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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 99] 집 찾아 돌아온 오리

편집/기자: [ 홍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2-02-25 13:05:47 ] 클릭: [ ]

몇년전 나는 그림 같고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새 아빠트에 입주했다.  아빠트단지에 들어서면 유난히 내 마음을 사로잡는 오리 조각상이 있다.  매번 오리 조각상을 볼 때마다 지나간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필자 김순옥

1996년 7월 26일, 남편은 날마다 커 가는 아들딸의 교육비 때문에 허약한 몸을 끌고 한국으로 돈벌이 떠났다. 남편이 떠난 집은 휑하고 쓸쓸하기 그지 없었다. 

나는 손에 일도 잡히지 않았고 어린 자식 둘을 데리고 어떻게 살아갈지 막연하였다. 남편이 떠난 뒤 련며칠 비가 계속 내렸다. 어느 하루는 비바람까지 세차게 몰아치더니 15년 동안 끄떡없던 굴뚝이 넘어지고 집 뒤벽이 와르르 무너져 수수대로 엮은 삿대만 앙상하게 남았다. 내 마음도 굴뚝과 함께 와르르 무너졌다. 연약한 녀인이 남편 없는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쩔바를 몰라 올려받치는 설음을 참지 못하고 그만 엉엉 목 놓아 울었다. 한편으로는 어린 것을 맡기고 돈벌이 떠난 남편이 야속했다. 이때에야 비로소 남편의 빈자리를 느꼈고 그리움으로 가슴을 후볐다.

내가 땅을 치고 넉두리 하며 엉엉 울 때 마음씨 착한 아래 집 할아버지가 구질구질 내리는 비를 무릅쓰고 마을 분들을 데리고 사다리며 널판자를 갖고 와서 넘어진 나무 굴뚝을 수리했다. 그리고 굴둑 몸통에 바를 매고 여럿이 힘을 합쳐 마침내 해 지기전에 굴뚝을 세워 주었다. 할아버지는 떨어진 벽은 비가 그치면 다시 도와주겠으니 걱정 말라고 위안의 말씀을 남기시고는 모두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눈물을 훔치며 고개 숙여 연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말 할 뿐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  

이때로부터 나의 고생문이 열렸다. 매일 힘든 농사일을 하며 어린 두 자식을 돌봐야 하고 집에 있는 짐승들도 먹여야 했다. 그중 오리가 제일 힘들게 했다. 돼지와 닭은 가두어 놓고 먹이고 청소만 하면 되지만 오리는 물놀이 가겠다고 “꽥— 꽥—” 소리 질러 가두어 놓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기르기는 힘들어도 오리 알 줏는 재미가 있었다. 알을 팔아 아이들의 학비를 마련하는 데는 쏠쏠했다. 그래서 강을 끼고 논 옆에서 사는 우리 마을 분들은 집집마다 오리를 길렀다. 해마다 힘든 모내기를 끝내고 갓 깬 새끼 오리를 사다가 논에 풀어서 길렀다. 힘들던 모내기로 어깨가 축 처지고 다리가 후둘후들 떨려도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벼와 새끼오리를 보면서 가을의 풍작을 꿈꾸며 새 힘을 얻군 했다.

 
아들딸들과 함께 

나도 해마다 오리를 길렀다. 동네 분들의 덕분에 굴뚝은 세웠으나 집 나간 오리들이 돌아오지 않아 비닐을 쓰고 오리 찾으러 논으로 향했다. 목청을 높여 “야야—야야—야야—” 하고 불러도 평강벌 그 넓은 논에서 오로지 개구리 우는 소리만 들린 뿐이다. 하늘에서는 여전히 주룩주룩 비 내리고 시간은 밤으로 향하는데 우리 집 오리는 보이지 않아 마음만 급해졌다.

나는 논을 지나 오리가 잘 노는 늪에도 가보았으나 오리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허둥지둥 논뚝에서 넘어지면서 마을과 좀 떨어진 내가로 달려갔다. “야야— 야야—야야—”, 소리 지르며 물길 따라 달려갔다. 그때에야 나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오리들이 여기 있다는 듯  “걀걀,깩깩” 소리 질렀다. 련속 3일 넘겨 내린 비에 도랑물이 불어 물살이 세지고 도랑 뚝의 경사도가 더 강해졌다. 힘이 약한 오리들은 안간힘을 다 써도 뚝을 올라 올 수 없었다. 물과 생사 박투를 벌이는 오리를 보고 ‘집도 찾지 못한다’고 툴툴거리며  도랑에 뛰여들어  오리를 한마리씩 붙잡아 도랑에 올려보냈다. 그러나 절대 무리와 떨어지지 않는  오리들은 도랑에 가만히 있지 않았다. 올려보낸 즉시 데굴데굴 굴러 다시 도랑에 떨어지군 했다. 한참 신갱이를 써도 오리를 몰아올려 보낼 방법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오리 한마리만 붙잡고 그냥 집으로 돌아와 버렸다.  

나는 15살 나는 아들과 9살 나는 딸을 데리고 오리를 넣을 수 있는 주머니를 들고 또 다시 내가로 향했다. 그 사이 오리들은 점점 더 멀리 떠내려갔다. 좀만 더 내려가면 해란강과 합치는 합수목이였다. 나는 허리를 치는 도랑에 뛰여들어 오리를 붙잡아 아들한테 주면 아들이 주머니에 넣고 딸더러 주머니 아궁이를 쥐게 했다. 우리가 힘을 합쳐 겨우 오리 8마리를 구했을 때 다른 오리들은 세차게 흐르는 물살을 이기지 못하고  해란강 따라 떠내려갔다.  해란강은 집채같은 검은 파도를 일구며 오리를 삼켜버릴 듯 기승을 부리며 덮쳐들었다. 10여 마리 오리들이 순식간에 검은 물살에 감겨 저 멀리서 허우적 거리며 둥둥 떠내려갔다. 오리들은 살겠다고 안깐 힘을 다 쓰며 버텼지만 사정없는 물살에 밀렸다. 처음에는 기우뚱 거리는 쪽배처럼 파도에 밀리더니 순식간에 멀리 떠 내려가 눈 깜박할 사이에 작은 잎마냥  해란강을 따라 홱 굽이를 돌더니 눈앞에서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너무도 갑작스런 일이라 어찌할 바를 몰라 사정없이 흐르는 강물 따라 내달렸다. “야—야—,오리야,오리야”, 아무리 불러도 오리는 대답도 없고 보이지도 않았다.

