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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화산에 오르다

안상근 길림신문 2025-02-19 13:11:46

(화룡) 최진옥

10여년전 섬서성 화음시 경내에 위치해 있는 화산에 다녀온 적이 있다. 서안에서 120키로메터 떨어져 있는 화산은 북으로는 황하와 위수(渭水)를 굽어볼수 있고 남으로는 진령과 련접되여 있는데 대서북에서 중원을 드나드는 문을 든든히 지키고 있어 ‘기이하고 험하기로 천하 제일산’ 이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다. 

화산이라는 이름은 먼곳에서 바라보면 마치도 한송이 련꽃과 같이 보여 붙혀진 것이라고 한다. 화산은 중화민족문화 발상지의 하나이다. 청나라 저명한 학자 장태염(章太炎)선생의 고증에 의하면 ‘중화’(中华) ‘화하’(华厦)라는 명칭은 모두 화산으로부터 얻은 이름이라고 한다. 《상서》(尚书)에 화산에 대한 기재가 있는가 하면 《사기》(史记)에도 황제, 요, 순 등이 화산을 유람했다는 사적이 있고 진시황, 한무제, 무측천, 당현종 등 십여명의 제황들도 화산에서 대규모적인 제사활동을 벌렸다고 한다. 

화산은 기이한 봉우리와 험산준령, 깊숙한 골짜기와 험한 산길, 령롱한 샘물과 수려한 나무들, 사묘(寺庙)들이 가관이여서 자연풍경과 인문풍경이 한데 어우러져 천성적으로 볼거리가 있는 곳이다. 동、서、남、북、중 등 다섯개 봉우리가 각기 다른 특색을 가지고 있다. 

동쪽봉우리는 높기도 하지만 험하기도 하고 시야가 확 트이여 아침해가 솟아오르는 것을 바라볼수 있어 또 다른 풍경을 감상할수 있다. 서쪽봉우리는 련꽃을 닮았는데 가파롭고 해빛이 잘 들어 이름이 났으며 남쪽봉우리는 아아하게 치솟은 산봉우리가 하늘과 맞닿아 웅위하고 기세가 당당하다. 북쪽봉우리는 사면이 절벽이면서도 나무숲이 우거져 독특한 경치로 구름바다를 방불케 하고 중간봉우리는 비록 작지만 수림이 우거지고 환경이 아름다워 많은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데 음미할 가치가 많다고 한다.

화산은 험하기로 천하에 이름이 났는데 우리 나라 저명한 오악에서도 첫 손으로 꼽힌다고 한다. ‘자고로 화산은 한갈래 길 뿐이다’고 하였다. 화산에 오르려면 꼭 천자높이의 산, 백자깊이의 협곡, 아늑한 골짜기, 하늘로 오르는 층계, 룡등같은 고개 등 험한 요도들을 지나야 한다. 화산은 또 기후변화가 복잡하여 ‘구름속의 화산’ ‘비속의 화산’ ‘안개속의 화산’ ‘눈속의 화산’ 등 선경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뻐스에서 내린후 삭도를 타고 화산중턱까지 이르렀다. 삭도에서 골짜기를 내려다보니 산밑이 아츠럽게 내려다 보인다. 삭도가 고장이 나서 골짜기에 떨어진다면 분신쇄골이 되겠구나하고 생각하니 온 몸이 오싹해났다. 이 높은 곳에 어떻게 삭도를 설치했을까? 무척 궁금해 나면서 이렇게 위대한 공정을 완성한 일군들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문(山门)에서 산 정상까지 계단을 따라 걸어 오르려면 이틀이 좋이 걸려야 한다고 한다. 

