지만 나는 동료의 도움을 받아 처음으로 나의 이메일을 신청했다. 이렇게 나의 첫 이메일이 탄생되였고 그 이메일을 최초로 사용하여 길림신문사로 나의 첫 작품을 보내게 되였던 것이다.

그런데 며칠후 신문사의 교육면을 담당한 김정함선생님이 학교로 전화가 와서 좋은 글을 엉뚱한 데 넘겨서 분실할 번했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내 작품을 ‘인성교육 응모작’에 넘겼다고 하셨다. 사실 그때 나는 응모활동이 있는 줄도 몰랐다. 어안이 벙벙해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냥 “네, 네···”라고만 했다. 그런데 약 석달이 지났을가, 김정함선생님이 또 학교로 전화를 해 시상식에 참가하라고 알렸다. 나는 얼떨떨한 김에 무슨 상인가고 감히 물어보지도 못한 채 참석 날자만 기다려 지정된 호텔에 가게 되였다.

그냥 기념상이나 받아도 너무 감지덕지할 일인데 시상식에서 뜻밖에 은상이라는 묵직한 상을 받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무슨 운이 그리도 좋았던지 너무 넘치는 상을 받게 되여 격동이라 할가, 한동안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파도를 잠재우지 못했다. 처음으로 그렇게 큰 상을 받고 보니 정신이 다 얼떨떨할 지경이였다. 나로서는 실로 너무 가슴 벅찬 일이였지만 애써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면서 제발 꿈이 아니길 바랐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봐도 나의 작품은 정말 잘 다듬어지지 못한 작품이라고 자인한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솔직하고 소박한 감정이 아마도 심사위원들을 감동시키지 않았을가 싶다.

하지만 상을 받은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글쓰기에 신심을 얻었고 글쓰기에 애착이 생긴 것이다. 그날 시상식에 참가하고 돌아올 때 김정함선생님은 앞으로도 《길림신문》에 내 글이 많이 실리기를 바란다는 고무의 말씀도 해주셨다. 나는 그냥 조언으로만 들었을 뿐이였지 그런 멋진 날이 언제 오겠냐 싶었다.

이후 학교에서는 나를 신뢰하여 각종 행사 보도 업무를 맡겼다. 덕육활동, 교수행사 소개, 홍수피해 복구에 힘쓴 교사들의 이야기, 리춘자 장학금 설치 같은 감동적인 소식들을 륙속 《길림신문》과 《조문송화강(朝闻松花江)》에 꾸준히 보내며 나도 모르게 ‘아마츄어 기자’로 성장하고 있었다. 급한 성격 탓에 차영국기자님께도 “빨리 게재해주세요!”라고 닥달했다가 “한박자 쉬고 갑시다!” 하고 유머스런 답장을 받은 적도 있었지만 매번 지면과 인터넷에 내 손으로 쓴 글이 실릴 때마다 나는 가슴 뛰는 설렘을 금하지 못했다.

내 글을 《길림신문》에서 많이 보기를 바란다는 김정함선생님의 말씀을 들을 때는 그것이 아주 황홀하고 실현될 수 없는 꿈만 같았는데 이렇게 세월이 지나고 보니 《길림신문》의 지면과 인터넷에 내 글이 적잖게 발표된 것도 사실이다. 아마 그제날 김정함선생님의 믿음과 기대가 뒤받침해줘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길림신문》은 나의 지도교사이자 나를 길러준 은인임에 틀림없다.

내가 《길림신문》에 글을 발표하면서부터 학교의 대행사 때마다 거르지 않고 근 17년 동안 길림신문사로 학교의 소식을 보냈으니 신문사의 40년 발자취 속에 나의 성장 흔적도 바다 속 모래알처럼 반짝거리지 않을가 싶다. 길림신문사의 전직기자로 되고픈 소원은 이루지 못했지만 아마츄어 기자(자칭)로 나름 활약하게 된 데 대해 너무 뿌듯하다고 자부심 넘치게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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