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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아줌마의 유럽관광 (5)-이딸리아 로마 려행

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2-05-31 10:35:27 ] 클릭: [ ]

베네치아 려행을 끝내자마자 뻐스에 올랐는데 밤이 썩 깊어서야 로마에 도착했다.

이튿날,날씨부터 체크했다. 온도도 적당하고 해빛도 좋고 바람도 맞춤하고 게다가 도보려행이라니 얼씨구 신났다.

로마 일각

그런데 희한하게도 로마려행은 다른 나라 바티칸시국(梵蒂冈)으로부터 시작되였다. 로마시내에 박힌 자그마한 도시나라 바티칸시국과 로마는 그저 평범한 흰 선으로 국경이 표시되였는데 그걸 살짝 넘으니 바로 이 나라에서 저 나라였다. 세상이 넓으니 정말 천태만상이다.

바티칸시국(城中城梵蒂冈)

 

흰 선으로 표시된 국경선

참관을 위해 입구에서 약간의 설명과 주의사항 청취가 필수란다. 귀담아들었다. 이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작고 가장 부유한 나라 중 앞자리다. 이 나라의 인구는 800명이다. 이 나라의 산 피에트르 대성당은 세계 첫 순위, 최고급의 성당 건축물이다. 이 나라의 수입원천은 주로 관광수익이다. 이 나라를 지배하는 사람이 로마천주교황을 겸했다. 이 나라의 대성당 정면은 두팔을 둥그렇게 벌린듯 반원을 이뤘는데 전 세계의 인류를 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산 피에트르 대성당(圣彼得大教堂)

6만명이 동시에 미사를 할 수 있는 거대한 공간에 서니 내가 더더구나 작아졌다. 성당 내부는 역시 보물 천지, 벽화세상이였다.....

밖에 나오니 해가 구중천이여서 광장을 배경으로 남긴 사진은 얼굴이 새까맣다. 까만 얼굴 뒤로 산 피에트르 광장에 높이 솟은 탑과 주위 건물들이 훤히 보인다. 기념사진이 이게 딱 한장이니 별 수 없다.

바티칸시국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성당의 대리석 둥근 기둥 복도였는데 앞서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던 특유의 풍경이였다. 성당 좌우에 284개의 둥근기둥과 88개의 네모기둥이 줄느런히 늘어선 복도는 마치 쭉 늘어선 훤칠한 미모 소녀들의 롱다리 같았다. 곧고 미끈하고 길고 높았다. 살살 만져도 보고 두팔을 벌려 안아도 보고, 그 때의 황홀한 느낌이 어제인듯 생생하다.

종교, 신앙과 관계없이 인류의 문명에 기여한 웅위롭고 아름다운 건축물, 성당을 꽉 채운 갖가지 아름다운 벽화와 거기에 얹힌 수많은 이야기들, 50만명을 수용하는 거대한 광장과 거기에 매일 같이 밀리고 밀려드는 관광객들 .......어쩌면 이 나라가 세계에서 제일 작지만 제일 큰 걸 품고 있는 것 같았다.

신비로운 국가 바티칸시국에서 다시 성큼 한발로 로마에 돌아왔다. 그리고 ‘화해의 길’을 걸었다. 걸으면서 입에 자주 떠올리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条条大路通罗马)란 말이 피뜩 떠올랐다.

로마 도보려행의 첫 코스는 산 안젤로성 (天使城 )이였는데 바티칸시국에서 별로 멀지 않았다. 고대 로마의 멋스러움이 확 풍기는 거대한 건물은 시간을 거슬러 공간을 뛰여 넘어 삽시간에 관광객들을 고대 로마시대로 데려갔다.

산 안젤리성(天使城)

비범한 기상의 거대한 원형건물 산 안젤로성은 지금은 박물관이지만 초기엔 황제의 묘로 사용되였었다고 한다. 성의 이름은 로마에 역병이 퍼질 때 하늘로부터 칼 잡이 천사가 나타나자 만연했던 역병이 한순간에 사라졌다는 전설에서 유래됐고 성 꼭대기의 칼집에 칼을 꽂는 천사 조각상은 바로 그때 환영으로 나타난 형상을 모델로 만든 거라고 한다.

