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연이는 참 착한 아가씨예요. 거동이 불편한 우리 로인들의 손과 발이 되여 로심초사하죠. 우리 친손녀나 다름없어요.”
화룡시 룡성진 신원촌의 장기환자 어태근의 부인 리경자할머니는 촌의 향촌진흥 전문간부 김선연(30세)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80세 고령의 어태근로인은 “당과 정부에서 우리 촌에 이렇게 똑똑하고 마음씨 곱고 일처리 또한 똑 부러지게 하는 우수한 처녀를 보내주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소!”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최근, 기자 일행은 “드높은 열정으로 농촌에 뿌리박고 촌민들과 함께 향촌진흥의 꿈을 무르익혀가는 젊은 일군이 있다.”는 화룡시 룡성진 신원촌 촌주재 서기 김성걸의 제보를 받고 김선연을 만나 그의 촌사랑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한국 이화여대 석사졸업생이 시골로 온 리유는?
2021년 가을, 한국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마친 김선연에게는 많은 선택지가 있었다. 한국에 남을 수도, 해외 다른 나라에 취직할 수도, 중국의 대도시로 진출할 수도 있었다. 특히 졸업하자마자 상해 등 국내 대도시에 취직하면 바로 호적을 올릴 수 있는 유혹적인 우대정책도 있었지만 그녀가 택한 길은 남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바로 고향 연변이였다.
“서울 이태원 거리를 활보하다가 졸업하자 왜 굳이 시골마을을 찾아가냐고 묻는 사람이 주변에 많았어요. 하지만 낯선 외국에서 고향 연변만이 줄 수 있는 안정감과 중화민족공동체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꼈어요. 내가 배운 지식으로 나를 키워준 고향에 보답하고 촌민들의 향촌진흥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어요.”
2023년, 김선연은 연변 기층관리 전문간부 공개초빙 시험을 거쳐 신원촌에 향촌진흥 전문간부로 배치받았다. 그렇게 시작된 그녀의 시골살이가 어느덧 2년 반에 가까와온다.
현장 경험과 소통으로 열어간 촌민들과의 신뢰의 문
“학교에서 배운 지식은 체계적이지만 실제 촌의 구체적이고 복합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는 교과서에서 배운 지식으로는 해결책을 찾을 수 없었어요. 특히 해외에서 빠른 생활방식과 업무 처리 방식에 익숙해진 저에게 인간관계를 중시하고 서로 신뢰를 쌓아나가는 촌의 ‘관계 중심’의 일처리방식은 초반에 진짜 적응하기 쉽지 않더군요.”
하지만 그녀에게는 그녀만의 특별한 ‘무기’가 있었다. 바로 뛰여난 조선어와 한어 능력에 뒤받침된 소통 능력이였다. 조선족 촌민 비률이 높은 신원촌에서 그녀의 이런 우세는 촌민들과의 교류와 신뢰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처음 마을에 왔을 때 가장 큰 문제는 정보의 벽이였어요. 중앙과 지방 정부의 중요한 정책들이 한어 문서로 내려오는데 나이가 드신 어르신들은 내용을 리해하기 어려워하셨죠.” 그녀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이런 정책 안내문을 조선어로 번역했는데 어렵고 딱딱한 행정 용어를 촌민들이 일상에서 쓰는 쉬운 말로 풀어 설명했다.
“정책은 ‘밭두렁’까지 전달되여야 의미가 있잖아요. 단순히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촌민들이 진정으로 리해하고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려면 언어와 생활방식에 맞춘 해석이 필수적이지요.” 그녀는 단순히 문서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소규모 마을 회의나 가정방문 때면 ‘이야기’방식으로 정책을 풀어서 설명하고 촌민들의 자문에도 해답해주었는데 년세 많은 촌민들의 리해에 훨씬 도움이 되였다. 또한 이러한 노력은 실질적인 혜택으로 이어졌다. 촌민들이 작성해야 할 서류가 있으면 대신 작성해주고 신청 절차를 도우며 정책이 ‘문서’에서 ‘실천’으로, 촌민들의 ‘생활혜택’으로 직접 련계되도록 했다.
“처음에는 손녀 벌의 낯선 젊은이가 왔다고 촌민들이 어색해했는데 제가 자주 찾아뵙고 도움을 드리다 보니 이제는 촌민들이 저를 보면 먼저 반갑게 손을 잡아줘요.”
마을의 고령화로 인해 컴퓨터 활용이 어려운 촌간부들을 대신해 전자문서 작성, 데이터 정리 등 디지털 업무를 총괄하는 것도 그녀의 중요한 역할이다.
“젊은 세대의 디지털 력량은 향촌 발전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련결고리이고 행정의 효률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기초작업이라고 생각됩니다. 로간부들의 풍부한 현장 경험과 제가 가진 디지털 기술 력량이 결합되여 촌 운영이 더 견고해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라고 말하는 그의 눈빛은 단호했다.
흙길을 포장도로로, 촌민들 마음의 길도 열다
그녀의 진심은 촌민들을 위한 일상 속에서 빛을 발했다. 그녀는 마을 일을 시작하며 가장 가슴 아팠던 일은 비만 오면 진흙탕으로 변하는 흙길이였다고 말한다. 주민들의 일상적인 통행은 물론 농작물 운수에도 큰 지장을 주었던 것이다. 이에 신원촌당지부 리광호 서기는 시교통운수국을 수차례 오가며 낡은 도로 개선 공사를 쟁취하고 예산 확보에도 성공했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다양한 리해관계 조정과 끊임없는 소통을 이어갔다. 촌민대표회의를 조직해 의견을 모으고 촌간부들과 함께 집집마다 방문해 농촌도로 공사의 필요성을 상세히 설명했다.
