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닫기

[수기 78] 우쌤, 아래쌤, 더 못 볼 우리 선생님

편집/기자: [ 홍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1-07-12 10:26:50 ] 클릭: [ ]

흰 눈이 내리는 날 ‘우쌤표 코트’를 입으시고 연변대학 종합청사 앞을 지나가시는 우상렬선생님을 목격하고 충격 받은 적이 있다.

신사다운 코트 정장차림과 깊은 사색이 배인 표정을 짓고 흰 눈이 소복이 쌓인 교정을 걸어가시는 우상렬교수님. 그이는 맨발에 파란색 끄스개(슬리퍼)를 신고 눈길을 걸어가셨다. 소위 목욕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류형의 파란색 끌신을. 유독 특이한 패션으로 ‘우쌤표 패션’을 선도해나가시던 스승님. 그러나 우쌤이 입으시는 옷이 남달라서가 아니다. 모든 의복들이 우쌤에게로 가면 특이한 ‘미학개론’이 제기되군 하였다고 말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우쌤, 고 우상렬교수님.

우상렬교수님을 아는 분이라면 웃옷을 거꾸로 입으신 모습을 흔히 본적 있을 것이다. 또 그리고 교수님이라는 신분에 어울리지 않게 빡빡 밀어버린 우쌤의 머리 스타일도 기억에 남았을 것이다.

우리의 우쌤은 아무런 틀거지없는 ‘야인’이셨다. ‘막무가내’로 쾌활하고 ‘유치찬란'하게 해맑으신 우리의 우쌤. 학생들  끼리 덩달아 롱을 주고 받으면서 우상렬교수님을 두고 ‘우쌤’, ‘아래쌤’ 하면서 버릇없이 굴었던 일도 있었더랬다. 

우와 아래 벽없이 스스럼 없으시던 우리들의 ‘친구’ 우상렬교수님께서 영영 떠나셨다. 진작에 편찮으시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아프신지는 여러 소문을 통해 확인을 했던 터였다.

올해 1월, 선생님께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전화를 드렸더니 이제 자신이 마련한 자리에 초대하겠노라 약속했던 우쌤. 7월 10일까지 뵙지 못하고 나는 우쌤의 부고를 전박사로부터 접했다. 오후 내내 한참을 울었다. 사생의 인연을 맺고 보냈던 시간을 되돌아보면서 지금도 주체 못하고 눈물이 흐른다.

얼굴과 복부를 비롯하여 신체 전반이 동그란 모습을 유지하시던 우리의 우쌤, 우쌤이 계시는 자리에는 늘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그 수많은 유머와 유쾌함의 근저에는 꽤나 버거운 울화나 말 못하고 꾹꾹 참아내신 침통함이 깔려있을 것이라 짐작했었다. 마음속의 뜨거운 화산을 〈존재의 리유〉나 〈사랑을 위하여〉같은 노래를 음정 박자도 맞추지 않고 자신만의 재창작으로 주체 못할 감정으로 열창하셨던 우쌤, 성의없이 아무래나 툭툭 내던지듯이 건네던 그 특유의 악센트와 음색의 말투, 과장돼 보이더라도 전혀 어색하거나 억지스럽지 않은 동작, 아무런 규칙없게 즉석 기분에 맞겨지는 춤사위처럼 재미나고 귀여운 ‘률동’과 익살스러운 표정, 아예 온몸을 허공에 내던진 채 공중 부양한 듯한 제스처로 강의에 몰입하던 우쌤.

술 한잔 드시면 그 흥을 주체 못하고 방방 뛰거나 벌떡 뛰쳐일어나 손사래 쳐가면서 열변을 토하시던 그 열정과 정열의 사나이, 우리의 우쌤께서 병으로 쓰러지시다니, 어이없다. 학술과 문학에서 더욱 많은 일을 하셔야 할 ‘젊으신’ 나이에… 참으로 슬픈 일이다.

우리의 우쌤은 많은 사람들, 특히나 문인과 문단에 수많은 좋은 기억을 남겨준 분이시라고 감히 장담할 수 있다. 우리의 우쌤은 좌, 우, 아래, 우 경계가 없이 모든 사람들과 허물없이 어울리는 만인의 지기였으니까. 그래서 문단 내외의 슬픔과 상심은 더욱 크리라.

길고 짙은 눈섭, 두툼한 입술, 높고 커다란 코, 시원스럽게 큼직한 귀, 순수하지만 때론 강한 빛을 내뿜는 눈망울…

선후배들 끼리 우상렬교수님의 용모를 말하면서 선생님의 눈, 코, 입, 귀 등 오관을 각각 분리하여 보면 모두 멋진 미남형이지만 그 멋진 기관들이 우쌤의 얼굴에 모이니 미남자가 아닌 우쌤만의 미모 특징을 이루었다고 우스개로 말한 적 있다.

우상렬교수님은 많은 분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해주었던 분이셨다. 나어린 학생들은 쾌활한 우쌤을 무척 따랐다. 언제 한번 얼굴 찡그리지 않으셨던 대틀 사나이, 유별났던 우리 선생님.

란잡하고 산만할 것만 같은 우쌤은 음악이 빵빵 터지는 연변대학 구락부 공연장에서도 책 한권을 들고 정성껏 읽던 학자이시다.

우리 학급의 대학 동창생들은 우쌤의 《문학개론》, 《미학개론》등 수업을 청강했다. 그리고 많은 분야의 지식을 섭렵한 박학다식한 우상렬교수님의 특강은 언제나 꽤 인기 높은 명강의여서 기타 전공 학생들도 많이 찾아왔던 기억도 떠오른다. 그만큼 우상렬교수님의 강의는 들을 멋, 볼 멋, 느낄 멋, 색다른 멋이 있는 신선한 강의였다.

 

2018년 2월, 2003년급 조문학부 교육반 학생들과 함께 기념사진 남긴 우상렬교수님(앞줄 왼쪽 세번째)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라면 2019년 6월 20일에 존경하는 우쌤과 함께 《길림신문》제1회 ‘두만강’ 칼럼상을 수상한 일이다. 나를 두고 늘 “저 모동필(본명 김호)의 사내다운 야성미를 닮고 싶다.”고 말씀하셨던 우리의 우쌤.

참으로 좋아하던 선생님들께서 련이어 떠나시니 더 괴롭다. 톰과 제리처럼 아웅다웅하시던 김경훈, 우상렬 두 분 선생님은 모두 58세에 우리 곁을 떠났다. 두 분은 서로 다른 류형의 선생님이셨지만 나를 비롯한 많은 학생들이 참으로 많이 따르고 좋아했던 우리의 스승님들이였는데…

자꾸 슬픔이 차오른다. 좋은 사람들이 더 빨리 떠나니. 큰 기둥이 되시여 할 일 많으신 분들의 부고는 참으로 큰 아픔을 준다.

우상렬(禹尚烈) 프로필: 중국작가협회 회원,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평론가, 연변대학 조한문학원 교수 및 박사생 지도교수. 다년간 문예리론과 중한일비교문학 연구에 종사.《서방미학간사》, 《미에 대한 탐구》 등 22부의 저서 출간. 학술론문 50여편, 평론, 수필 등 문학작품 70여편 발표.

 / 연변대학 2003년급 조문학부 교육반 김호 

0

관련기사 :
 
21세기중국정보사이트-백두넷
한길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