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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 80] 샘물이 흘러간 자리

편집/기자: [ 홍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1-09-02 12:53:51 ] 클릭: [ ]

내가 처음 ‘옹달샘'에 대해 알게 된 것은 2016년 가을이였다. 매일 똑 같은 일상을 반복하던 나는 대학교에 다니는 선배를 통하여 얼핏 얘기를 듣게 되였다. “중앙민족대학교에 ‘옹달샘' 문학사라고 있는 데 우리 말로 글짓기 활동을 하고 잡지도 낸대!”

필자  리진화

물론 그 때 내게 있어 대학에는 이런 동아리들도 있구나 하고 감탄할 뿐이였다. 그 후 차차 알게 된 바에 의하면 ‘옹달샘' 문학사는 북경에서 최초로 세워진 조선족 대학생 동아리로서 1995년에 설립되여서부터 지금까지 많은 문학 활동과 세미나, 콩쿠르, 잡지 출간 등등 활동으로 조선족 학생들 사이에서 유명해졌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문학꿈을 꾸기 좋아했던 나에게 이 주제는 생소하면서도 신기하게 다가왔다. 한때는 작가가 되여보고 싶다고 호언장담을 했던 나지만 공부 압력에 밀려 점점 현실적으로 변해가는 와중에 그래도 마음속 한 구석엔 문학꿈이 남아 있었는지.

‘옹달샘'과 직접 련락이 닿은 건 2019년의 추운 겨울이였다.

나는 중앙민족대학에 입학하게 된 후 말로만 듣던 ‘옹달샘' 문학사에 가입할 기회를 가지게 되자 뛸 듯이 기뻤다. “왜 우리 문학사에 신청했지?”, 선배 언니가 묻는 말에 “소문으로만 듣던 동아리에 와 보고 싶었습니다.”라고 대답하자 동아리방은 웃음바다가 되였다. “그래 그래, 앞으로 너희는 잡지 편집을 배우게 될거야.”, “알겠습니다. 열심히 할게요! ”군기 바짝 잡힌 나의 대답에 또 한번 웃음보가 터졌다.

‘옹달샘' 문학사는 내게 있어서 참 상상 그 이상으로 신기함을 안겨주는 존재였다. 〈몽당치마〉, 〈대장금〉등 연극 활동은 동영상으로 다시 보아도 그 때 부원들의 열정이 력력히 보여졌다. 이외 또 전통문화 축제, 특강으로 우리 말과 글, 문화를 전파하는 세미나를 개최해왔다고 한다. 이런 유구한 ‘력사’를 가진 동아리에 가입하게 되다니, 기쁜 것은 두말없었다. 부원들과 함께 어떻게 더 재미 있는 잡지를 출간해 나갈 가 머리를 맞대고 열띤 토론을 벌이는 것은 대학 생활에서 가장 재미 있는 일과중의 하나가 되였다.

물론 처음부터 순조롭기만 한 것은 아니였다. 처음 접해보는 편집과 교정은 완전히 새로운 령역이라서 너무도 낯설었다. 글자 하나하나 맞추고 따져가며 교정하면서 어지러워질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하지만 우리 손에서 새 잡지 내용이 완성되여가는 것을 볼 때 성취감이 드는 건 틀림없었다.

잡지 출판 양식에 대해 상의할 때 문득 드는 생각에 물었다. “다음 콩쿠르는 언제 하는 건가요? 저도 참가해보고 싶어요.” 대학에 온 뒤 우리 말로 글짓기를 하는 것은 많지 않은 기회라서 참가하고 싶은 생각에서였다.

수도 대학생 활동에서의 필자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예상 밖이였다. “아, 그렇잖아도 학부 합병으로 인해 아마 우리 잡지를 출판하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 같아. 유감스럽지만…”순간 모두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앞으로 잡지 출간이 끝나면 동아리 활동은 하지 못하게 되는가요?” 너도나도 갑작스런 소식에 어쩔 바를 몰랐다.

오래전부터 흥취가 있게 되고 드디여 들어오게 된 ‘옹달샘' 문학사였기에, 애착은 상당했다. 하지만 이런 시간도 곧 다 끝나간다는 생각에 마음이 너무 심란했다. 마치 어릴 때 인형을 사려고 몇주동안 돈을 긁어모아 기대에 벅차 달려갔을 때 이미 팔리고 없는 것처럼, 허무감과 상실감이 너무도 컸다.

