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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인생]

‘나이는 수자’, 내 인생에 ‘은퇴’란 없다

—길림성조선족로인협회친목회 리창수 회장의 열정 인생

길림성조선족로인협회친목회 리창수회장

2025년, 길림성조선족로인협회친목회 회장단회의 참가자들 .

“친목회 상임리사회와 회원 여러분의 신뢰에 감사드립니다. 더욱 활발한 활동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올 년초, 길림시에서 개최된 길림성조선족로인협회친목회 회장단회의에서 만장일치 통과로 련임하게 된 리창수(87세) 회장이 발표한 소감이다.

“올 7월에 길림성조선족로인협회친목회는 길림시에서 친목회 설립 15주년 경축 ‘익수당배’ 성악시합을 개최하게 됩니다. 요즘은 행사 사전 준비 작업으로 두루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답니다.”

1999년 길림시조선족군중예술관 관장직에서 물러난 후 26년째 조선족 로년사업의 최전선에서 활약해온 그는 이 정도 행사 기획은 식은 죽 먹기라며 여유로운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빈틈없는 성격 탓에 세심한 준비를 거듭하고 있다.

제2의 고향 길림, 60년의 발자취

“60년 넘게 길림에서 살았지만 마음속 고향은 언제나 연변입니다.” 

1939년 연변 룡정의 두만강변 마을에서 태여난 리회장은 어린시절 가족의 리산을 겪으며 숙모 손에서 자랐다. 고중 졸업후 길림시강남사범학원에 진학, 졸업 당시 ‘당과 인민의 은혜에 보답하겠다’는 다짐으로 화전현 산골학교에서 15년간 교편을 잡았다. 이후 길림시문화국 관계자의 눈에 들어 1977년 길림시조선족군중예술관에 전근하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조선족 문화예술의 든든한 버팀목

길림시조선족군중예술관 문예부 주임으로 재직 기간 그는 한철근 등 조선족 음악인재를 발굴하는 데 공헌이 크다. 당시 한철근은 아라디조선족마을 문예대 대장으로 활동중이였으나 리창수의 간곡한 설득으로 조선족군중예술관에 합류해 후일 길림지역 유명 작곡가로 성장했다.

리창수 회장은 1990년대 길림시영화회사당위 서기, 문화관 관장 등을 거치며 지역 문화예술 발전에 힘썼다.

26년 차 로인협회의 코기러기

1999년 퇴직 직후 길림시조선족로인협회 회장으로 추대된 그는 “등 떠밀려 시작했지만 이제는 사명감으로 일한다.”고 말한다.

길림시조선족로인협회 회장으로 활약하던 2011년부터는 협회 문예부의 동북3성 순회공연을 주최하며 로년층 문화교류의 장을 열었고 2019년부터는 길림성조선족로인협회친목회를 이끌고 회원수가 급감하는 환경 속에서도 활기찬 사업을 펼치고 있다.

2011년 길림성조선족로인협회친목회 설립 당시만 해도 길림성조선족로인협회(연변지역 제외) 회원수가 무려 7, 8만명이였는데 지금은 2만명 미만으로 줄어든 실태라고 리창수 회장은 소개했다.

올해 하반기 친목회 일정의 하나로 화전, 사평 등지 순방 계획을 확정한 그는 “건강 문제없어요!”라며 새시대 건강한 87세 로인의 풍모를 뽐낸다. 술자리에서도 반근 주량을 자랑한다는 그는 “나이라는 수자에 얽매이지 않고 오늘도 최선을 다해 일합니다.”라며 소탈하게 웃었다.

/ 차영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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