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의 ‘서금’ 반석에서 홍색이야기를 듣다
김태국 길림신문 2025-07-21 12:00:58반석시항일투쟁기념관 대청의 동상군.
길림시 남부, 송료평원이 장백산으로 이어지는 장백산서록 구릉지대에 자리잡은 반석시는 47만여명의 인구를 가진 현급시로 예로부터 교통요도이자 군사요충지였고 물이 맑고 땅이 비옥하여 압록강을 건너온 조선족들이 보따리를 풀고 삶의 터전을 개척한 고장이다.
1931년 ‘9.18사변‘이후 적강아약(敌强我弱)의 형세하에서 중공만주성위(할빈)는 중국공산당이 직접 령도하는 항일무장을 건립할 것을 각급 당조직에 지시하였다. 당시 중공반석중심현위는 반석, 화전, 이통, 쌍양 등 현과 동풍, 서안(지금의 료원), 해룡(지금의 매하구), 영길, 몽강(지금의 정우현), 흥경(지금의 신빈) 등 현의 당조직을 직접 관할하는 중추기관이였고 이 지역들에서 항일무장을 조직하고 령도하였다.
1932년 10월, 중공만주성위 군사위원회 서기 양정우는 이곳(화전현 봉밀정자)에서 중국공농홍군 제32군 남만유격대를 건립하고 4차례의 반‘포위토벌’의 승리를 거두었으며 그 기초하에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후에 동북항일련군 제1군으로 개편되였다가 동북항일련군 제2군과 함께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으로 개편됨)을 건립하고 일본침략자와 그 주구들과 피어린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이렇듯 영광스러운 항일력사를 가지고 있는 반석시는 홍색자원을 부단히 개발하여 홍석라자산항일유격근거지 유적, 련화산동북항일련군홍색문화교육기지, 반석시동산공원, 반석시항일투쟁기념관, 리홍광기념관 등 홍색관광 플래트홈을 구축하여 지역경제 발전에 일조하고 있다.
반석시홍광중학교에 건립된 리홍광기념관.
일전에 기자는 반석시조선족로인협회 부회장 류대진과 연통산진 동흥촌 당지부서기 리정일 등의 안내하에 반석시동산공원, 리홍광기념관, 홍석라자항일유격근거지 유적, 연통산괴뢰박격포련기의 유적, 석호구정당정군지, 반석시항일투쟁기념관(반석시박물관) 등지를 답사하면서 반석이 낳은 항일영렬들과 만났고 그들의 이야기를 다시한번 되새겼다.
반석시동산공원은 1947년에 건설된 반석시혁명렬사릉원을 기초로 하여 2017년에 확건한 붉은 레저공원이다. 공원내의 ‘붉은기광장’, ‘양정우동상’, ‘반석6학자광장’, ‘첫번째 총소리광장’ 등이 유명한데 모두 남만의 가렬처절했던 항일투쟁을 주제로 하였기에 매우 인상적이였다.
반석시동산공원의 ‘반석6학자광장’.
례하면 ‘반석6학자광장’에 경립된 6학자의 전신상은 1931년에 붓을 던지고 항일무장투쟁에 투신한 반석현립중학교(현재의 반석1중)의 맹걸민(孟杰民), 초향신(初向晨), 왕조란(王兆兰), 류극문 (刘克文), 후유춘(侯维春), 강백성(江柏生) 등 청년들의 혁명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이중 맹걸민, 왕조란, 초향신은 민정부에서 공포한 저명한 항일영렬 명록에 이름을 올린 렬사들이다.
반석시에서 서쪽으로 23킬로메터 떨어진 홍석라자산구에 자리잡은 홍석라자항일유격근거지는 남만에서 중국공산당이 건립한 첫 항일무장인 남만유격대의 대본영이고 중국공산당이 남만지구에서 건립한 첫 항일근거지이다. 남만유격대는 이곳에서 14년 항일투쟁의 첫 총소리를 울렸으며 이곳에서 동북항일련군 제1군을 건립하였다. 국가민정부에서 2014년, 2015년, 2020년 3차례에 걸쳐 공포한 저명한 항일영렬 명부에는 이곳에서 싸웠던 19명의 항일장령들이 포함되여 있다.
홍석라자항일유격근거지 안내비.
