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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타고 산따라 강따라12] 진달래촌에서 전설을 줏다

편집/기자: [ 안상근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0-09-03 10:22:34 ] 클릭: [ ]

진달래민속촌 관광안내도를 살펴보고 있는 길손.

60리 평강벌 상류의 화룡 가는 송로선 길가에 자리잡은 진달래민속촌, 진달래촌이기에 앞서 명암촌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되던 마을이였다.

지금도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자그마한 흙둔덕을 지경으로 남북에 나뉘여져있던 마을 모습이다. 북쪽에는 명암촌 3,7대가 자리잡고 있었고 고개 너머 남쪽엔 명암촌 4,8대, 그리고 서남쪽 떨어진 곳에는 사과배 과수원이 있는 다종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었다.

나는 결코 명암촌 출신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암촌을 하루가 멀다하게 오르 내렸다. 연변일보가 1989년도부터 한시기 자체발행을 했는데 그 때 나는 서성진의 《연변일보》발행소에서 신문배달을 했다. 역시 자전거를 타고서였다. 그래서 명암촌의 흙둔덕길은 더욱 인상깊다. 비가 약간이라도 오는 날이면 그 언덕을 넘을 수 없었다. 자전거바퀴에 악착스레 달라붙는 진흙때문에 바퀴가 돌아가지 않았고 자전거가 사람신세를 져야 했다. 지금은 그 둔덕을 모두 깍아 앞뒤마을이 하나로 합쳐졌고 확 틔인 마을길이 남북으로 시원하게 뻗어져 있었다.

1982년도에 출판된 《연변》화첩 속의 명암촌 모습(자료사진).

《화룡문사자료》의 명암촌사화기록을 보면 명암촌은 1910년쯤 조선 함경북도 성진군 학성면 달래동의 20여세대가 집단이주하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경술국치전야 살길이 더욱 막연해져 두만강 건너 살기좋은 정착지점을 찾아헤매던 달래동 사람들이 당지 점산호인 산동사람 왕복(王福)한테서 땅을 사고 이곳을 살기좋은 삶의 터전으로 가꾸었다는 것이다.

명암촌의 원래 이름은 왕개지팡(王家地方)이였는데 그 후 여러가지 이름들을 붙여오다가 명암촌이라는 이름은 1925년도에 고쳤다. 명암촌으로 고친 리유는 마을 뒤켠에 풀도 자라지 않는 절벽이 있어 그렇게 불렀다는 설이 있다.

진달래민속촌 일각.

사료에 따르면 일제의 탄압과 박해로 고향을 등지고 떠나온 사람들이기에 명암촌사람들은 이주 초기로부터 일본제국주의자들을 뼈에 사무치게 증오했고 반일을 주선으로 단합이 잘되였다.

룡정에서 3.13반일시위가 일어나자 명암촌에서도 남녀로소가 일제히 일떠나 이도구와 두도구의 반일시위에 참가했다고 한다. 연변에서 일제를 반대하는 무장투쟁이 발랄하게 일어날 때 명암촌에서는 많은 청장년들이 반일무장부대에 참가하여 일제와 싸웠고 반일무장부대의 후원사업도 열성적으로 진행했다는 기록이 있다.

1920년 초가을, 홍범도독립군부대가 두도구 일본령사분관을 습격하고 어랑촌방향으로 이동할 때 명암촌사람들은 홍범도부대를 위로하여 소를 잡아 대접했고 의연금을 모아 내의와 군복을 지어주었다는 일화도 있다. 유명한 청산리대첩 때에도 식량을 거두고 짚신을 삼아 부대를 지원했고 소수레를 내여 반일부대의 운수를 맡아나서기도 했다고 한다.

진달래촌은 유서깊은 로혁명근거지이다.

명암촌의 명망이 높아감에 따라 이름있는 독립활동가들이나 망명객들이 혹은 농군으로, 혹은 학교선생의 명의로 이곳에 찾아 들었다고 한다. 당시의 명암촌은 사람들 중심에 교회와 학교가 있는 마을이였으며 교육구국과 항일구국의 의지로 새 나라를 꿈꾸었던 마을이였으며 다양한 인재를 품고 키워낸 진보적인 마을이였다고 력사는 기억하고 있었다.

명암촌은 해방전의 허다한 전설을 품고 있기도 하지만 해방 후에도 재미있는 일화들이 적지 않다.

명암촌의 현대판 전설은 아무래도 최일선과수원이 아닐가 싶다. 최일선이라고 하면 연변에 사과배를 널리 재배 보급하는데 공을 세워 연변의 미츄린이라고 불리운 소문난 과수원예사이다. 다종이라는 마을이름도 최일선원예사가 접종한 과일종류가 많다고 해서 생겨난 이름이라 한다.

연변의 미츄린이라고 불리운 소문난 과수원예사 최일선(80년대 자료사진).

어릴 때 다녔던 서성중심소학교에서는 늘 원족으로 최일선과수원부근의 산에 가군 했다. 그곳에는 토산향 쟈피거우골안(화흥촌)에서 흘러 내려오는 정갈한 계곡물이 있었는데 1급수에만 산다는 가재가 수없이 많았다. 강가의 아무 돌이라도 들어보면 가재가 우글거렸고 뒤걸음질치며 달아나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그걸 잡아서 대충 검불에 불붙여 구워도 빨갛게 익군 했다.

