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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기행]북일중학교를 찾아 대황구에 가다

편집/기자: [ 김태국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8-05-28 12:32:11 ] 클릭: [ ]

우연하게 읽은 글이 이번 답사의 계기가 되였다.

나라를 잃은 우리 선조들이 남부녀대하고 두만강을 건너 허위허위 찾은 곳은 그때만 해도 일제의 마수가 뻗치지 않은 심심산골이거나 외딴 곳이였다. 은둔하여 숨죽이고 사는 역경속에서도 그들은 나라를 빼앗긴 원한을 가슴깊이 간직하고 나라를 되찾을 큰 뜻을 키웠는데 그러한 뜻을 세세대대 이어가기 위하여 학교를 세운다. 이러한 학교들은 민족독립과 침략자를 이 땅에서 몰아내는 반일민족교육을 진행하여 후세에 무궁무진한 정신적재부를 남긴다.

명동학교, 창동학교, 정동학교, 광성학교 등 연변의 유명한 학교들과 이름을 나란히 하고 있는 학교가 심심산골이나 다름없는 대황구골에 있었으니 바로 북일중학교다.

“북일중학교는 1917년 1월에 창립되였다. 창립자의 한분이며 제1대 교장인 량하구는 나의 세째 자형이고 나 역시 이 학교를 다녔다. 그래서인지 이 학교의 정황을 내가 좀더 많이 알겠지만 60여성상이 흘러 갔으니 많은 구체 정황은 잘 기억되지 않지만 이 학교가 반일민족교육을 진행한 진지였을 뿐더러 더우기는 민족독립운동의 혁명전사들을 육성해낸 군사학교였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 ” 1919년에 북일중학교를 졸업하고 훈춘 조선독립군에 가입하여 제1대대 제2중대장으로 활약하면서 1920년 조선 원 경원군 고건원습격전을 지휘하였고 후에는 풍옥상장군을 따라 일본놈들이 투항할 때까지 싸운 강석훈이 구술하고 강월송이 정리한 <내가 다닌 북일중학교>라는 글의 한 단락이다.

김남극의사 묘소(상 2017년 11월 22일, 하 2018년 5월 23일).

이 글을 읽으면서 부지중 지난해 11월에 찾았던 대황구와 촌어구에 모셔진 반일지사 김남극묘소가 떠올랐고 다시한번 찾을 생각이 간절했는데 마침 ‘력사동네민속동네’의 동인들이 대황구유적지답사를 조직한다기에 함께 떠나기로 하였다.

5월 23일 아침 8시반에 전세뻐스로 연길을 출발한 우리 일행 17명은 연길-도문 고속도로를 수리하는 연고로 고속도로를 리용하지 못하고 장안, 도문, 량수, 밀강을 경유하여 대황구에 갔다가 영안을 거쳐 훈춘에 와서 점심을 먹기로 코스를 잡았다. 그런데 처음부터 계획이 삐꺽거렸다. 고속도로를 리용하던 모든 차량들이 연길-도문 국도로 몰리면서 뻐스는 도저히 속도를 낼 수가 없었고 또 밀강을 지나 중강자에 도착하여서야 중강자-삼안구간의 도로 역시 수리중이여서 통차할 수 없음을 알게 되였다. 울며 겨자 먹기로 차머리를 돌려 영안을 거쳐 대황구로 가기로 하였는데 영안진에 도착하니 벌써 열한시가 되였고 대황구에 도착하니 열두시가 넘었다.

중강자마을 어구에 세워진 중강자사건 옛터 비.

차에서 빵으로 대강 점심을 에때운 일행은 황구쏘베트정부 옷공장유적지와 병원유적지-반일지사 김남극묘소-훈춘시당사전람관-13렬사묘소-중공훈춘현위탄생지 등 순서로 답사하기로 하였다. 일행의 대장으로 점심식사를 훈춘시 춘자식당에 안배했던 남철씨가 전화로 도착시간이 한시간반쯤 연기될 것 같다고 알린다.

지난해 찾아갔을 때에만 해도 엉성하게 자란 풀을 헤치면서 찾았던 김남극의사의 묘소가 새롭게 잘 정비되고 있었다. 새로 길을 빼고 입구에 소나무를 심었으며 묘역에 울바자를 두르고 바닥에 유리벽돌을 까는 등 보수작업이 한창이여서 훈춘시정부의 홍색관광구 건설이 박차를 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일행이 많다보니 움직임이 매끈하지 못했다. 사진 찍는 사람, 묘비문을 읽는 사람, 한 지점에서 15분씩 빨리 움직이려고 했지만 훈춘당사전람관에 도착했을 때에는 한시가 넘었다.

빵으로 점심을 에때우는 일행.

련락을 받고 점심도 거른 채 우리를 기다리던 대황구촌 전임 당지부서기 류국신(65세)씨가 우리를 맞아 주었다. 3층 건물 2만여 평방메터의 전시청에는 수천장의 진귀한 력사사진과 영상, 문물이 전시되였는데 이는 길림성에서 현급시가 건설한 유일한 성급표준의 당사전람관으로 지난해 7월 21일에 개관되였다. 시간상 관계로 우리는 해방전까지의 내용을 전시한 1층 부분만 참관하고 유적이 많은 13렬사묘소로 향했다. 마음씨 고운 류국신씨가 해설을 맡아주겠다고 나섰다. 윤동주생가에 가면 선뜻 나서주던 송길련씨와 왕청에 가면 선뜻 나서주던 김춘섭, 최금철 등 고마운 분들이 떠오른다.