“왜 난 항상 한 발자국 늦지?”, 늦겨울의 탁한 공기 속에서 나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 뱉었다.

그 후의 시간은 폭풍우처럼 지나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갑자기 덮쳐온 코로나19로 인해 학교에 반년 넘게 나가지 못한 상태에서 잡지 출간은 자연히 연기되였다. 인터넷 수업으로 시간을 보내던중 가을 학기 개학이 가까와진 어느 날 갑자기 동아리 친구가 제의하였다. “남은 시간 동안 우리가 ‘옹달샘' 문학사에 대한 감상을 적어 곧 나올 잡지에 추가해보는건 어떨가?” 이 제안은 재빨리 부원들의 동의를 얻게 되였다. 그러다 보니 다시금 ‘옹달샘' 문학사에 대해 회고해보게 되였다.

지금까지 26년이라는 력사를 가진 ‘옹달샘' 문학사는 처음에 “우리 문화 전파”의 리념으로 문학창작을 시작했다. 마음을 다잡고 지난 잡지들을 펼쳐보느라니 그들 부원들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중 한마디가 마음에 와 닿았다. “모든 것들은 지나가고 모든 것들은 머물다 간다. 비 지나간 자리는 젖고 볕이 와서 말리고 간다. 사람의 흉중으로도 때론 비 지나가고 그 자리 우로 볕이 머물다 가기도 한다…”

이를 반복하는 26년이라는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이들이 지나갔을가? 그들도 한때는 풋풋한 대학생이였으리라. 전자통신이 발달한 지금 우리는 책에 시간을 파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옹달샘'이라는 존재와 만났을 때, 이 책들을 통해 지나간 시간 ‘옹달샘'이 흘러온 자리와 그가 피워낸 꽃들을 감상할 수 있게 만들었다.

난 항상 내가 한발자국 늦었다고 생각했다. 기대하던 문학사에 들어왔지만 이제 곧 없어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젠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였다. ‘옹달샘'이 26년간 걸어온 발자취는 이 책들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매 페지마다 마치 샘물이 흐른 자리에 피여난 꽃들처럼. 그 속에서 나는 지나간 사람들과 교감하고 그 때의 감정들과 기억들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게 되였다.

“만남도 중요하지만 리별도 중요하지. 한 문장의 마침표이니까. 마침표가 잘 찍혀야 비로소 문장이 완성되는거야.” 고중 졸업식에서 선생님이 했던 말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였다. 끝나면 다 없어진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였다. 삶이라는 가치로 봤을 때 우리가 걸어온 매 한발자국이 모여서 인생이 되고 우리가 남겨온 흔적이 곧 생명이 되는 것이였다.

그 뒤 나는 다시 열정을 회복하여 밤새 작업에 매달렸다. 작별의 마침표를 잘 찍기 위하여, ‘옹달샘'이 흘러간 자리를 고스란히 간직하기 위하여. 이윽고 우리가 각자 후기를 추가한 뒤 새 잡지 편집이 끝났다. 2020년의 겨울 끝자락이였다. 우리 모두가 함께 ‘옹달샘' 문학사 26년의 끝자락에 마침표를 찍었다. 푸른색 잡지 바탕에 쓰인 글귀가 유독 마음에 와 닿았다. “흔적은 늘 마음을 울려주고 기록은 늘 소중하다.” 이 한구절이 마치 샘물처럼 나의 마음속으로 흘러들었다.

‘옹달샘' 문학사의 작명 유래에 관해 물어본 적이 있다. 깊은 산 속 ‘옹달샘'처럼 우리글과 문화를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을 적셔주고 끊임없이 샘물처럼 뿜어낸다는 뜻에서 유래되였다고 한다. 난 사시사철 졸졸 흐르는 샘물의 소리가 좋다. 흐르는 물줄기와 대지가 만나는 설레이는 순간. 그리고 곧 땅과 물이 리별하면서 소리 없이 땅을 적시고 그 자리에서 나무와 풀이 자란다.

이런 만남과 리별은 지난 세월동안 ‘옹달샘'이라는 존재가 흘러오면서 남긴 생명의 흔적인 것이다.

‘옹달샘'은 말한다. “자신은 원래부터 이 자리에 있었고 늘 이렇게 흐르고 있었다고, 변한 건 없다고.” / 리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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