칼잡이 천사 조각(天使雕塑)

오늘 자판을 두드리다가 산 안젤리성 천사상을 향해 경건한 마음으로 합장했다. "상해에 코로나19 가 났으니 칼잡이 천사님, 부디 상해의 하늘에도 나타나 줍시사.".

대답이 없다. 참으로 야속한 천사님이시다.

성 앞으로 흐르는 강의 이름은 테레비 강, 로마의 젖줄기란다. 강 우의 멋스레 듬직이 가로 놓인 다리는 천사의 다리.

오늘, 다리 량쪽 란간의 아기자기 예쁜 조각들의 배동으로 활보하는 상해 아줌마 여섯 , 한명 한명 모두가 활력 넘치고 미모 빼여나니 그야말로 살아있는 ‘천사’들이다.

상해 여섯 아줌마‘천사’들 로마에서 (六天使降临罗马城)

로마 도보려행의 맛이 참으로 일품이다. 현대식 건물사이에 조용히 남아 찬란한 력사문화와 번영했던 흔적을 은근히 뽐내는 고대로마 건물들, 그 어느 하나 가릴 것 없이 모두 볼거리여서 도보려행은 아주 그냥 박물관 참관이였다.

천사다리를 지나 잠간 걸어서 도착한 곳은 온테온 신전(万神殿)이라 했다. 갈 길이 바빠서 기념사진만을 남기고 다음 코스를 향하는데 여기가 대체 어디며 뭘하는 곳인지 궁굼한 나머지 앞서 가는 가이드를 바싹 좇아가며 물었더니 답하기를 거대한 건물이지만 기둥과 창문이 없고 다만 꼭대기의 태양을 상징하는 구멍이 광원 (光源)과 통풍구 역할을 한다. 력대 왕들의 무덤으로 사용되는 건물이라고 했다.

판테온 신전 (万神殿)

에크, 중국어로-万神殿이라고 하니 필시 로마의 여러가지 신선을 그린 벽화와 값진 보물들이 꽉 찼으려니 했는데..... 여기 로마는 뭐나 상상을 뛰여 넘는다.

나보나 광장은 워낙 거대한 전차 경기장이라고 하는데 가이드도 바쁘고 관람객도 바쁘고, 광장에 그림 그리는 사람, 기타를 튕기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남의 흥을 동조할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어서 급급히 휙 돌아보고만 말았다.

트레비 분수(许愿池)

로마에 가면 꼭 소원을 빌어야 한다는 트레비 분수에 도착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밀치닥거리면서 소원빌기에 한창이였다. 아마도 인간은 모두 소원 하나 쯤은 갖고 있는 것 같았다.

바쁜 와중에도 우선은 트레비 분수를 마주한 쬐꼬만 가게에서 이 도시의 맛이라는 아이스크림을 먹었는데 너무 급하게 먹어서인지 맛 기억은 전혀 없다. 가이드는 시간을 재촉하고 사람들은 엎치고 덮치고, 그래도 트레비 분수에 왔으니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소원 빌기에는 예정된 세가지와 특정된 방법이 있으니 꼭 그대로 해야 한단다. 첫째는 로마에 다시 오게 해달라는 것, 둘째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해달라는 것, 세째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게 해달라는 것, 방법은 트레비 분수의 해마와 조개조각을 등지고 오른손으로 동전을 잡아 왼쪽 어깨 넘어로 뿌린다는 별식이였다.

난 간단했다. 두번째와 세번째 소원은 가차없이 베버리고 순식간에 소원빌기를 끝냈다.

원형 경기장 콜로세움(斗兽场)으로 갈 때엔 뻐스를 리용했다.

콜로세움( 角斗场)

원 모습 (原型)

콜로세움은 중국어 斗兽场이란 이름으로 일찍 내 기억 속 아주 먼 곳에 흐리마리 자리잡고 있었다.

젊은 시절 우연히 보게 된 소설에서 처음으로 고대로마를 접했다. 그때는 영웅숭상 시대라 각투사 (멋대로 번역임, 중어로는 角斗士) 기의군 수령 스빠다커스의 용감무쌍함에 시선을 뺏기고 감동을 탕진한 탓인지 콜로세움(斗兽场)지하 검투장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노예들 간에 벌였던 동물적 검투와 피비린 상잔에 전률했던 기억은 분명 남아있었다.

