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지 선행중 효도가 첫째라 했다. 장춘시에 사는 박금자(53세)는 중학교 교단을 지키는 평범한 교원이다. 하지만 그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평범하다’는 말이 얼마나 부족한지 금방 알게 된다. 시부모 봉양 30년, 친정 부모 모시기 20년, 갓난 조카 양육 18년… 이 수자들 하나하나가 남다른 헌신의 발자취를 뚜렷이 보여준다.
30년 며느리의 자리… ‘효도란 발걸음’
결혼과 함께 시부모와 한지붕 아래 살림을 꾸린 박금자는 수십년째 로인들의 일상을 곁에서 살뜰히 챙겨왔다. 밥 한끼 차릴 때도 건강을 먼저 헤아렸고 계절이 바뀌면 옷 한벌 챙기는 일도 그의 몫이였다.
2010년 시어머니가 뇌출혈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뒤에도 박금자는 흔들리지 않았다. 홀로 남은 시아버지 곁을 더욱 가까이 지켰고 로인이 페암 진단을 받자 병원 동행과 밤샘 간호를 도맡았다. 2024년 시아버지가 88세로 편안히 눈을 감기까지 그의 손길은 단 하루도 멈추지 않았다. ‘효도란 말이 아니라 발걸음’이라는 진리를 박금자는 30년의 삶으로 묵묵히 증명했다.
농촌 부모님을 도시로… “손 하나 까딱 안하셔도 됩니다”
2007년, 박금자는 농촌에서 평생 고생만 해온 친정 부모님을 장춘으로 모셔왔다. 생활비는 물론 의식주와 병원비까지 부부가 전부 책임졌다. 해마다 시간을 따로 내여 부모님과 함께 려행을 떠나는 일도 거르지 않았다. 산천경개를 함께 바라보며 나누는 담소 한마디가 부모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임을 그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그런 딸의 곁에서 진정한 로년의 행복을 누렸다.
조카를 내 아이처럼… ‘책임이 곧 사랑’
남동생 부부가 한국으로 일을 떠나면서 4개월 된 조카가 박금자 품에 맡겨졌다. 포대기에 싸인 아기가 어엿한 청년으로 자라기까지 18년, 박금자는 그 아이의 교육과 건강, 성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졌다. 잘못된 행동에는 원칙을 분명히 세웠고 아이가 반발해도 흔들리지 않았다. 지나친 사랑이 아닌 바른 사랑으로 아이의 손을 잡아 이끈 덕분에 아이는 어엿한 청년으로 성장했다.
22년째 섣달그믐날 밥상 준비…대가족의 구심점
2005년부터 시작된 섣달그믐날 가족 모임은 올해로 꼬박 22년째이다. 가장 많을 때는 스물여덟명이 한식탁에 둘러앉았다. 커다란 밥상을 차리는 수고도, 어른들을 챙기며 분주히 오가는 번거로움도 박금자에게는 기쁨이였다. 남편의 삼촌이 연길에서 위암 진단을 받고 홀로 남겨지자 박금자 부부는 망설임없이 로인을 장춘으로 모셔와 치료를 도왔다. 로인이 연길로 옮겨간 뒤에도 두 도시를 수차례 오가며 병간호를 이어갔고 로인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후사까지 정성껏 치렀다.
아들에게 물려준 효, 헌신이 헛되지 않은 순간
박금자는 아들에게 귀감이 되였다. 아들이 외지에서 석사과정을 밟던 어느 날 영상통화중 할아버지가 “손자야, 보고 싶구나.”라는 한마디에 아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그리고 며칠 뒤 먼길을 달려와 할아버지를 꼭 껴안았다.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보며 박금자는 ‘이 모든 것이 헛되지 않았구나.’라고 생각하며 큰 보람을 느꼈다.
길림성의료자원봉사자협회 비서장, 장춘시남관구사회사업및자원봉사련합회 부회장으로도 활동하는 박금자는 가정에서 쌓아온 따뜻한 마음을 사회로도 넓혀가고 있다.
“저는 특별한 일을 한 게 없습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량심껏 했을 뿐입니다.”
평범해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그 길을 쉰을 넘긴 오늘에도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박금자씨이다. 효도와 헌신, 그리고 가족을 향한 사랑—그의 삶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잊고 지내는 소중한 가치들을 조용히 일깨워준다.
/김민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