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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 피여난 이름 없는 풀일지라도

편집/기자: [ 안상근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1-08-31 10:30:51 ] 클릭: [ ]

—웃음으로 무대를 주름잡는 배우 김영식

 
연변에서 ‘앵무새’하면 남녀로소를 불문하고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으리만치 알려져있다. 성급무형문화유산 설창예술류 전승인인 김영식, 자신의 본명보다도 ‘앵무새’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한 그의 삶을 들어보려고 무형문화유산전승기지인 연길시조선족무형문화유산보호중심을 찾았다. 조용하고 정가로운 사무실분위기는 이야기 나누기에 아늑하게 와 닿았다.

도문시 석현진이 고향인 김영식은 어릴 때부터 언어방면에 남다른 싹수를 가지고 있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모택동의 시사 〈정강산에 다시 올라〉를 암송하라고 포치하면 5분도 안되여 토 하나 틀리지 않고 암송해 친구들앞에서 표현하였고 학교의 각종 활동에서 시랑송표현으로 주목받았다.

1979년의 어느날, 강 건너 마을인 송림에서 문예공연이 펼쳐졌다. 다양한 공연종목들이 펼쳐진 가운데 유독 김영식의 심금을 울린 것은 만담배우 강동춘이 표현한 만담이였다. 구수한 우리말로 재미있고 익살스럽게 이야기를 엮어가는 표현에 푹 빠져버린 김영식은 필연코 만담배우가 되리라 마음먹게 되였다. 그러다 여기저기 수소문하여 송림에 사는 작가 김창봉(만담 〈술〉, 재담 〈입담풀이〉등을 작)을 찾아가 제자로 받아달라고 언감생심 청탁하였다. 안면부지인 어린 아이의 소행을 기특하게 여긴 김창봉은 흔쾌히 허락하였고 그날 이후로 김영식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김창봉의 댁에 다니면서 재담, 만담표현 기교를 배웠다.

1981년, 연길에 와서 김영식은 김창봉의 알선으로 강동춘을 스승으로 모시고 재담을 배우게 되였다. 강동춘의 많은 제자들중에서도 다섯손가락안에 들 정도로 우수했던 그는 1985년에 해란강구연단에 취직하게 되였고 3년동안 월급없이 강동춘, 최수봉을 따라다니며 무대경험을 쌓았다. 1986년, 재담 〈비결〉로 연변TV음력설문예야회무대에 올랐고 1988년, 소품 〈깍쟁이 우승컵 결승전〉, 만담 〈중성어〉, 〈질투병〉이 히트 치면서 대중들에게 점차 얼굴이 알려지게 되였다.

1994년, 김영식에게 새로운 도전의 기회가 찾아왔다. 그동안 공연을 하며 인연을 맺어왔던 연변TV방송국 문예부의 감독으로부터 〈주말극장〉프로의 구성작가를 맡아보라는 제안을 받게 되였다. 1997년, 〈주말극장〉프로에 ‘앵무새’코너를 창설하고 〈모스크바 중국어 방송〉, 〈편지〉등 만담을 표현하였는데 작품마다 히트를 쳤다. 특히 〈모스크바중국어방송〉에서 앵무새가 남을 따라하듯이 여러 나라 아나운서의 흉내를 신통스럽게 내고 성대모사까지 맛갈스럽게 잘하여 ‘앵무새’란 별칭을 얻기도 하였는데 그 당시 대중들은 김영식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앵무새’하면 모두 알아봐줄 정도였다. 이렇게 시작한 구성작가의 길은 연변TV방송국 〈백두대축제〉프로에까지 이어졌다.

2001년, 연길시조선족구연단으로 전근한 김영식은 업무단장을 맡고 작품창작에 정력을 쏟았다. 그 시기 창작한 재담 〈길쭉이 짤쭉이〉, 노래이야기 〈그 때 그 시절〉등은 관객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하였다. 2007년, 리경화와 함께 출연한 재담 〈노래번역〉은 전국소수민족 곡예전시공연 2등상을 수상하였고 한달뒤 두사람은 중앙텔레비죤방송프로 〈곡원잡담〉에 등장해 특유의 입담으로 시청자들의 환영을 받았다. 이는 중앙텔레비죤방송에 나간 첫 조선족 재담으로 장안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재담 <길쭉이 짤쭉이>의 한장면

2009년, 연길시조선족무형문화유산보호중심으로 자리를 옮긴 김영식은 십여년간 줄곧 연변의 8개 현, 시의 마을들을 돌아다니며 혜민공연에 정열을 쏟았다. 어찌나 자주 다녔는지 이젠 익숙하다 못해 동네 골목골목이 다 환할 정도였다. 맛갈나는 입담, 구성작가로서의 경험, 각종 활동으로 쌓은 사회 실력… 김영식은 혜민공연에서 매번 사회는 물론 프로구성과 원고 작성까지 도맡아 하였다.

혜민공연을 다니면서 김영식은 늘 우리말 구연을 더 널리 알리기 위한 방도를 모색하였다. 그러던중 아름다운 우리 전통음악에 해학적이고 절주감 있는 우리말 입담을 곁들이면 언어가 다른 민족들도 즐길 수 있지 않을가라는 기발한 착상을 하게 되였다. 그렇게 창작된 작품이 마당놀이 형식의 우리말 구연이였다. 2019년, 드디여 김영식이 창작, 연출을 맡고 연길시조선족무형문화유산보호중심에서 공연한 마당놀이 〈우리마을〉이 관객들과 만나게 되였다. 55분 분량으로 된 이 공연은 〈오늘 오신 손님〉, 〈해방된 기쁨〉, 〈그 때 그 시절〉, 〈어머니〉, 〈고향〉등 5개 부분으로 구성되였고 재담이나 만담, 판소리로 막간을 장식하는 형식으로 기대이상의 성공을 거두었다. 그해 7월, 마당놀이는 북경에서 열린 중국곡예가협회설립 70주년 축하회보공연무대에 올랐고, 같은 해 내몽골자치구 훅호트시에서 펼쳐진 제7회전국소수민족곡예콩쿠르에 참가하여 최우수상을, 2020년 9월에는 연변문예계 최고 상인진달래문예상까지 수상하는 감격을 누렸다.

진달래문예상 시상식에서 수상소감을 이야기하는 김영식

최근에는 언변도 있고 노래도 잘하는 다재다능한 신진 만담배우 김하영을 발굴해낸 것이 최대의 기쁨이라고, 이제 남은 과제는 무형문화유산전승인으로서 만담, 재담 교과서를 만들어 후세에 남기는 것이라고 흡족한 심경을 터놓는다. 우수한 만담배우가 되리라는 목표를 위해 끊임없이 달려온 김영식, 그는 자신을 풀같은 존재라고 한다. 겨우내 잠들었다가 봄이면 다시 싹을 틔우는, 화려하지는 않더라도 강인한 의지를 가진 풀말이다.

/《예술세계》 리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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