가장 민감했던 부분은 공사구역이 일부 주민의 앞마당이나 작은 터밭을 점하게 되는 경우였다. 그때마다 해당 가정을 방문해 구체적인 협의를 진행했다. 공사로 인한 부분적 손실이나 불편에 대해 공사후 더 나은 상태로 복원하거나 작은 편의시설을 함께 설치하는 등 실질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하며 리해를 구했다. 그녀는 현장을 오가면서 시공팀과 촌민 사이의 소통 에 가교 역할을 자처했다. 그때 애간장을 태우다 못해 울음을 터뜨린 적도 한두번이 아니였다고 회상했다.
2024년 6월부터 8월까지 두달간의 긴장한 공사 끝에 마침내 깨끗하고 넓은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촌의 모든 가정 대문 앞까지 이어졌다. 길이 준공되던 날,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이제는 비가 와도 걱정이 없겠구나.”라던 촌민들의 한마디 말에 모든 고생이 눈 녹듯 사라졌다는 그녀이다.
“그때 깨달았어요. 기술적인 공사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의 길’을 열어가는 일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촌민들의 듬직한 ‘손녀’와 ‘딸’이 되여
신원촌에서 일해오면서 마을은 그녀의 새로운 삶의 터전이 되였고 그녀는 마을 사람들의 ‘딸’, ‘손녀’가 되였다. 특히 고령화가 심한 신원촌에서 젊은이들 대부분이 도시로 나가고 거의 전부 로인들이 생활하고 있는 상황에 비추어 그녀는 평소에 교통카드 충전, 약 대신 구매, 잔심부름 등 생활속 불편한 점을 직접 챙겼다. 특히 명절에는 촌간부, 당원,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만두를 직접 빚어 홀로 계신 로인들과 어려운 가정에 직접 전해드렸다. 그때 한 로인은 “자식들도 바쁘다는 리유로 오지 못하는데 자네들이 이렇게 찾아와서 따뜻한 음식까지 챙겨주니 정말 든든하네!” 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선연이 촌에 온 후 어태근, 리경자 로부부는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나 김선연을 가장 먼저 찾았다. “로인들에게 말도 예쁘게 하는 선연이가 손녀딸이 되여 세심하게 챙겨준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 두 량주는 지난해 겨울에 있은 일을 회억하며 김선연의 ‘손녀’ 자리를 더 실감했다고 털어놨다.
지난 겨울 어태근은 갑자기 심장병이 도졌는데 병원에 가려고 해도 농촌마을이라 택시 잡기가 어려운 상황이였다. 그때 리경자는 김선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선연은 바로 차를 운전해 어태근을 병원까지 모시고 가 진료를 도왔다.
지난해 6월, 마을에 대한 헌신과 열정이 당과 정부의 인정을 받아 촌에 발령받은 지 2년도 안되여 그녀는 중국공산당 예비당원으로 되였다. 당원이 된 것은 단순한 신분의 변화가 아닌, 더 높은 기준과 무거운 책임을 부여받는 순간이라는 김선연, “당원으로서 매사에 모범이 되도록 노력하고 촌민들의 리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솔선수범하는 태도를 지키려는 자각을 갖추게 되였습니다.”라고 말했다.
“젊은이들이 농촌에 내려와 봉사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고 사회에 아주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향촌진흥의 길에 젊은 에너지와 아이디어가 더해지면 지역이 더욱 활기차게 변할 수 있습니다. 촌민들의 생활습관과 필요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실생활에 꼭 필요한 지원을 섬세하게 파악하고 꾸준히 이어간다는 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꾸준히 안부를 묻고 실질적인 도움을 드리면서 소통을 이어가다 보면 어려움은 어디까지나 극복할 수 있지요.”
신원촌에는 지금 그녀의 노력이 슴배인 길이 생겼다. 흙길에서 포장도로로 바뀐 그 길에서 농기계가 달리고 아이들이 뛰놀며 촌민들이 산책한다. 그리고 그녀가 촌민들의 마음속에 낸 ‘신뢰의 길’도 생겼다. 그 길 우에 어태근, 리경자 등 촌민들이 그녀를 손녀로, 딸로 생각하고 찾는 정이 오간다.
김선연에게 신원촌은 단순한 근무지에 그치지 않는다. 이곳에서 ‘흙냄새 나는 인생’의 의미를 배웠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실한 온기를 느꼈다.
“이곳에는 하늘을 뒤흔들 만한 대단한 일은 없어요. 그저 촌민들의 일상적인 안부, 밭두렁에서 나누는 소소한 대화, 추석명절에 함께 빚는 만두 한접시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하지만 그 소소함 속에서 저는 가장 큰 행복을 발견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곳에 뿌리내리고 향촌 발전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싶어요.”
촌의 젊은이들은 더 나은 삶을 위해 삶의 터전을 뒤로하고 대도시로, 외국으로 나갔다. 하지만 그들이 비운 자리에서 고학력자 김선연은 그들의 년로한 부모님들과 동고동락하고 있다. 김선연의 꿈은 화려하지 않지만 그래서 더욱 단단해보인다. 밭두렁 흙내음 속에서 그녀는 한걸음 한걸음 ‘향촌진흥’의 꿈을 무르익혀가고 있다.
/리전 유경봉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