나는 남편의 빈자리, 오리를 눈앞에서 잃어버린 설음이 몰려와 눈물이 샘처럼 솟았다. 해란강을 저주하며 하늘을 원망하며 하늘을 쳐다보며 눈물만 펑펑 쏟았다. 오리를 잃어버린 서러움보다는 남편이 없는 집에서 애들 데리고 살아가야 할 걱정이 더 막막했다.  

비를 맞으며 한참 울고서야 제 정신이 들었는지 그때서야 옆에서 울고 있는 아들딸이 보였다. 아들은 “어머니, 인젠 집으로 가기쇼. 오리들이 물살이 쎈 해란강에서 못 나옵니다. 해란강 물에 둥둥 떠서 바다로 갈 겁니다. 우리는 집으로 가기쇼. 비도 내리는데 가기쇼.”하며 나를 달래였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래,오리를 잃어버렸어도 나에게는 아들딸이 있으니깐. 이 애들을 잘 보살펴야지’ 라고 생각하며 아들딸을 바라보았다. 나는 눈물을 머금고 아들딸들을 데리고 무겁게 발걸음을 뗐다.  오리가 들어있는 주머니를 둘러메고 맥없이 집으로 향했다.

20마리나 되던 오리를 눈깜박 할 사이에 절반이나 잊어버렸으니…애들에게 대충 저녁을 차려주고 김 빠진 고무 풍선처럼 훌렁 방에 들어가 드러누웠다. ‘우리 오리들은 해란강을 따라 어디까지 갔을가? 인젠 영원히 오지 못할 걸.  생활비는 어떻게 마련할가?’ 나의 머리에는 온통 오리 생각 뿐이였다.  하루 하루 시간이 흘러 오리들도 점점 내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나도 새로운 기분으로 아이들을 돌보고 집일,  밭일 하면서 바쁜 나날을 보냈다.

열서너 날이 지난 어느 새벽이였다. 내가 한참 꿈에서 오리를 찾으며 헤매고 있을 때 대문 밖에서 요란하게 울어 대는 오리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꿈에서 깨여나 정신을 차리고 들어봐도 틀림없이 우리 집 울타리 밖에서 우는 오리 소리였다. 나는 잠자던 옷맵씨로 문을 열고 부랴부랴 달려갔다. 우리 집 대문 밖에서 한무리 오리들이 목청껏 괙꽥 소리치며 나를 빤히 쳐다봤다. ‘세상에 너희들이 어떻게 집을 찾아 왔어’ 라고 혼자 중얼 거리며 너무도 반가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집 찾아온 오리들은 나를 보더니 더욱 요란하게 “꽥ㅡ꽥 ㅡ꽥” 소리 질렀다. 오리가 소리 높이 지르는 바람에 옆집 할아버지도 눈을 비비며 달려나왔다. 나는 너무 기뻐서  “진우 할아버지, 우리 오리가 왔쓰꾸마, 오리 왔쓰꾸마”하며 소리 질렀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진우할아버지는 “흐흐흐, 너네 글도 모르고 주소도 모르는 게  어떻게 집을 찾아왔니? 자네 아들딸이 공부를 잘하더니 오리들도 특별히 총명한 모양이네. 이게 며칠만이야 열흘도 넘었는데 조놈들이 어디까지 갔다가 어떻게 왔을가?”하며 감격에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의 두눈에서는 감동의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나는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험한 고생을 겪으며 집을 찾아온 오리들에게 얼른 대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오리들은 제집을 찾았다고 좋아서 엉덩이를 뒤뚱뒤뚱 흔들며 우리로 들어갔다. 열서너 날만에  만난 오리들은 서로 목을 마주 비비며 좋다고 갤갤 거렸다. 이 광경을 구경하던 진우할아버지는 “저애들이 다시 만나니 얼마나 좋아하오. 어디 훈춘 방천까지 갔다왔다오?”라고 우스개 소리했다. 나는 모진 고생을 한 오리들에게 새벽부터  맛 나는 음식을 챙겨주느라 바삐 보냈다.

나는 마당에서 서로 마주보며 사랑을 나누며 좋아서 뒤뚱뒤뚱하는 오리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깊은 사색에 잠겼다. 한국 간 남편도 지금은 전화 련락도 잘 안되고 소식이 드물지만 언제가는 빚 갚고 아이들이 공부할 돈도 마련해가지고 무사히 꼭 돌아올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10년이 지났다. 그동안 타향에서 말 못할 고생을 한 남편이 돈 보따리를 들고 안해와 자식들이 있는 정든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진감래라고 우리 부부는 힘을 합쳐 아들딸을 잘 키웠다. 아들은 중경교통대학을 졸업하고 석사학위까지 따고 일급 공정사가 되였고 딸은 중국정법대학을 다니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열심히 모은 돈으로 이쁜 오리 조각상이 있는 지금의 아빠트로 이사와서 젊어서 못 다한 정을 나누며 행복하게 로년을 보내고 있다.

/ 김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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