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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강누나’유명배우 우람 99세로 별세

편집/기자: [ 김영화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0-06-29 08:33:06 ] 클릭: [ ]

6월 28일 새벽, 저명한 영화배우 우람(于蓝)이 북경에서 향년 99세로 별세했다.

우람(본명 佩文)은 1921년 료녕에서 태여났다. 그녀는 경전명작 《렬화속에서 영생하리(热火中永生)》에서 강누나(언니)(江姐)역을 맡으면서 몇세대를 거쳐 대중들에게  널리 잘 알려졌다. 그녀는 또 영화 《혁명가정(革命家庭)》에서 어머니 주련 역을, 영화 《룡수구(龙须沟)》에서 정낭자 역을, 영화 《림씨네 가게(林家铺子)》에서 장과부 역을 맡기도 했다.

그녀는 연기생애에서 “가장 아름다운 분투자”,새 중국 “22대 영화배우”의 한 사람으로 금계상 종신성과상 등 영예를 수여받았다.

1965년에 영화 《렬화속에서 영생하리》가 상영된 후 수많은 관중들은 강누나(언니) 역을 맡았던 우람에게 감동되여 편지를 보내와 그의 연기에 경의를 표했다. 우람은 “강누나 (언니) 역할을 맡게 된 것은 영광이였으며 비록 자신의 형상은 강누나(언니)를 닮진 않았으나 중요한 것은 렬사 자체의 사적이 감동시켰고 교양가치가 있는 것이지 결코 나 같은 배우가 대단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후 우람은 생활상이나 사업상에서 자신의 언행에 더욱 더 신경을 썼고 ‘강누나’(언니)의 이미지에 영향을 끼쳐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사소한 일 하나하나에 우람은 강누나(언니)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 나아갔을지를 생각하면서  매사를 신중하게 여기고 행동에 옮겼다. 그녀는 또 일찍 고액의 출연료를 고아원에 기부하면서 선행에 앞장서기도 했다. 그러면서 우람은 “이 모든 것은 ‘강누나’(언니) 역할 덕분인데 오늘날 대중들은 그에 대한 사랑을 나에게 아낌없이 주었으니 나로서는 너무나 벅차다”고 말했다.

10평방 좌우의 집 거실에는 《렬화속에서 영생하리》중에서 강누나(언니) 역할을 맡았던 때의 당시 사진과 주은래총리께서 접견했던 사진들이 걸려져있다. 그는 “당시 주총리께서는 저를 ‘훌륭한 엄마’역을 소화해냈다고 칭찬하셨는데 주총리께서 말씀하신 배역은 <혁명가정>에서의 어머니 주련 역을 맡았을 때를 얘기하셨다”고 말했다.

배우의 길을 걷지 않았더라면 우람은 공정사가 되였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어릴때 그는 다리를 부설하고 길을 닦아 나라를 위하여 헌신하는 일을 하려했다고 말했다. 1938년에 연안으로 달려간 후 표준어를 정확히 구사하는 그의 재능을 발견하고 연기자로 캐스팅된 것이였다.

연기는 쉬울줄 알았는데 그의 계몽스승이였던 웅새성선생은 수업을 진행하고 나서 “연기는 장난이 아니다. 연기는 전쟁터이다. 무대에서 죽을 각오로 림해야 한다”고 했다. 우람은 문학예술이 민중들을 각성시켜 항일에 참가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차츰 알게 되였고 그때로부터 연기를 신성한 사업으로 간주하게 되였다고 자서전에 밝힌적도 있다.

수많은 전형적인 배역을 창조한 외에도 우람은 우리 나라의 아동영화에 대해 두드러진 공헌을 했다. 1981년, 이미 환갑의 나이가 된 우람은 명을 받고 아동영화촬영소를 건립했으며 초대 소장을 맡았다. 그러나 촬영소를 건립할 때 봉착한 곤난은 그의 상상을 넘겼다.

“떨어지는 물방울이 얼음이 되는 추위와 초라한 사무실, 거기에 지병을 앓고 있는 몸… 너무도 힘들었습니다. 포기하고 싶을 때면 당에서 맡겨준 임무를 반드시 완수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버텼습니다…”

어떤이들은 당시 그의 사업형상을 ‘고무의 머리, 앵무새의 입, 청개구리의 배, 토끼의 다리’라고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이는 사업을 진행함에 있어서 거절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며 갖은 곤난을 견뎌내고 하루에 8개 단위를 동분서주하며 일을 처리하는 우람의 모습에 대한 생동한 형용이였다.

그의 노력하에 아동영화촬영소는 끝내 건립되였고 《홍상(红象)》《소년 팽덕회(少年彭德怀)》《오, 향설(哦,香雪)》등 영화를 촬영했다.

명성과 리익에 대해 우람은 시종 로일대 예술가의 소박한 평상심을 유지했다. 생전에 그는 늘 “저를 예술가라고 부르지 마십시오. 대스타라고는 더욱 부르지 말고요. 저는 그냥 문예사업일군으로서 한평생 문예사업을 했을 뿐입니다.”

“제가 무슨 대단한 공헌이라도 했습니까? 배우는 가장 득을 보는 같습니다. 촬영조에는 100여명이 있는데 대부분 사람들이 생각나는 것은 ‘강누나’(언니)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보다 공헌이 큽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공헌도 저보다 적지는 않을겁니다. 다만 그가 맡은 역할이 도구를 나르거나하는 등 관중들에게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걸로 비교하고 평가해서는 안됩니다.”하고 말했다.

출처:央视新闻  편역/김영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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