명암촌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은 현재 한국에서 살고 있는 연변적 허효연(45세)씨의 추억을 통해서도 더듬어볼 수 있었다. 명암촌에 외가집이 있어서 자주 가 놀았던 인상이 깊다고 하는 허효연씨는 마을앞으로는 쟈피거우강이 흐르고 마을뒤로는 봉밀하가 감돌아흐르면서 아름다운 춘하추동 사시절이 있어 참 살기좋은 동네였다고 추억했다. 봄이면 연분홍 진달래와 하얀 사과배꽃이 다투어 피여나고 가을이면 풍년든 사과배가 주렁주렁 탐스럽던 풍경은 바로 아름다운 연변의 사시였을 것이다.

연변의 자랑 사과배를 주제로 한 노래 사과배 따는 처녀는 바로 1961년 10월, 작곡가 최삼명선생과 작사가 장동훈선생이 산좋고 물맑은 최일선과수원을 찾아 현지체험하고 즉흥적으로 창작한 것이라고 한다.

연변의 소문난 텔레비죤드라마 《민들레 꽃》도 1986년도에 명암촌에서 찍었다. 당시 드라마연출을 맡았던 허동활선생의 회억담에 따르면 이 드라마를 찍는 과정에 드라마촬영용으로 만들어 세워놓은 렬사비가 도난당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공안국에서까지 달려와 수사에 착수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렬사비는 아래마을 농민이 가져간것이였다. 그날 일터에서 돌아오면서 렬사비옆을 지나다가 당금 비가 올것 같은지라 각목으로 틀을 짜고 광목천을 씌운 렬사비가 비에 젖어 망가지면 드라마 촬영에 영향이 갈가봐 걱정되여 소수레에 싣고 집에 갔던 것이다. 이튿날 아침에 촬영현장이 발칵 뒤집혀진줄도 모르고 유유히 렬사비를 다시 소수레에 실어온 그 농민도 알고보니 렬사유가족이였다. 국내해방전쟁에서 희생된 아버지가 렬사여서 렬사비에 대한 감정이 남달랐던 모양이다…

“자연과의 투쟁은 이와 같은 지구력으로”.

최일선원예사가 살고 있었던 옛터는 지금도 남아 있는데 늙은 비술나무 한대가 암석사이로 깊이 뿌리를 내린채 완강한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거기에는 최일선로옹이 석회로 일필휘지하여 돌우에 써놓은 “자연과의 투쟁은 이와 같은 지구력으로”라는 글발이 지금도 남아있어 우리 삶의 끈질긴 분투와 개척정신에 대해 채찍질해주고 있는듯 싶다.

퇴직 후 고향에 돌아와 과수원을 다루고 있는 최광인씨부부.

현재 최일선과수원은 중국조선족의 자랑이였던 서성진의 쌍둥이 비행사 중 한사람인 최광인씨가 퇴직 후 고향에 돌아와 귀농하면서 또다시 아름다운 현대판 전설을 엮어가고 있었다. 최광인씨가 다루는 과수원은 지난세기 50년대부터 일군 과수원으로서 거개가 다 60년이상 되는 로목들이다. 다년간 방치돼있었던 죽어가는 과수나무에 생기를 불어넣는 일을 하는 셈이다. 최광인씨는 과수원을 다루면서 촌민들과 서로 더불어 살아가는 따뜻한 농촌인정을 느끼고 싶다고 말했다…

명암촌이 진달래민속촌으로의 개칭엔 일정한 리유가 있었다. 2010년 7월에 특대홍수피해를 입은 명암촌과 장항촌 등 주변 마을의 촌민들을 모아 마을을 새롭게 조성하면서부터이다. 원래의 명암(明岩)촌에 장항(獐项)촌과 구산(邱山)촌을 합쳐 진달래민속촌으로 만든 것이다. 

진달래민속촌 뒤동산에는 2011년 5월 12일에 화룡시인민정부에서 진달래민속촌을 건설하면서 세운 비석 하나가 있다. 거기에는 “홍수피해지역 백성들의 수입창출과 민생개선을 도모하고저 명암촌 실정에 립각하고 장백산관광교통망에 의탁하여 화룡의 풍부한 관광자원을 접목시켜 조선족민족특색이 짙은 민속마을로 건설하기로 하고 마을 명칭을 ‘진달래민속촌'으로 고쳤다…”는 유래가 적혀 있었다.

봄이면 진달래가 곱게 피여나 해내외 손님들을 반겨준다.

해마다 진달래꽃이 곱게 피여나는 계절이면 진달래민속촌은 온통 축제로 들끓는다. 많은 사람들이 진달래촌을 찾아와 조선민족 문화의 숨결과 민속풍토인정을 느껴본다. 진달래민속촌이 품고있는 소중한 력사와 내함, 계속해서 엮어나가고 있는 전설들은 많고 많은데 일일이 다 적어내지 못함이 안타까울뿐이다.

문득 진달래민속촌은 옛날에도 그러했거니와 지금도 어떤 무언의 사명감을 안은채 우리들의 문화와 력사를 품고 있는 비전이 있는 마을로 숙명처럼 서있는 것이 아닐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길림신문 안상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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