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기자: [
홍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3-04-14 14:4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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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란 무엇일가? 바로 사고하는 그 순간이 행복이라는 걸 깨달았다. 행복이란 신비한 것이 아니다. 행복이란 그저 만족이며 여유로운 삶을 사는 것이다. 여유가 있기에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는 순간을 가질 수 있다.
내가 바로 이런 행복의 주인이다. 수십년을 충실하게 교원 사업을 해오다 정년퇴직한지도 오래됐다. 바로 이런 여유 속에서 하나의 취미를 얻게 되였다. 행운스럽게도 위챗을 통해 이름난 작가로부터 글짓기를 즐겨보라는 권고를 받아들였다. 사람은 언어로 동물과 구분된다며 언어를 더 많이 알고 더 잘 구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사람다운 삶이라고 한다. 행복지수를 높이기 위해 나는 그의 권고 대로 우선 간단한 글 시조 짓기부터 배우기로 했다. 곁 사람들은 당연이 나의 마음을 리해하지 못했다. 황혼에 여유롭게 즐기면 되는 건데 무슨 글공부이냐고 말한다. 그러는 사람들의 생각에 동감이 가지 않는 건 아니다. 글 쓰기란 골머리를 썩이는 일이라 하지 않던가! 그러나 나는 이 취미를 꼭 살리면서 그 속에서 행복감을 더 느끼고 싶었다.
나는 옛사람들의 지혜와 글재주에 탄복하면서 명인들의 시조를 읽고 외우고 하는 가운데서 점차 미립이 트기 시작하였다. 시조는 말 그대로 간단하다. 3장 6구로 도합 43자로 이루어지는데 나 같은 황혼 인생에는 안성맞춤하다. 내용 배비 형식도 중국 당조 때의 률시와 꼭 같아서 원래부터 당시에 흥미를 갖고 있는 나에게는 아주 익숙하다. 당시는 기승전합으로 이루어지는데 시조는 세개 장이므로 세번째 즉 마지막장에 전과 합을 함께 포함시킨다.
마지막 장이 관건이다. 남다른 표현법, 특이한 느낌, 독특한 견해, 기이한 주장으로 읽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으면 완성이라 하겠다.
한동안 련습했더니 인젠 제법 즐길만하게 되였다. 매일같이 평범하게 지내던 례사로운 일상생활에서도 시감이 생기고 늘 보아오던 눈에 익은 사물도 다시 돌아보며 시를 더듬어보려니 기분이 난다.
마누라가 인젠 날씨가 더워졌다며 두터운 옷은 죄다 치워두고 엷은 옷만 꺼내놓으려한다.
“두터운 옷 둬 견지는 그대로 놓아둬요. 여름에도 차가운 날이 있을 테니.”
내가 한 말이지만 무언가 뜻이 담긴 것같았다. 그렇다. 뜨겁게 사랑하는 부부 사이라도 가끔 얼굴을 붉힐 때가 있지 않던가? 자연스럽게 시 한수 지어졌다.
“자기야 무슨일로
갑자기 차거웠지?
미안해 저도 몰래
괜시리 골이 났어
괜찮아
삼복 간에도 추운 날 있을라니”
이 시조를 본 안해가 잘 썼다고 엄지손가락을 내들었다.
그날 점심식사 마치고 책을 읽는데 밖에서 짹짹-새소리가 들려온다. 문득 시구가 떠올랐다.
“글소리 귀맛 좋게
쟁쟁쟁 울리는데
지나며 듣다 말고
창가에 앉은 새야
너처럼
하늘 날고파
세상 공부 한단다
새들아 너희들은 날개로, 나는 지식으로 함께 푸른 하늘 날아보자꾸나”
또한 나에게는 이런 저런 재미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그중 하나만 말하고 싶다. 한 문인이 가사를 쓰고 나보고 곡을 써라고 하는 것이였다. 난 작곡은 문외한인데 이게 무슨 일이람? 다시 알고 보니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작곡가가 있었던 것이다.
나의 이름은 아버님께서 고르고 골라 지어준 것이란다. 그 이름 덕이랄가. 기나긴 세월 무난히도 견뎌왔다. 그래서 또 이런 시조를 지을 수 있었다.
“산같은 기대 담아
내 이름 지었다오
다정히 부르시며
내 삶을 지켰다오
소중히
간직할게요
아버님의 금선물”
나는 피천득선생님의 명함을 대단히 좋아한다. 천려일득이란 말에서 따왔으리라. 무슨 일이나 천번 거듭하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말이라고 알고 싶다. 나도 시조 천수를 바라고 짓고 지으면 선생님처럼 책을 낼 수 있지 않을가는 꿈도 꿔본다.
살펴보면 매일의 생활에 시조가 가득 차있다. 황혼에 금방 시작했으나 이미 적지 않게 지어냈고 일부는 신문같은 간행물에 실리기도 했다.
그렇다, 희망을 가지고 취미가 있는 일을 하면서 산다면 내 황혼은 무지개처럼 눈부시게 아름다울 것이고 매일매일 행복 속에 취해서 살 것이리라.
/손홍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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