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림신문 > 문화문학


[무형문화유산순방] 전통의 소리를 현재로 미래로... 장새납의 선률을 잇는 사람

김가혜 길림신문 2026-02-06 12:20:05

- 조선족 전통 장새납 전승인 안룡철을 만나다

“저는 단순한 연주자가 아니라 전통 악기 소리의 문을 지키고 열어가는 지킴이이자 안내자라고 생각합니다.”

연변가무단의 전통 악기 연주자이자 조선족 장새납 주급 무형문화유산 대표성 항목 전승인인 안룡철(1985년생)은 자신의 역할을 이렇게 정의했다.

◎ 새납과는 또 다른 조선족 전통 악기 장새납

안룡철이 전수하고 있는 조선족 전통 새납(장새납)은 그 력사가 깊은바 예로부터 대평소, 태평소라고도 불렸으며 또 새납이라고도 한다. 료녕성, 길림성, 흑룡강성 등 지역에 퍼져있으며 특히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가장 성행한다. 악기는 보통 8개의 구멍을 가진 목관, 리드(哨片), 구리 라팔로 구성되여있으며 음색이 맑고 경쾌하면서도 강한 호소력을 지닌 것이 특징이다. 또 자연 음계의 지법이 다른 관악기와 대체로 비슷하여 연주가 편리하고 빠른 리듬의 연주를 소화할 수 있다.

사료에 따르면 이 악기는 고대에 궁중에서 류행하다가 점차 민간으로 전해졌다. 민간에서는 농한기나 풍년을 기념할 때 독주나 반주 악기로 사용되며 대중들의 삶 속에 깊이 뿌리내렸다.

오늘날의 장새납은 민속음악 연주에서 더욱 폭넓게 활용된다. 시대적인 아름다움과 민족풍정을 갖춘 음악 예술로 발전하여 그 독특한 연주 효과를 펼치고 있다.

유구한 력사를 거치며 무대에 오르기까지... 장새납은 전통을 고수하는 한편 시대에 맞춰 변화하는 발전 시기가 있었다. 안룡철은 ‘전통의 정수를 보존하는 것이 혁신의 기초’라며 1950~60년대 연변의 선배 예술인들이 음공을 추가하고 개량하여 음역을 넓히고 합주에 적합하게 만든 혁신 력사를 이야기했다.

그는 ‘시대에 맞춰 변화하는 것이 생명력을 유지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그런 흐름으로 지금도 악기 개량 작업에 대한 노력은 현재진행중이며 취재 내내 그는 전통 악기에 대한 열정과 전통 문화에 대한 계승 의지를 여러차례 강조했다.

◎ 큰어머니의 추천에 부모의 뒤바라지가 열어준 ‘꽃길’

“연주가가 직업이 되고 사명감을 갖게 될 줄 몰랐어요.” 어릴 적부터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좋아했던 8살 소년은 전통 문화를 보급하는 전승인이 되였다.

그리고 안룡철 전승인이 예술의 길을 걷게 된 데는 큰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을 보니 예술을 해도 되겠다.”는 큰어머니의 추천이 계기가 되였는데 큰어머니가 바로 “민족전통음악의 맥을 이어가는 인간문화재”라 불리는 연변대학 예술학원 강신자 교수이다. 큰어머니는 “민족악기를 하면 좋지 않겠냐?”고 조언했고 그의 부모님도 아들의 예술적 재능을 키우기 위해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섰다.

“악기를 배우려면 돈이 한두푼 드는 게 아니잖아요. 그 당시 넉넉치 않았던 생활형편임에도 부모님은 저의 꿈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주셨어요. 부모님의 든든한 뒤바라지가 있었기에 짧지 않는 배움의 시간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었어요.”

공부 대신 예술쪽으로 진로를 정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확고한 믿음과 묵묵한 지원이 없었으면 지금의 자신도 없었다며 안룡철은 가족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지금은 또 공연에 출장에 항상 바쁜 남편 대신, 음악을 향한 남편의 열정보다 더 뜨거운 지지로 묵묵히 등대가 되여주는 안해와 두살반 딸아이의 응원까지 더해지며 더 나아갈 힘을 얻군 한다고도 덧붙였다.

