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닫기

[수기45] 내가 찾는 은인(박영옥편2)

편집/기자: [ 홍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0-06-19 15:53:08 ] 클릭: [ ]

[수기 45] 내가 찾는 은인(박영옥편2)

도시로 전근할 수 없게 되자 엄마는 젖먹이 남동생과 나를 데리고 집에서 80키로메터 떨어진 현병원으로 가서 몇달간 치료를 하였다.

현병원 부근에 아는 사람이 없다 보니 엄마는 병원에서 멀리 떨어진 기차역 부근에 있는 한 집의 웃방을 세 맡고 난로로 밥을 지으시며 보내셨다.

엄마는 매일매일 동생은 업고 날 안고 병원으로 두번씩 오르내리시며 침을 맞혔다.

필자가 세살 때 어머니와 함께.

어느 한번은 팔이 너무 아파서 지나가는 마차에 슬그머니 나를 앉혔는데 그만 내가 떨어질 줄이야.

아프다고 마구 울어대는 소리에 마차군이 마차를 세우더니 “아참, 나보고 태워달라고 말할 거지 왜서 슬그머니 앉혔습니까?” 하고 엄마를 핀잔하더니 엄마까지 마차에 앉히고는 세집 앞까지 태워주었다고 한다.

엄마는 이렇게 한달간 나를 안고 다니며 힘들게 현병원으로 오르내리셨는데 어느 날 병원부근에 사는 한 젊은 남자가 지나가는 엄마 보고 이렇게 말을 걸었단다.

“아주머니, 며칠전부터 전 아주머니를 많이 지켜보았습니다. 애를 업고 또 애를 안고 매일 오르내리는 게 얼마나 힘드시겠습니까? 그러니 오늘부터 우리 집에 계시면서 애를 치료시키십시오. 지금 애를 치료하는 분이면 바로 저희 매형입니다. 매형한테서 아주머니 정황을 다 알게 되였습니다.”

“아니아니, 그건 안돼요.”

엄마는 급히 거절하셨단다. 한사람도 아닌 세식구, 그것도 남동생이 태여난 지 겨우 두달이 좀 넘어서 밤이면 몇번이고 기저귀를 바꾸고 몇번이고 울어대서 젖을 먹이는 형편인데.

“더 고집 마십시오, 지금 나와 함께 가서 물건을 옮겨옵시다.”

말을 마친 그 남자가 엄마 뒤를 따라 엄마가 살고 있는 집까지 가서는 물건을 수습하는지라 엄마는 할 수 없이 그 남자 집으로 가셨단다.

그 집에 들어서는 순간 엄마는 너무나 놀랐단다. 그 남자는 결혼한 지 석달 밖에 안되였던 것이다. 순간 엄마는 진퇴량난이였다. 그 남자의 뜨거운 열정과 진심어린 마음을 물리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신혼부부네 집에 단꺼번에 세식구가 불어나는 기막힌 환경을 만들어주기도 미안하기 그지없는 일이였으니 말이다.

엄마가 멍해있자 그 남자가 온돌로 마구 끄는 바람에 올라갈 수 밖에 없었단다.

감동적인 일은 이것 뿐이 아니였다. 그 남자는 잠간 어디로 다녀오더니 엄마 보고 이렇게 말하더란다.

“아주머니, 래일부터 저희 매형이 직접 우리 집에 와서 애한테 침 놓기로 했습니다. 그러면 아주머니가 적게 힘들지요.”

그 날부터 엄마는 꼬박 석달이나 그 집에 있었단다. 세집 값은 물론 쌀 값도, 채소 값도 안 받고 그냥 한집 식구처럼 대해주었단다.

간혹 밤중에 남동생이 보채게 되면 엄마는 송구스런 마음이였는데 그럴 때마다 그 집 내외간은 늘 이렇게 엄마를 위안했단다

“아무 생각 마세요. 우리도 인제 애가 있으면 잠 못 잘 때가 많을 건데요”

엄마에게 있어서 남동생의 기저귀를 빨 때가 제일 송구스러웠단다. 갓 결혼한 신부한테 그런 빨래를 보여주지 않으려고 엄마는 늘 웃방에서 가만히 하시느라 했지만 발각되군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내외간은 엄마 등을 정주칸으로 밀면서 편안하게 하라고 했단다.

“인제 우리도 겪게 되는 일인데 미안해마세요.”

뿐만 아니라 내가 환자라고 미시가루를 내서 먹게 했고 때론 과자도 사들고 들어왔다고 한다.

일어서지도 못하던 내가 치료를 거쳐 일어서서 한손으로 벽을 짚으면서 조금씩 걷게 되자 엄마는 중약을 지어가지고 집에 돌아왔다. 떠날 때 엄마가 얼마라도 돈을 남겨두려고 했더니 단호히 거절하더란다.

그 후 엄마가 옷을 사가지고 인사하러 찾아갔더니 그들은 어디론가 이사 간 바람에 못 만났단다.

그런 후로 몇번이나 수소문 했지만 그냥 찾지 못해서 엄마는 오늘까지도 외우고 있다.

아무런 혈연관계도 없는 사이인데 그 때 뭐나 흔치 않던 세월에 그토록 큰 인정을 베풀었다는 것은 정말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일이고 영원히 감사드릴 일이다.

세월이 많이 흘렀어도 엄마는 오늘까지 그들의 얼굴을 잊지 못하고 있다. 자그마한 키에 너부죽한 얼굴, 미소가 가실 줄 모르는 입가…

60여년전의 일이지만 오늘까지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이야기다. 눈물이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사연이다.

아직은 이 땅의 어느 곳에 살아있다는 생각이 늘 앞서면서 만약 그가 이 글을 볼 수가 있다면 내 마음이 많이 가라앉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만날 수 있다면 난 큰절이라도 올리고 싶다.

현병원에서 몇달간의 치료를 거쳐 나는 처음에는 한손으로 벽을 짚고 걷다가 후에는 지팽이를 짚다가 또 후에는 겨우 걸을 수 있었으나 다리를 몹시 저는 장애자로 되고 말았다. 오른쪽 발은 발뒤축이 땅에 닿지 못했고 왼쪽 발은 밖으로 벗딛기 때문에 걸을 때면 몹시 힘들었다. 어찌 보면 나는 네살전까지 미리 이쁜 걸음을 다 걸은 것 같다.

작자 박영옥  /길림신문

0

관련기사 :
 
연변부동산
21세기중국정보사이트-백두넷
한길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