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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의 수석과 그 문화

[문화산책]

가야하 강반에서 수석 탐험에 나선연변의 애석인들

기이한 형태와 이미지를 갖춘 명품수석들

연변지역에서 나는 두만강 오석은 수석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

장백산맥을 중심으로 두만강, 가야하, 홍기하 등 수많은 하천을 거느린 연변지역은 천혜의 수석 산지로 널리 알려져있다.

연변지역에서는 침적암, 화성암, 변질암 계렬에 속하는 산수경석, 문양석, 물형석, 추상석 등 수석의 모든 류형이 고르게 발견된다. 그중에서도 두만강 오석은 세계적으로도 드물게 보는 품종으로서 해내외에서 인기가 매우 높다.

두만강 수석은 연변의 산하가 낳은 소중한 자연유산이다. 연변 사람들은 마땅히 두만강 수석을 잘 보존하여 후손만대에 길이 전해지게 해야 한다.

연변의 수석 문화는 30여년전 외국 석상들의 영향을 받아 잉태되기 시작한다. 사업차로 연변에 왔던 한 외국인이 왕청의 한 시골집 마당에서 엄청 잘생긴 대석 한점을 보고 홀딱 반하여 당장에서 그걸 매입해갔는데 인기 만점이였다. 연변에 좋은 수석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급기야는 외국 애석인들의 연변 붐을 일으키게 되였다.

많은 석상들이 연변에 찾아왔는데 그때가 90년대초, 그러니 연변의 수석 채집 은 외국 석상들의 영향을 받아 90년대초부터 시작된 셈이다. 연변 사람들은 수석이 무엇인지도 잘 모른 채 외국 석상들의 어깨너머로 배우기 시작했다.

당시 대량의 수석과 정원석이 외지로 빠져나갔다. 외국 석상들의 연변행은 지난 세기 90년대 중, 후반까지 활발히 이어지다가 그후 여러가지 원인으로 발길이 뜸해졌고 요즘은 거의 끊겨진 상태이다.

그사이 연변에는 연변수석회, 연길시수석회, 연변두만강수석회, 연변수석문화협회 등 애석인 단체들이 속속 발족되였다.

그러나 합동 탐석, 수석 연구, 수석 전시회 등 구체적인 활동은 별로 전개되지 못했고 수석의 저변 인구 확대도 뚜렷한 개선을 가져오지 못했다. 연변 수석은 비록 낚시나 등산에 비해 대중적인 붐을 형성하고 있지는 못하나 근자엔 전국적인 애석 붐의 영향을 받아 수석 열기가 서서히 다시 일어나고 애석 인구도 점차 늘어가고 있는 추세이다.

현재 연변에는 도문시 두만강수석박물관, 량수 광동제약 수석박물관, 훈춘 방천 두만강수석박물관, 룡정 인하촌 수석박물관 등이 건립되여 연변 수석 문화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훈춘 방천 두만강수석박물관은 관광 코너에 편입되여 수많은 관광객들에게 두만강 정품 수석의 특이한 매력을 선보이고 있다.

연변의 애석 인구도 현저히 증가하고 애석인들의 수준도 높아져 몇해전부터는 국내의 주류 수석계와 행보를 맞추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연변 향토석을 보존하고 지키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보다 넓고 깊은 생각으로 다양한 산지의 다양한 수석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광서성 류주, 내몽골 알샤, 하북성 석가장, 상해, 산동성 청도 등지에서 해마다 열리는 국내의 대형 수석 전시회에 적극 참석하는 애석인들도 차차 늘어나고 있다.

애석인 박관일은 상해에서 열린 ‘전국 수석 대전’에 두만강 오석 ‘복두꺼비’를 출품하여 은상을 거머쥐였고 김학성은 강소성 무석에서 열린 ‘국제 문양석 전시회’에서 두만강 수석으로 두개의 상을 동시에 타기도 했다. 그 밖에 애석인 김명순은 북경에서 열린 수석전에서 금상을 따내여 수석으로 상을 탄 중국 조선족의 첫 녀류 애석인이 되였다. 이는 본인들의 영광이기도 하지만 두만강 수석이 중국내 주류 수석계의 인정을 받았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

“수석은 인류의 최초의 문화이자 최후의 문화이며 조물주가 인간에게 내린 최고의 선물, 현대문화권에 진입하는 입장권, 인류의 공동언어, 가장 좋은 운동이자 취미…”라는 다양한 인식이 연변지역 애석인들 사이에서 차차 확산되면서 수석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의 반경이 점차 넓어지고 있다.

현재 연변 수석은 초기의 맹목성에서 벗어나 예술적 차원에서 수석의 본연에 다가서려는 움직임과 함께 점차 성숙해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학성(연변수석문화협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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