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항일민족영웅 양정우는 동북항일련군의 주요한 창시자와 지도자의 한 사람이다.
양정우의 본명은 마상덕이며 1905년 하남성 확산현의 한 농민가정에서 태여났다. 양정우는 학창시절에 반제애국운동에 적극 투신하였다. 1926년에 중국공산주의청년단에 가입하고 1927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대혁명이 실패한 후, 양정우는 확산봉기를 조직하고 농민혁명군의 총지휘를 맡았다. 1928년 가을에 개봉, 락양 등지에 가서 비밀혁명사업에 종사하였다. 1929년 봄, 양정우는 동북에 가서 중국공산당 무순특별지부 서기로 있으면서 로동자운동을 령도하였다. 양정우는 하남성과 동북에서 5차례 체포되여 투옥되였고 여러차례 가혹한 고문을 당했으나 시종 절개를 굽히지 않았다.
1931년 ‘9.18’사변 이후 양정우는 중공할빈시위 서기 겸 만주성당위 군사위원회 대리서기로 있었다. 1932년 가을 남만에 파견되여 중국로농홍군 제32군 남만유격대를 조직하고 정치위원으로 있으면서 반석 홍석라자를 중심으로 한 유격근거지를 창설하였다. 1933년 9월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 제1독립사 사장 겸 정치위원으로 있었다. 1934년 4월, 17개 항일무장과 련합하여 항일련군 총지휘부를 설립하고 총지휘를 맡았다. 같은 해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 군장 겸 정치위원을 지냈으며 1936년 7월에는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총사령관 겸 정치위원으로 있었다. 양정우는 부대를 거느리고 장기간 동남만 대지를 전전하면서 싸웠는데 그의 이름만 들어도 적들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일본군과 괴뢰군은 련속되는 타격을 받은 후 동북항일련군에 대한 군사‘토벌’, 경제봉쇄와 정치적 투항 권유를 다그치는 동시에 양정우에 대해 현상금을 내걸고 체포에 나섰다.
1939년 동남만지구의 추동 반‘토벌’ 작전에서 양정우는 부대를 지휘하여 싸움에 나섰다. 자신은 경비려단을 이끌고 길림 몽강 일대를 전전하다가 나중에는 홀몸으로 적들과 5주야를 싸웠다.그는 상상할 수 없는 끈기로 적과 완강한 투쟁을 견지하면서 탄약이 다 떨어질 때까지 싸웠는데 1940년 2월 23일 몽강현에서 35세의 나이로 장렬하게 희생되였다. 2009년, 양정우는 ‘새 중국 창건에 뚜렷한 기여를 한 100명의 영웅모범인물’로 추서되였다.
간고한 투쟁에서 양정우는 확고한 신앙과 신념, 고상한 애국지조와 위대한 희생정신을 보여주었으며 백산흑수와 림해설원의 깊은 곳에 불요불굴의 민족 기량을 우뚝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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