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약재의 가치는 영원하지만 이에 대한 인식까지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옛날에는 귀한 대접을 받았지만 사람들의 인식에는 낯설어진 약재들이 있다. 너무 귀해 활용 사례가 줄면서 명맥이 끊긴 탓이다. 황칠(黃七)이 대표적이다. 학명 자체가 ‘병을 가져가는 만병통치약’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일상에서 접할 기회가 줄어들면서 황칠의 다양한 효능 또한 잘 알려지지 않았다. 사포닌 함량이 높아 ‘나무인삼’으로도 불린 황칠은 실제로 뿌리에서 인삼 냄새가 난다고 한다.
T림파구·B림파구 늘여 면역 활성화
황칠은 알고 보면 조선 삼국시대부터 최고급 약재로 여겨져온 천년 이상의 력사를 가진 약재다. 백제, 통일신라,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주요 수출품이자 조공품이였다. 황칠의 다양한 쓰임새는 고서에 잘 나와있다. 중국 명나라의 본초학 연구서인 《본초강목》에는 급성 심통과 복통, 관절통에 대한 효과가 기록돼있다.
또 모든 약재의 효능을 집대성한 조선의 《중약대사전》에는 “풍기와 습을 제거하고 혈액을 순환시키고 통증을 멈추게 하며 풍습비통과 두통, 생리불순, 넘어져 다치거나 종창 등을 치료한다.”고 명시돼있다. 특히 《동의보감》에는 황칠에 대해 “갑자기 아래배가 아프고 허리를 펴지 못하는 신기통, 구토, 설사를 하는 곽란 치료에 도움된다.”고 적혀있다.
이 밖에도 “풍습비통과 허리 통증, 소아마비 후유증, 반신불수, 타박상, 생리불순 등을 치료한다.”(《광서본초 선편》), “편두통과 어깨 신경통을 치료한다.”(《전국중초약총집》) 등 다양한 기록이 있다.
황칠의 대표적인 효능은 ‘간 기능 개선’(피로 해소)과 ‘면역 활성 증진’이다. 먼저 간 기능 개선과 관련한 연구를 보면 사염화탄소로 산화적 손상을 입은 간세포를 황칠나무 잎 열수 추출물로 처리하고 생존률을 분석한 결과 추출물의 농도가 증가함에 따라 간세포의 생존률이 증가했다.
연구에 따르면 황칠나무잎 열수 추출물은 간세포에 대한 보호 기능이 우수하다. 면역 활성에 대한 근거도 확실하다. 실험용 쥐에서 발효 황칠 추출물의 면역 조절 활성을 분석한 결과 표준실험실 조건에서 황칠 추출물을 투여한 쥐의 경우 T림파구, B림파구, 비장 세포가 모두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T·B 림파구는 백혈구의 일종으로 면역의 핵심 기능을 담당한다. 또 비장은 면역 세포의 기능을 돕고 몸에 있는 세균·항원 등을 걸러내며 로화된 적혈구를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황칠은 아토피 피부염과 관련된 면역 세포 불균형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황칠나무잎 열수 추출물을 제조해 실험용 쥐에게 용량을 달리하여 경구투여한 후 면역 조절에 관여하는 지표를 측정한 결과 추출물 투여 쥐의 아토피 피부염 증상이 완화된 것으로 관찰됐다. 특히 T세포 증식 기능은 증가, B세포 증식 기능은 감소했으며 경표피 수분량은 증가했다.
항산화·항염·항당뇨 효과까지
황칠에는 항산화·항염·항당뇨 효과까지 있다. 클로로겐산, 페룰산, 퀘르세틴, 루틴 등 황칠에 함유된 주요 성분 때문이다. 클로로겐산은 천연 화합물로 몸안에서 과산화지질의 생성 억제, 콜레스테롤 생합성 억제, 항산화 등의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식사후 혈액으로 글루코스(단당류) 방출을 느리게 하고 심장질환을 예방하며 혈당 수치를 감소시키는 것으로 확인됐다.
페룰산 역시 항산화 작용과 함께 혈당 강하 및 콜레스테롤 저하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성분이다. 페룰산은 멜라닌 색소 제거와 기미·주근깨 생성 억제 효과도 우수하다.
한편 퀘르세틴은 항산화제 활성과 함께 단백질 활성을 조절하고 에스트로겐 수용체를 활성화하는 것으로 보고된다. 플라보노이드에 속하는 루틴의 경우 인체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되지 않기 때문에 외부에서 보충해줘야 하는 성분이다. 항산화 작용뿐 아니라 혈관 강화, 염증 억제에 도움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