병원, 옷공장 옛터에서.

13렬사묘소에 도착하기전 시원하게 트인 밭이 나타나고 그 밭머리에 아름드리 고목 한그루가 우리를 맞는다. “이 돌배나무는 수령이 2백년이 된다고 합니다. 김남극의사와 량병칠의사가 바로 이 나무 밑에서 살해되였지요.” 류국신씨는 마을의 로인들에게서 들었다고 하면서 당시상황을 설명하여준다.

김남극과 량병칠의사가 살해당한 곳.

1920년 10월 12일 이리떼마냥 대황구에 덮친 일본토벌대놈들은 북일중학교의 지도자와 독립군전사들을 내 놓으라고 김남극, 량병칠, 김하정 등 교원과 20여명의 군중들을 체포하고 고문을 들이댔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자 일본놈들은 “말하지 않으면 몽땅 총살하겠다!”고 을러멨다. 위험한 관두에 김남극 부교장이 나서서 “북일중학교를 창립하고 독립군을 조직한 것은 모두 내가 한 일이다. 다른 사람들은 이와 아무런 관계도 없다. 즉시 그들을 석방하라”고 태연하게 말했다. 악에 받친 일본놈들은 그날 김남극과 량병칠을 당장에서 살해하였고 김하정은 훈춘으로 압송해가던 도중에 생매장하였다.

13렬사묘역에서 해설하고 있는 류국신씨.

일본놈들에 의해 파괴된 북일중학교는 1920년에 문을 닫게 되였지만 북일중학교의 정신은 사라지지 않고 북일중학교 학생들의 불요불굴의 투쟁을 통해 더욱 널리 발양되였다고 한다. 북일중학교는 약 2년간 사이에 2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는데 그중 대부분이 홍범도가 지휘하는 조선독립군이거나 반일단체의 무장투쟁 골간과 민주혁명시기 반제, 반봉건투쟁가운데서 혁명의 씨앗으로 되였다. 돌배나무 서쪽 언덕의 무성한 갈대밭이 바로 당년의 북일중학교 옛터라고 한다.

우리는 시간이 가는 줄을 모르고 류국신의 해설을 경청하였다. 13렬사묘역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벌써 시계바늘이 두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렬사비에 헌화하고 세번 허리굽혀 경례를 올린 우리는 류국신씨를 통해 당시 렬사들이 희생되던 상황을 되새겼다. 박진흥, 오빈 등 렬사들이 문을 박차고 나와 강변으로 달리며 적을 유인하는 장면을 이야기할 때 류국신씨는 그들의 이동로선을 손으로 가리키며 20여분간 계속된 당시의 치렬한 상황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당사전람관에 전시된 오빈렬사의 사진.

20여권의 력사관련 도서를 집필한 리광인선생은 대황구유적지에 관련된 많은 사료들은 읽어보았지만 현지답사는 처음이라고 하면서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연변대학 력사계를 졸업하고 연변박물관 부관장으로 일하는 한광운씨는 훈춘태생으로 25년만에 다시 대황구를 찾는다고 하면서 력사는 서책지식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선렬들의 흘린 피의 가치와 그들의 영웅업적을 다시한번 되새겼다, 연변문화예술연구중심 리임원(시인)주임은 반일의사와 항일렬사들의 불요불굴의 투쟁정신은 널리 알려져야 하고 세세대대 전해가야 한다고 하면서 이러한 답사활동이 사회적인 홍색관광붐을 불러일으키기를 희망했다.

13렬사기념비앞에서.

우리가 황구쏘베트정부유적지, 괴뢰군봉기유적지, 대황구청수동의 중공훈춘현위탄생지 등을 돌아보고 귀로에 오를 때에는 벌써 오후 3시반이였다. 훈춘까지 가면 4시가 넘어되고 밥먹고 돌아서도 7시전에는 연길에 돌아갈 수 없다. 훈춘에 가서 점심을 먹고 시간이 허락되면 훈춘대교와 연변대학 훈춘분교를 돌아보자던 애초의 계획은 물건너간지 오래다. 이대로 연길에 돌아가 밥을 먹고 헤여지자는데로 의견이 모아졌다.

이러다보니 가장 난처하게 된 사람은 남철씨다. 아침 일찍 점심을 갖추어놓으라고 전화를 하고 또 대황구로 들어가면서 시간이 연기된다고 전화를 하였으나 이번에는 아예 못 가게 되였다고 전화를 해야 했으니 말이다.

우리가 연길에 서서히 도착하였을 때에는 저녁 5시 반이였다. 이렇게 이번 답사는 여러가지 악재로 시간과 계획이 엇방아를 찧으면서 나름대로 힘들었으나 덕분에 중강자사건 기념비와 전람관에 전시된 오빈 렬사의 사진, 괴뢰군으로 봉기하였으나 훗날 주은래의 부관, 모택동주석의 경위참모로 된 장태민장군의 사적도 얻을 수 있어 나름 흡족한 답사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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