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북성 정정(正定)현의 옛 이름은 상산(常山), 진정(真定)으로 한때 북경, 보정과 함께 ‘북방 삼웅진(三雄镇)’으로 불렸다. 여기서는 첫눈에 반할 천고의 아름다움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찬란한 력사 문화
정정의 력사건축물은 ‘아홉왕조 대가 끊기지 않으며(九朝不断代)’ 중국에서도 보기 드문 귀중한 옛 건축군을 형성하고 있다. 이에 대해 건축가 량사성은 ‘고대 건축예술의 보고’라고 평가했다.
개원사의 종루는 국내에 현존하는 유일한 당나라 시대 종루다. 종루에 걸린 고풍스러운 동종은 무려 1천년 동안 떨어지지 않아 놀라움을 자아낸다.
개원사 남유적지에서는 당, 오대, 북송, 금, 원, 명, 청 등 7대 왕조의 유물 7천여점이 출토됐다. 고고학 현장에는 유적지 광장이 조성돼 정정의 과거를 아름답게 보여주고 있다.
하북성문물고고연구원 박사 책붕비는 “개원사 남유적지는 전형적인 고금 중첩형 도시 유적으로 6년에 걸친 고고학 작업을 통해 당-명청 시기 고성의 발전 맥락을 설명하는바 고금 중첩형 도시 고고학의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륭흥사에 들어서면 건축·조각·벽화 예술이 어우러진 마니전에 ‘동양의 아름다움의 신’이라 불리는 도좌관음이 느긋한 자세로 남쪽에 앉아 북쪽을 바라보고 있다. 어느 방향에서 그를 보든 뚫어지게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는 모양새다.
륭흥사 대비각에는 중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크고 오래된 구리 주물 입불상인 천수천안관음 동상이 있다. 당시 송태조 조광윤이 명해 제작한 대비보살 동상은 높이 21.3메터로 4년에 걸쳐 완성돼 장인의 창의성을 드러냈다.
◇해외 교류의 증거
양화루에 오른 건축가 량사성은 로마 콘스탄티누스 개선문보다 더 장엄하다며 치켜세웠다.
700여년전, 이딸리아 탐험가 마르코 폴로는 이곳을 ‘위대하고 고귀한 도시’라고 평가했다.
정정고문화연구회 비서장인 우평란은 “당시 마르코 폴로가 정정을 방문했을 때 이곳의 견직물이 매우 발달해 유럽에 널리 팔리고 있다고 언급했다.”면서 “이딸리아 귀족들은 앞다퉈 이곳의 견직물을 사고 싶어했다.”고 말했다.
송나라 때 일본인 승려 에이사이는 이곳에서 류학한 후 림제 불교의 가르침을 일본으로 전파했다. 지금도 이곳에는 일본 불교계의 교류 방문이 잦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림제사와 징령탑은 중국인과 외국인들간의 우호를 강화하는 련결고리가 되였다.
◇과거와 현재, 외국과의 융합
“유명한 려행지답게 화기애애한 분위기와 매력적인 야경이 특징입니다. 게다가 이곳 사람들은 매우 친절하죠.” 석가장 사람인 장운소는 정정에 대해 얘기하자 자부심에 가득찬 목소리로 말했다.
장운소의 남편 일리야는 까자흐스딴 출신이다. 이들은 15년전 북경에서 만나 사랑을 키워 정정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이곳에 삶의 터전을 마련했다.
“정정은 최근 몇년 동안 발전이 매우 빠르지만 여전히 고풍스러운 건축양식을 유지해 력사가 눈앞에 펼쳐진 느낌입니다.” 일리야는 류창한 한어로 이곳에서는 외지인을 허물없이 대해준다고 표현했다.
“이곳 지방정부는 주민에게 큰 복지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례를 들면, 도시 전체에서 무료 주차를 할 수 있습니다. 24시간 음수대가 있으며 심지어 일부 관광지는 입장료를 받지 않죠.” 일리야의 말이다.
“공원 산책도 즐기고 어르신들과 이야기하기도 좋아합니다. 이를 통해 삼국연의의 상산 조자룡 등 중국 문화를 많이 배울 수 있죠.” 일리야는 중국에서 대학을 다니며 중국어를 전공했다. 현재 독학으로 《시경》을 공부하고 있는 그는 “먼저 배워서 아들에게 가르치려고 한다.”고 말했다.
“(까자흐스딴에 있는) 가족들도 곧 이곳에 와서 함께 살 것입니다. 가족이 있는 곳이 바로 제집이죠. 저는 정정 사람입니다.”
/신화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