삭도에 앉아 아래를 굽어보니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산으로 향한 층계를 따라 용감하게 도전하는 모습들이 저 멀리에서 눈에 아물아물 안겨왔다. 현대화설비의 덕분에 산 중턱에 있는 삭도종점까지는 몇 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삭도에서 내린후 산꼭대기를 바라고 걸음을 재촉했다. 바라보면 기암괴석들이 쭉쭉빵빵 올리 솟고 내려다 보면 천길 나락이 눈앞에 펼쳐졌는데 정신이 아찔해날 정도이다. 

마음을 다잡고 좁고 가파로운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유람객들의 안전과 편리를 위하여 암석에 철기둥을 박고 쇠사슬을 늘여 놓았는데 층계를 따라 산을 오르는데 많은 도움이 되였지만 자칫 발을 잘못 내디디면 천길나락으로 굴러 떨어질수 있었다. 특히 룡등산맥은 한마리 룡이 엎뎌있는 모양인데 산등성이 량쪽은 깎아지를듯한 낭떠러지이고 한메터 되나마나한 너비의 층계가 75도 각은 실히 되게 뻗어있어 산등성이 량쪽에 설치한 안전설비마저 무색할 정도로 머리카락이 쭈볏이 일어서게 하였다. 룡등산맥을 절반도 오르지 못했는데 다리맥이 풀리고 숨이 턱에 닿았다. 하는수 없이 철기둥을 붙잡고 층계에 털썩 주저 앉아 한참씩 숨을 돌려야 했다. 내려다 보면 깊고 깊은 골짜기가 아득하게 내려다 보인다. 

이렇게 가파롭고 좁고 위험한 산길에서 물, 간이 식품, 여러가지 채소들을 실은 멜대를 어깨에 메고 힘겹게 산을 오르는 짐군들이 눈에 띄웠다. 생계를 위해 얼굴의 땀을 훔칠 겨를도 없이 몸을 내번지고 돈을 벌어야 하는 그들이 측은하게 느껴졌다. 해볕에 가무잡잡하게 타버린 그들을 보면서 누군가의 아들이고 누군가의 남편이고 누군가의 아버지로 살아가는 그들의 삶이 얼마나 힘겨울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짠해났다. 수려한 경치에도 한 눈 팔지 않고 험하고 가파로운 산을 힘겹게 톺아오르면서 오로지 자기의 힘으로 한 푼, 두 푼 벌어들이는 돈이야말로 진정 그들의 로동의 대가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하니 참으로 감개가 무량하였다. 

산정상에 있는 ‘금쇠관’(金锁关)은 하늘길로 통할수있다고 하여 ‘통천정’(通天亭)이라고도 부른다. 여기까지 전체 길이는 25화리이고 9,567개의 계단으로 되여있다. 삭도를 탔으니 망정이지 그 계단을 오르려면 아마도 숨이 차고 다리맥이 풀려 중도에서 산귀신이 되였을지도 모른다. 귀를 스쳐가는 곳이라고 바위에 써놓았는데 말그대로 바위에 입김을 불어 넣을 정도로 안고 돌아야 했다. 

“길을 걸으면 풍경을 감상하지 말고 풍경을 감상하면 길을 걷지말라”(走路不看景,看景不走路)는 패말이 유난히 내 눈길을 끌면서 나에게 더 나아가서 모든 유람객들에게 무엇인가를 암시하고 일깨워주고있는 듯하였다. 화산의 험한 산세가 시시각각 사람의 생명을 노리고 있음을 페부로 느낄수 있었다. 숨을 죽이고 바위를 안고돌며 그 구간을 지나고나니 내 뒤잔등에 식은 땀이 흐르고 있었다. 안전시스템에 의지하여 한발자국, 한발자국 산에 힘겹게 오르면서 이 많은 보호시설을 갖추느라 땀 흘렸을 보호구 로동자들의 신근한 로력의 대가에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그렇게 험한 산세에도 조금이라도 평평한 곳이 있으면 무조건 정자가 있고 사당이 있었다. 평안열쇠를 파는 장사군들이 정자나 사당앞에 늘어 섰는데 화산에 오르는 이들의 발목을 잡기에는 넉넉하였다. 저마다 열쇠 하나씩 사서 온가족의 평안과 건강을 기원하는 글들을 새겨서는 주로 사당이 있는 가까운 곳의 쇠사슬에 붉은색 끈과 함께 얽어매놓았는데 령험한지는 몰라도 평안과 행복과 건강을 바라는 유람객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는 것만은 명백하였다.

