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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치환, 첫 금메달 수상자가 올림픽회기 기수로 되기까지

편집/기자: [ 홍옥 ] 원고래원: [ 인민넷-조문판 ] 발표시간: [ 2022-02-08 19:08:54 ] 클릭: [ ]

2월 5일 저녁, 쇼트트랙 혼성 계주 경기에서 중국 선수 무대정이 결승선을 1위로 통과했다. 81세의 라치환은 텔레비죤 앞에서 손에 땀을 쥐여가며 이 장면을 지켜보았다.

 
성화 봉송에서

“만약 10메터, 20메터를 더 달려야 한다면 우승 자리를 놓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어찌됐 건 우승 트로피(奖杯)를 거머쥐였으니 이는 큰 경사이다! 또한 이는 중국 대표팀이 북경동계올림픽에서 딴 첫 금메달로서 선수들도 기뻐서 서로 끌어안고 축하하고 나도 눈물을 흘리면서 경기를 지켜보았다.”

경기가 끝나고 15분 지나 중앙텔레비죤방송국 〈상대론〉 프로그람에서 라치환과의 인터뷰가 있었는데 당시 라치환은 여전히 북받쳐오르는 감정을 추스리지 못하고 있었다. “1963년 내가 ‘첫 금메달’을 땄을 때보다 더 긴장했다.”

힘껏 흔들었던 두손

 
1963년 우승을 한 라치환이 힘껏 손을 흔들었다

1963년 2월 24일, 일본 나가노 57회 세계남자쇼트트랙선수권대회에서 주목을 받지 못했던 중국 조선족 선수 라치환은 1,500메터 종목 우승 시상대에 당당하게 올라섰다. 이는 중국이 동계 운동 종목에서 최초로 획득한 세계 우승이다.

당시 준비도 없었고 우승 트로피를 받아보지도 못한 라치환은 심지어 시상대에서 손을 흔드는 법도 잘알지 못했다. 두손을 한번 흔드는 것을 임무완성으로 알았다고 한다.

59년이 지난 지금 라치환은 여유있게 두손을 흔들었고 전세계의 눈길을 끌었다.

력사적인 2분

 
 

며칠 간 라치환은 엄청 바삐 보냈다. 북경동계올림픽 성화 봉송의 첫 주자였다. 2008년 북경올림픽에서도 라치환은 성화 봉송을 했다.

“내가 왜 성화에 입을 맞췄을가? 이런 감정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우리 나라에서도 동계올림픽을 주최했으면 하는 50여년 동안 줄곧 꿈 꾸어왔던 나의 꿈이 바로 이날 실현되였기 때문이다!” 라치환은 말했다.

북경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라치환은 또 올림픽회기 기수이기도 했다. “1963년 내가 1,500메터 우승을 따낸 성적이 2분이였고 이날 회기를 전달한 시간도 2분이였다. 다만 내가 80세 나이여서 마지막 몇걸음은 조금 힘들었지만 지정된 곳까지 회기를 잘 전달하려는 마음으로 끝까지 버텼다.”

개막식 당일, 라치환은 새벽 3시에야 잠들었다. 꿈속의 라치환은 1963년으로 돌아가 력사의 2분 09초 02를 다시 창조했다.

만약 20년전으로 돌아간다면

북경에 도착한 후 라치환은 소망 대로 ‘빙리본(冰丝带)’을 방문했다. 선수, 감독으로 있었던 라치환은 빙판을 만지기만 하면 품질의 좋고 나쁨을 바로 안다. “내가 손으로 만져봤는데 얼음판이 얇다는 감이 들었다. 빙판 품질이 정말 좋았다. 이는 이번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녀자 3,000메터 경기에서 올림픽 기록을 갱신하면서 증명되였다.”

라치환이 선수로 있던 시절에는 야외의 자연 빙판을 찾아서 훈련했다. “훈련하다가 얼음구멍에 빠질 때도 많았다. 우리는 다시 기여올라와 옷을 갈아입고 계속 훈련을 이어갔다.”

이런 빙판, 이 같은 동계올림픽을 너무 부러워했던 라치환은 “만약 10년, 20년전으로 돌아간다면 나도 이렇게 좋은 빙판을 누비고 싶을 것이다. 선수 시절에 코너를 도는 나의 기술은 세계에서도 유명했다!”

59년이란 긴 시간이 지난 오늘, 빙판을 떠나기 아쉬워하는 라치환은 자기의 희망을 어린 선수들에게 부여했다. 리치환은 “녕충암, 고정우에 대한 나의 기대가 아주 크다. 이번 동계올림픽에서 남자 선수들이 꼭 좋은 성적을 따낼 것이라고 기대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 인민넷-조문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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