악기를 접한 게 8살, 그 나이대면 노는 것이 가장 좋았을 텐데 그는 새납을 부는 게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재미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니 운명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1996년, 그는 예술학교 소학반(5학년)에 붙으면서 전문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그 후로부터는 당연한 수순처럼 초중 3년, 고중 3년, 대학교 4년까지... 예술생 코스를 밟았다. 모든 학창시절을 악기와 함께 했다.

우스개소리로 그 긴 시간 동안 질릴 만도 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는 “고중때 친구들과 함께 공을 차고 뛰여노는 게 정말 좋았어요. 그때 잠간 슬럼프를 겪었던 것 같은데 지금 여전히 음악의 길을 걷고 있는 걸로 봐선 이 일이 천직인가봐요.”라고 말했다.  그 시기를 ‘음악 권태기’라고 표현했지만 권태기를 이겨낸 후 그의 예술인생은 또 한단계 업그레이드를 맞이한다.

◎ 무대의 영광, 그리고 전승의 무게

2008년에 그는 연변대학 예술학원을 졸업하고 엘리트 코스 대로 연변가무단에 입단한다. 반면 실전에 투입되여 보니 학교에서 배우던 리론과 실제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였다. 실전의 벽을 느꼈다.

“그 당시 연변가무단의 장새납 연주자는 김호윤(제2대 전승인) 선생님이셨어요. 30년도 넘게 차이나는 대선배님이셨죠. 선배님으로부터 학교에서 배우던 것과는 또 다른 지식점들을 많이 전수받았어요. 무대에서 연주하는 모습이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어요. 그때 가장 많이 했던 고민이 ‘언제면 나도 선배님처럼 잘할 수 있을가?’였어요.”

음악에 대한 고민은 끊임없는 연습으로 이어졌고 성적에 대한 욕심은 그의 의지를 불태웠다. 피나는 연습 끝에 그는 년말 업무회보 공연 평가에서 제일 처음 30등 밖으로 밀려나던 데로부터 이제는 드디여 선두자리에 오르게 됐다며 환하게 웃었다.

줄곧 조선족 전통 새납 예술의 전승과 발전을 위해 힘써오며 국가급 및 성급 음악 경연에서 금상을 수상하고 국가문화부 무형문화유산 전국 순회공연, CCTV방송 등 여러 매체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안룡철은 무대의 영광보다 전승의 무게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리하여 그는 가무단의 공연 임무를 완수하는 와중에도 학교와 사회단체에 들어가 장새납 예술의 교육과 보급 작업을 활발히 진행한다. 또 다른 지역의 예술단체가 찾아와 배우는 경우도 자주 있는데 그때마다 항상 따뜻하게 환영하고 인내심 있게 설명을 해준다.

“연변대학 예술학원의 김용일 교수님은 대학교 시절 저의 지도교수셨어요. 장새납 예술을 전수하기 위해 퇴직 후에도 교단에 섰어요. 후배 양성을 위해 헌신하시는 모습에서 저도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여야겠다는 다짐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자신은 그저 이 전통 악기를 이어가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 많은 대선배님들이 닦은 길을 걸어갈 뿐이라고 겸양을 표했지만 안룡철은 교수님께 배운 대로 현재 연변대학 예술학원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다.

◎ 갈대밭 찾아 ‘삼만리’... 발품파는 연주자

그의 눈에 조선족 전통 새납은 력사와 예술성, 실용성이 두드러진 전통 악기 가운데 하나이다. 이 악기는 또 독특한 음색과 리듬을 통해 유쾌한 감정과 호방한 감동을 충분히 전달한다. 그러나 새납은 연주하기 까다롭고 다루기 어려운 악기이기도 하다.

“악단 단원들이 저를 ‘목공’이라고 불러요. 연주 연습 도중에도 구석에서 악기를 손본다거나 평소에도 항상 악기를 점검하지 않으면 수리하고 있거든요.”

롱담처럼 한 말이지만 이 점이 바로 민족악기인 장새납의 어려운 부분이다. 장새납은 전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악기에 비해 제작하는 곳이 많지 않기 때문에 부품도 시장에서 쉽게 구할 수 없다.