‘금쇠관’을 지나 우리가 선택한 봉우리는 남쪽 봉우리였다. 남쪽봉우리는 해발2160.5메터로서 화산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일뿐만아니라 오악에서도 제일 높은 봉우리이다. 우거진 숲속에 뻗어간 오솔길은 때로는 평평하고 때로는 가파로우면서 좀처럼 곁눈을 팔지 못하게 하였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남쪽봉우리의 정상까지 오르고 보니 하늘과 높이를 나란히 비길수 있고 하늘의 별이라도 당금 따올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시야가 확 트이여 저 멀리 내다보이는 가운데 뭇산들이 기복을 이루며 촘촘하게 서있고 황하와 위수가 굽이굽이 흐르는 가운데 모래 덮힌 평원이 눈이 모자라게 펼쳐져 있다. 실로 화산의 웅위한 자태에 감탄이 저절로 나고 하늘과 맞닿은 감을 주면서 구름우에 두둥실 떠있는 듯한 신기한 착각에 빠져들게 하였다. 

바람이 어찌나 세찬지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었다. 이 높은 정상까지 오르고 높은 소리 한번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하산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두손을 입에 나팔처럼 대고 젖먹던 힘까지 다하여 “야호—”를 목이 터져라고 웨쳤다. 메아리를 기대했지만 산이 하도 높이 솟아서인지 아니면 내 목소리가 세찬 바람에 감기여 저멀리 날려가 버렸는지 메아리는 들리지 않고 다만 귀뿌리를 자극하는 바람소리만 윙윙 귀전을 사정없이 때릴 뿐이였다.

화산에 오르면서 산의 험함을 알게 되였고 다리가 늘씬하고 숨이 턱에 닿아 헐떡이면서 오르다보니 인생의 그 무엇인가를 터득하게 되였다. 욕심도 과하면 내 몸을 망칠수 있다. 내 것이 아니면 욕심을 삼가하고 순리대로 사는 것을 삶의 지조로 삼으면서 평범하게 살아왔다.“길을 걸으면 풍경을 감상하지 말고 풍경을 감상하면 길을 걷지말라” 화산에 세워진 패말의 글이 내 마음속에 자리를 잡고있으면서 욕심을 버리고 차례진 일에만 전념하라고 나를 항상 채찍질하였다. 

출근을 하면서 남들이 무어라고 해도 나는 업무밖의 모든 욕심을 버리고 오롯이 나한테 차려진 업무에만 몰두하였다. 화산의 남쪽봉우리에서 내 귀뿌리를 자극하는 윙윙거리는 세찬 바람속에서 젖먹던 힘까지 내여 목청껏 웨쳤지만 너무나 미세했던 나의 목소리는 메아리로 돌아오지 않았지만 업무에 대한 나의 열정과 지극 정성과 근면함과 집념들이 37년간의 출근 생애의 끄트머리에 알찬 수확의 메아리로 되여 나에게로 돌아왔다.

그랬다. 웅위로운 산앞에서 우리 모두는 너무나 작은 티끌같은 존재이다. 산은 우리가 이 세상을 옳바르게 살아가도록 이끌어주는 무언의 존재이고 스승이다. 

살아가면서 이것도 저것도 모두 내 손아귀에 넣으려는 욕심, 산보다도 더 큰 욕망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많은 사람들이 통절하게 인지하고 있다. 그래서 웅위로운 산앞에서 우리의 오만은 무색해질 수밖에 없고 우리의 욕심은 절제할 수밖에 없고 위대한 자연 앞에서 우리는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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