빨리 가서 빨리 보고 싶었다. 드디여 도착했다. 온 하루도 성차지 않겠는데 차례진 시간은 고작 30분, 콜로세움 내부 참관은 아예 생각할 수도 없었다. 문론 지하 격투장 구경은 처참히 구겨지고 뭉개졌고.

로마의 상징이고 고대로마 영광의 유적지인 콜로세움, 오랜 세월의 풍상에 거칠어지고 뜯기고 할퀴여도 자랑과 위엄을 고스란히, 당당히, 꿋꿋이 지켜 선 콜로세움의 거대함을 마주했다. 고대로마 영웅들이 사투를 벌였던 정경과 함께 노예와 전쟁 패배자간의 피비린 검투의 마당을 눈에 그리고 상상으로 떠올렸다.

헉, 콜로세움을 앞에 두고 콜로세움 격투장 마당을 그림으로 상상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지, 참말로 비극이 따로 없고 희극이 따로 없다. 울면서 겨자라도 먹을 수밖에....

보고싶던 내면 内景

재빨리 정서전환을 마치고 좌로 머리를 돌려 콘스탄텐 개선문을 바라보며 큰 감탄을 뿜고 우로 고개를 갸웃해 콜로세움을 바라보며 더 큰 감탄을 연속부절히 뽑는데 서쪽 나라 려행이 바쁜 해가 뉘였뉘였, 거대한 건물이 그림자를 던지기 시작했다, 아차, 기념사진에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졌다. 게다가 동행자들이 슬슬 집합 장소로 떠나기 시작하니 허둥지둥 가이드를 불러 한 줄로 쫙 선 단체사진을 남기고 이어 또 허둥거리면서 독사진 한두 컷씩 남겨 콜로세움의 추억을 만들었다.

밀라노 (米兰)에 가서도 역시 바쁜 시간을 보냈다.

밀라노 두오마 성당 (米兰大教堂)

밀라노에 갔다가 밀라노 두오마 성당을 보지 않으면 밀라노에 헛 갔다고 한단다. ‘대리석으로 만든 시’라는 성당, 그 대리석 시가 그리워 거의 달음박질로 걸음을 재촉했지만 결국 외관도 마음껏 보지 못했다. 하긴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대리석건축물이라니 외관을 이리저리 돌아보는 데도 엄청 긴 시간을 요하니깐. 그저 경탄의 눈길로 높디 높은 성당 한 모퉁이를 바라본 후 그 앞에서 사진 한장 달랑 남긴 것만도 행운이라 할 수 밖에.

 

세계 패션을 이끄는 도시 밀라노에 갔

 
로마 콜로세움 앞에서

으니 당연히 패션거리도 구경했다. 쇼핑 시간 내내 눈은 즐거웠지만 패션을 소화시킬 처지가 아닌 몸매가 먼저 열을 받아 짜증내고 한숨 풀풀이다. 그냥 목도리 수건 하나 챙겨 기념으로 남기고 말았다.

집합 시간이 코밑인데 또 화장실이 급했다.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 입구를 발견하고 하도 궁금해서 입구 계단을 나는듯이 내려갔는데 에쿠, 상해의 지하철에 비할바가 아니였다. 낮고 어둡고 비좁고, 거기에 이상한 냄새까지......부랴부랴 계단을 올라 뻐스쪽으로 달려갔다.

유럽려행의 마지막 식사는 또 상해 아줌마들만의 특별식이다. 이딸리아 대찬(大餐) 은 짜파케티성찬이라고 하는데 입술만 꺼멓게 물들이고 맛은 별로였다.

잠간 설명하자면 대찬이란 각 지방의 대표 미식인데 려행비용 외 따로 높은 비용을 지불하는 종목으로서 동행한 관광객들 거의 모두가 외면했다. 상해 여섯 아줌마들만 려행 전 로정의 대찬을 마음껏 즐겼으니 먹거리도 한몫 끼여 보탠 유럽려행의 즐거움에 만족한다.

