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강성 밀산시 조선족직공활동실에서는 장장 8년을 하루와 같이 뇌경색으로 병상에 누워있는 어머니 림정숙씨(89세)에게 온갖 정성을 쏟고 있는 효도모범 허영수(68세)씨의 이야기가 미담으로 전해지고 있다.
2018년 8월, 한국의 한 인테리어회사에 근무하던 허영수씨는 어머니가 려행길에 허리를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안정된 일자리, 두툼한 월급봉투도 마다하고 부랴부랴 귀국길에 올랐다. 그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집청소에, 어머니의 병시중에 하루 세끼 영양식까지 하면서 ‘주부 노릇에 효자 노릇’까지 도맡아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그렇게도 정정하던 아버지까지 허리를 다쳐 드러눕는 바람에 두 로인을 동시에 시중할 수밖에 없었다.
“녀자도 아닌 60대의 남자가 어떻게 장기환자 두분을 동시에 시중한다고 그러오? 양로원에 보내고 한국에 가서 양로비나 대는 쪽이 훨씬 편하지…” 하도 안쓰러워 가까운 이웃들도 동정의 눈길과 함께 조언을 했다.
“여태껏 일만 일이라고 효도를 못한 것만 해도 한스러운데 어떻게 부모님을 양로원에 보낸단 말인가?”
허영수씨에게 부모를 양로원에 보낸다는 것은 절대 안되는 일이였고 그렇다고 혼자서 장기환자 두분을 돌본다는 것도 말 그대로 장난이 아니였다. 특히 왜소한 허영수씨를 놓고 말하면 180센치메터의 우람한 체구의 아버지와 체대 좋은 어머니를 돌본다는 것은 너무도 힘에 부친 일이였다. 종창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공기 침대를 구입하고 하루에도 몇번씩이나 부모님의 몸을 뒤쳐야 했는데 허리가 삐끗하여 다친 적도 한두번이 아니였다. 하지만 그는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내가 있는 한 부모님을 양로원에 보내서는 절대 안된다.”
그는 식이치료에 관한 도서들을 찾아 부지런히 읽었으며 매일매일 끈질기게 실천했다. 삼라만상이 깊이 잠든 새벽에 일어나 땅콩, 대두, 록두, 검은콩, 팥을 갈고 우유를 넣어 영양두유를 만들었고 양파, 당근, 양배추, 호박, 브로콜리를 찜통에 넣어 살짝 쪄낸 후 믹서기로 갈아 류식을 만들었다. 하루 세끼 부모를 대접하고 나서 집안 청소를 하고 빨래하고 의사를 청해 부모님께 링게르를 꽂아드리고 링게르를 다 맞은 후에는 바늘을 뽑고 몸을 닦아드리고… 허영수씨는 거의 매일 이른새벽부터 밤 열두시까지 분주히 돌아치지 않으면 안되였는바 어느새 직장인에서 ‘전직 주부’, 간병인으로 신분이 바뀌였다.
바삐 돌아치는 사이에 세월은 살같이 흘러 어느덧 4년이 지난 어느날, 부모님의 병이 큰 차도를 보이지 않더니 병환에 시달리던 아버지 허원전씨가 그를 애타게 부르는 아들 허영수씨와 병상에 누워있는 안해 림정숙씨를 남겨두고 저세상으로 떠났다. 허영수씨는 채 하지 못한 효도 때문에 울고 또 울었다.
하지만 이렇게 울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허영수씨에게는 아직 그의 손길을 바라는 어머니가 계시지 않는가?
직공활동실과 친구들의 도움으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난 허영수는 또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어머니 병시중에 달라붙었다. 매일 한밤중이면 꼭 한번씩 일어나 기저귀를 갈아드렸고 날이 희미하게 밝아오는 이른새벽에는 따스한 꿀물을 풀어 어머니께 대접하고는 영양식단을 만들고 세탁기를 돌렸으며 언제나 어머니 식사 대접을 마무리하고 나서야 허기진 배를 달래곤 했다. 매주 한번씩 어머니의 몸을 깨끗이 닦아드렸고 알뜰 주부처럼 집살림을 해나갔다.
병상에 누운지 6년이 넘어가면서 어머니의 잔등과 허리에 종창이 나기 시작했다. 안달아난 허영수씨는 한국, 향항, 일본 등지에서 종창에 좋다는 약이란 약들은 모두 사들였는데 1년만에 어머니의 종창이 가뭇없이 사라졌다. 참으로 기적같은 일이였다.
“년로하신 부모님은 아기와 꼭 같아요. 얼려주고 놀아주고 돌봐주어야 하지요. 제가 아기 대하듯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면 어머니는 금방 갓난애처럼 대답하면서 환하게 웃으시거든요. 어머니의 웃는 모습을 보면 모든 피로가 가셔지곤 해요.”
허영수씨가 다정한 눈길로 어머니 병상에 다가가 “림정숙씨~” 하고 부드럽게 부르자 어머니는 “오~” 하고 대답하면서 어린애처럼 벌쭉 웃어보였다. 오직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볼 수 있는 감동적인 장면은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었다.
“제가 뭐 대단한 일을 했다고 그러십니까? 누구나 제 앞에 닥치면 다 할 수 있는 일이지요. 부모님은 우리를 이 세상에 낳아주셨고 사랑의 품으로 우리를 키워주셨습니다. 5남매중 맏아들인 제가 부모님께 효도하고 동생들에게 좋은 본을 보여주는 것은 너무나도 응당한 일이 아닙니까?”
진지하고 소박한 허영수씨의 말 속에는 겸허하고 바른 심성과 착한 마음이 그대로 엿보였다.
순간, 작고 왜소한 체구의 허영수씨가 더없이 위대해보였고 허영수씨가 지키는 림정숙씨의 집은 유난히 밝고 따뜻해보였다.
/흑룡강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