지난 1월, 안룡철씨는 제자 2명을 데리고 청도로 가서 갈대를 수집하는 방법을 실전으로 배워주었다.

적당한 갈대를 찾아 수집하고 갈고닦아 완성된 새납 리드.

“믿기 어렵겠지만 장새납에 사용되는 리드는 제가 직접 만들고 있습니다.” 이 리드는 갈대로 만들어지는데 새납의 소리를 결정짓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최상의 소리를 위해서는 갈대의 물기가 완전히 빠진 상태에서 채집해야 한다. 그래서 겨울철에 갈대를 모으러 다녀야 하는데 이때 또 기후조건 등도 고려해야 한단다. 적합한 지역이 정해지면 거기로 가서 나무를 캐는 것처럼 먼저 갈대를 대량으로 수집한다. 그 다음에는 ‘목공’처럼 갈대를 갈고 다듬으면서 하나하나 소리를 조정해 보면서 가장 좋은 리드를 찾아낸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무대 우에서 보여지는 성수나는 모습 그 뒤에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신경써야 하는 많은 발품이 숨겨져있다.

“어느 악기나 그렇지만서도 장새납은 특히 애정과 정성이 없이는 좋은 소리를 낼 수 없어요. 그래서 저는 악기를 자기 몸처럼 아껴라고 하는데요. 꾸준한 연습으로 입술 근육이 패턴을 기억하게 해야 더 안정적인 음정과 음색을 낼 수 있기 때문이죠.”

◎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일은 많다

그런 의미로 안룡철은 장새납을 ‘예민’한 악기라고 불렀다. 구조적으로 장새납은 음정이 불안정하고 반응이 늦는 등 취약점을 안고 있을 수밖에 없단다. 하여 공연전에는 반드시 악기의 나무 재질은 바람이 새는 곳이 없는지, 음색과 음정은 안정적인지... 수시로 체크하고 점검해야 한다. 이 악기가 널리 보급되기 위해서는 개량 작업이 지속적으로 진행되여야 하는 리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안룡철은 힘들지만 보람을 느낀다. 그에게 장새납은 이제 단순한 악기가 아니게 됐다. 그것은 력사와 정서를 간직한 매체이자 삶의 리듬을 담고 있는 문화적 유산으로 자리잡았다. 전통 악기의 아름다움을 널리 전하고 그 대가 끊이지 않도록 이어나가야 한다는 사명감을 그는 기꺼이 어깨에 짊어졌다.

부지런히 무대에 서고 대학교 강단에 오르고 보급활동을 전개하면서 그는 이 소리가 한사람의 마음에서 시작되여 더 많은 사람의 마음속에 울려퍼지고 또 한 시대에서 다음 시대까지 이어지길 바란다. 

◎ 장새납의 선률이 널리널리 울려퍼질 때까지

장새납의 전망를 그려보면 그래도 긍정적이다. 연변가무단의 다양한 공연 기회가 늘어나고 전통 예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점점 더 많은 청소년이 배우는 행렬에 합류하고 있다. 대학에서 전업으로 전공하는 학생들도 있다. 하여 그는 자신의 능력을 다해 제자들을 가르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조선족 전통 예술을 인식할 수 있도록 전승인, 연주자, 교육자 그리고 때로는 ‘목공’이 되기도 한다. 그의 손을 통해 장새납은 과거의 유물이 아닌 현재의 호흡이 되였다.

취재를 마치며 그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의 려정은 매일 연습실에서 다시 시작되고 강의실에서는 새로운 형태로 이어지며 각 공연의 마지막 박자와 함께 또 다른 미래를 향해 열릴 것이라는 미래도 그려졌다.

“어떻게 과거의 소리를 현재에 울리게 하고 그것이 미래까지 공명하게 할 수 있을가?”

아마도 그 답은 그가 갈고닦는 리드 속에, 젊은 제자들에게 전해주는 한음한음 속에, 그리고 방방곡곡에서 울려퍼지는 그 맑고도 끈질긴 선률 속에 담겨있을 것이다.

/길림신문 김가혜 김영화 기자


编辑:안상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