이딸리아 짜파케티

추억거리 몇가지

려행은 눈으로 본 기억 외 머리와 가슴에 잊지 못할 기억도 남긴다. 유럽에 다녀온지 여섯해가 되도록 잊혀지지 않는 일 세가지만 떠올려본다.

하나. 베네치아에 많이 늦게 도착한 탓에 그 곳 려행이 하자가 많았지만 좋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리유부터 적는다.

독일 경내를 벗어나 이딸리아의 어느 휴계실에 멈춘 뻐스가 떠날 념을 안했다. 시간이 좀 지나 운전기사가 심장통증을 호소해서 급히 구급차를 불렀다는 불안한 소식이 전해왔다. 유럽려행 중 가장 멀고 긴 려정이였음에도 보조 기사가 없었던 게 탈이라고 할가. 그런데 구호차가 운전기사를 싣고 떠난 후에도 뻐스는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새 기사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관광뻐스가 다시 시동 걸기를 기다리며 마트안쪽에 둘러앉아 운에 대해 수다만발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사람에게는 천운, 지운, 인운이 있다는데 우린 녀자로 태여난 천운, 려행을 즐길 줄 아는 지운, 수영장에서 비키니바람으로 만난 인운이 있으니 실로 삼운이 통채로이다.

고속도로의 운행 중에 심장병이 발작하지 않은 그 친절한 운전기사의 운, 운전기사와 웃음을 나누며 사진을 찍었던 사람들의 운, 뻐스 탄 모든 이의 안전을 부른 휴계실 운, 아마도 아줌마들의 삼운이 불러온 모두모두의 행운이 아닐가.

아짜아짜할 번 했던 그 날의 기억이 휴계실에서 맛있는 과일샐러드를 먹는 사진의 평범한 하루로 남아서 행복하다.

예쁜 여섯 상해아줌마들

둘. 어느 도시였던지 기억이 아리숭한데 그게 아마도 호텔 쪽의 주숙준비가 여의치 않아 뻐스에서 기다릴 때가 많다. 잠시만 기다리라더니 밤은 깊어가고 아줌마들 화장실이 급해졌다. 가이드와 물어도 머리만 절레절레, 참다 못해 아줌마들 우르르 쓸어 내려 허둥지둥 단체로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말도 모르고 창피하기도 해서 청사 쪽은 피하고 정원 쪽을 정찰병의 예리한 눈으로 살피니 은은한 달빛 아래 꽃나무들이 보였다. 키도 성큼하고 꽤 풍성했다. 밤이라 색채는 없고 향기만 그윽한 꽃 무덤을 향해 여섯 아줌마들은 숨죽이고 날쌔게 돌진했다.....

아름다운 밤, 아름다운 도시, 아름다운 청사앞에서의 ‘아름다운 소행’, 우리만의 비밀을 오늘만 살짝 공개한다.

셋. 내 인생 귀빠진 날 중 하루를 유럽이 품어주었다. 특별한 곳에서의 조촐한 상, 풍성한 마음~ 친구들의 자상함과 따뜻함이 내 가슴 굽이굽이에 곱게 여울친다. 지금도....

열하루의 유럽 려행이 꿈 같다.

 
상해는 우리를 반겼다

륙십을 넘긴 아줌마들이 겁 없이 도전한 먼 나라 려행, 합쳐진 마음이여서 언제든지 훌쩍 떠날 수 있었기에 그 후 다시 또 려행길에 올랐다. 바다 건너 인도네시아 발리섬에도 가고 환상의 사막도시 두바이에도 갔다...... 코로나19  때문에 급정거된 우리의 행보, 하늘길이 열리고 배길이 뚫리면 또 다시 려행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다.

6년 전의 오늘 5월 23일, 려행의 즐거움을 안고 무사히 돌아왔다. 같은 추억을 만든 친구들이 고맙고, 려행 떠날 때마다 용돈봉투를 두툼히 챙겨주는 사위도 고맙고, 때시걱을 어물적 담당한 딸과 그동안 무탈했던 예쁜 두 손녀도 고맙다.

2022년 5월 23일 방미선 상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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