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가 서로 다른 문명간 대화 방법을 모색함과 동시에 각자만의 정체성을 유지하려고 힘쓰고 있다. 이 가운데 중국의 고대 학술기관인 ‘서원(书院)’이 주목받고 있다.
▩ 다름에서 찾는 공감대
당나라(618―907)에서 기원한 ‘서원’은 교육, 수장고, 제사 및 학술 토론을 집대성한 중국 고유 기관이다. 송나라(960―1279)에 이르러 서원은 주요 지식 중심지로 자리잡았으며 학자들은 서원에서 비판적 성찰과 학문적 교류 및 학술 토론을 자주 벌였다.
중국 ‘서원’의 지혜는 명나라(1368―1644) 시기 들어 서양과 공명하기 시작했다. 16세기 후반 이딸리아 선교사 마테오 리치는 강서성 남창시에 있는 예장(豫章)서원을 방문해 당시 유명한 백록동(白鹿洞)서원의 장황(章潢) 원장과 교류를 나눴다.
선교사 리치는 서양의 천문학, 지리학, 수학 지식을 가져왔고 수천년에 걸친 유교 리론을 계승한 인물인 장황 원장의 지도 아래 유교 경전을 공부했으며 장황 원장은 자신의 연구에 서양의 지리학 지식을 반영했다. 이러한 교류는 문화의 상호 존중과 교류의 특징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 문명 대화의 새로운 플래트홈으로
조선시대 문신이자 학자였던 주세붕은 서원에서 령감을 받아 1543년 백록동서원을 모티브로 한 조선반도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白云洞)서원을 건립했다. 그후 약 200년에 걸쳐 이 지역에는 900여개의 서원이 생겨났다. 백록동서원의 교훈은 오늘날까지도 한국과 일본의 일부 교육기관에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또 다른 조선시대 학자인 리황은 주자학(朱子学)을 발전시키기 위해 백운동서원을 바탕으로 도산(陶山)서원을 세웠다. 이러한 문화적 흔적은 일상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 1천원권 지페 앞면에는 리황의 초상화가, 뒤면에는 도산서원이 그려져 있어 모든 한국인에게 친숙한 문화유산이 됐다.
중국서원연구쎈터 주임 등홍파는 해외 서원은 중국 본토 서원과 뿌리가 같지만 전파 시기와 지리적 위치 등 요인의 영향으로 각자 특색있는 서원으로 발전해 나갔다고 짚었다. 구체적으로 한국 서원은 례의를 중시하고 일본 서원은 출판에 중점을 두며 동남아시아 화교 서원은 지역사회와 고향을 련결하는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에 들어서도 서원은 다시 한번 문명간 대화를 위한 플래트홈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산동 니산(尼山)세계문명포럼은 서원 문화로 전세계 학자들을 련결하고 있고 호남 악록(岳麓)서원은 첨단 디지털 인문학 연구를 위해 국제 교수진을 모집하고 있다. 또한 백록동서원의 강의는 실시간 스트리밍을 통해 전세계로 전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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