그들로는 바로 제1차 명부속의 맹걸민(1912-1933), 리홍광(조선족, 1910-1935), 왕인재(1910-1935), 송철암(1909-1937), 양정우(1905-1940), 제2차 명록속의 왕조란(1910-1933), 초향신(1910-1933), 박한종(조선족, 1911-1935), 리송파(조선족, 1904-1935), 소검비(1907-1935), 한호(조선족, 1905-1935), 리민환(조선족, 1913-1936), 조국안(1900-1936), 기유림(1910-1937), 리동광(조선족, 1904-1937), 양준항(1910-1938), 한인화(만족, 1913-1941), 류만희(조선족, 1917-1940)와와 제3차 명록속의 김창근(조선족, 1907-1935) 등이다.
홍석라자항일유격근거지에 복원한 항일련군병원.
홍석라자산항일유격근거지 유적지에는 항일련군밀영, 병원, 피복공장, 중공반석중심현위 옛터, 채소움과 전호 등이 복원되여 있었다.
홍석라자항일유격근거지에 복원한 채소움.
반석에서 50여 킬로메터 떨어진 연통산진 경내에 자리잡은 련화산동북항일련군홍색문화교육기지는 양정우가 이끄는 항일련군의 중요한 활동유적과 이야기가 담겨있는 곳이다. 이곳에는 '석호구정당정군지'광장과 '정우옥' 그리고 '항일련군사적전시관'이 있어 많은 유람객들에게 혁명전통교육을 하고 있었다.
련화산동북항일련군홍색문화교육기지의 석호구정당정군지”광장.
연통산진은 연통산역으로 유명하다. 연통산진 경내에는 현재 심길철로, 연백철로가 경유하는 연통산역 등 4개의 기차역이 있으며 심길고속도로, 202국도, 장청국도, 성도인 연황선, 장백선 등 5갈래 공로가 있어 명실상부한 교통요도이다.
1930년대 연통산역은 길림에서 조양진에 이르는 길해철로의 중요한 역이였기에 이곳에는 일본수비대와 괴뢰박격포련이 주둔해 있었다.
1932년 봄, 당조직의 파견을 받은 공산당원 조국안(산동군정대학 졸업생)과 송철암(북평중국대학 졸업생, 조국안의 외조카)은 영길현 울라가의 괴뢰 철도경비 제5려 제14퇀 박격포련에 ‘참군’하여 비밀리에 책반사업을 전개하였다. 그들의 간고하고도 세밀한 선전교육을 거쳐 중국공산당의 주장과 정책을 료해한 이 련의 많은 사병들은 일본침략자의 ‘망국노병’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들은 총부리를 돌려 항일무장투쟁에 참가할 것을 결심하였다.
연통산진 동흥촌 입구의 괴뢰박격포련기의유적 안내비.
조국안, 송철암, 장서린의 령도하에 이 부대는 남만유격대 활동지역과 거리가 가까운 반석현 연통산역 수비임무를 집행하는 유리한 시기를 리용하여 1933년 5월 28일 야밤중에 괴뢰련장을 사살하고 기의를 일으켰다. 29일 이른 새벽에 연통산진을 벗어나 련화산부근에 이르러서 인원을 확인하니 63명이였고 무기장비는 보총 50자루에 박격포 1문, 포탄 17상자였다. 이 대오는 후에 중국공농홍군 제32군 남만유격대의 박격포대대로 개편되였고 조국안이 대대장을, 송철암이 대대 정위를, 장서린이 중대장을 담임하였다.
연통산기의는 인민무장력량을 장대시켰을 뿐만 아니라 괴뢰군속에서 련쇄반응을 일으켜 괴뢰14퇀은 그후에도 여러번 총부리를 돌리는 사건이 일어나 적들의 '포위토벌'은 매우 빨리 흐지부지해졌다. 연통산기의를 통해 항일구국의 기치를 높이 든 반장 한인화는 후날 항일련군의 우수한 지휘원(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총사령부 참모 겸 경위려 정위)으로 성장하였다.
기의후 조국안은 박격포대대를 거느리고 유격전쟁에 뛰여들었다. 첫 전투는 반석 동북차전투였는데 박격포로 7발을 발사하자 적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유격대가 박격포를 사용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지 사람들로부터 북방의 ‘서금’이라 불리는 반석에 가면 가는 곳 마다에서 항일영렬들의 발자취를 찾아볼 수 있고 영렬들의 항일이야기을 들을 수 있어 마음이 경건해진다.
(취재에 많은 도움을 준 류대진, 리상하, 리정일, 최경준 등 분들과 반석시조선족로인협회 회장 김병희 등 관계자 분들께 진심으로 되는 감사를 드린다.)
/길림신문 김태국 기자
编辑:안상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