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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 34] 량심과 정으로 이어온 ‘손자’와의 인연

편집/기자: [ 홍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0-04-02 09:29:47 ] 클릭: [ ]

[수기 34] 량심과 정으로 이어온 ‘손자’와의 인연

나에게는 50대 중반에 내 가슴에 와 닿은 ‘손자’가 있다. 그 때로부터 우리 량주가 ‘손자’와의 인연을 이어온지도 어언 19년이 된다. 방학 때마다 집에 오는 ‘손자’가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부를 때면 훌륭하게 자라 준 ‘손자’가 고맙고 자랑스러우며 ‘손자’의 뒤바라지를 하느라 고생한 보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19년을 되돌이켜 보면 몇번이고 ‘손자’의 뒤바라지를 그만두려고 마음먹었 건만 량심과 정 때문에 끈끈한 인연을 이어갔다.

‘손자’돌잔치에서의 김숙자 

19년전인 2001년 봄 나는 낳은지 6개월 되나마나하고 에미도 없는 청도 남자애의 보모로 있었다. 그때 나의 나이가 50대 중반이였다. 한달에 보모비 300원을 받기로 하고 시작한 일이다. 그때 인민페 300원이라면 맥이 있었다. 농사 일을 하는 우리 가정을 볼 때 큰 보탬이 아닐 수 없다. 식구가 많고 경작지 또한 적어 밭에 매달려 살아가는 것이 엄청 힘들었다. 우리 사는 고장은 룡정시내 교외에 있지만 경제수입이 별로 없어 겨우 살아가는 형편이였다. 하여 나는 보모 일에 선뜻이 나섰다. 애엄마는 남편과 갈라져 이미 사라졌고 애아빠는 식당 주방장으로 있었는데 그것도 식당 경기가 좋지 않아 그럭저럭 겨우 로임을 받는 형편이였다. 게다가 집도 없이 세방살이 하는 젊은 청년의 가정살림이 더없이 험악했다. 나는 공짜로 먹고 자고 하면서 매달 300원 수입이 있다는 생각에 저으기 마음은 안착되였다. 남들은 수만원의 수속비를 밀어넣고 외국으로 목돈 벌러 가지만 은행에 1전 저금 없는 나로서는 이런 직업은 당시 흔치 않아 좋은 기분으로 시작하였다.

몇달이 흘러가자 나는 아이와 정이 들었다. 우유를 먹여주면 해쭉해쭉 웃는 어린애를 볼 때마다 기분이 아주 좋았고 마치 어린애의 어머니가 된 듯한 야릇한 심정이였다. 정은 갈수록 깊어만 졌다. 인제 애는 나의 일상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로 되였다. 그런 때에 고향에 있는 남편에게서 호출령이 내렸다. “당장 보모 일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오라”는 전화였다. 내용인즉 외국으로 나간 사람들의 경작지를 임대하다나니 토지면적이 많아져 혼자서는 농사를 짓기 어렵다는 전갈이였다. 이 상황을 애아빠한테 이야기했더니 애아빠는 펄쩍 뛰면서 “그럼 어쩝니까? 여기서는 다른 조선족 보모를 구할 수 없으니 아예 할머니가 애를 데리고 가서 키우십시오.”하고 나눕는 것이였다. 내가 청도에 있는 큰 오빠와 상론하였지만 애를 데리고 가서 키우는 방법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래도 어찌 남의 어린 자식을 몇만리 떨어진 타향에 데리고 가겠냐? 혹 무슨 병고라도 생기면 그 후과를 어찌 책임지겠는가?’고 생각하며 수차 그렇게 못하겠다고 거절했다. 그러나 애아빠는 막무가내로 “애를 데려다 키워달라”고 통사정하며 나눕었다. 애는 원인도 모르고 나를 쳐다보며 구슬같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좋아했다. 나는 그런 어린애를 두고가자니 마음이 무겁고 편치않았다. 어릴 때부터 무슨 일이나 시작하면 직심으로 하는 성격인지라 맡길 데도 없는 애를 두고 길 떠난다는 것이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애아빠도 자기 아들을 친자식처럼 돌보는 나를 믿었고 좋은 보모를 만났다고 좋아했다. 결국 나는 할 수 없이 어린애를 업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올 때 애아빠는 보모비라면서 2,000원을 선불했다. 그리고 이후에 륙속 보모비를 보내 드리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애아빠는 그후 애가 여덟살 되도록 보낸다는 보모비가 가물에 씨앗나듯 얼마 보내지 못했다. 유치원에 다녀야 하는데 유치원 비용도 남의 집 모내기와 김매기를 해주는 등 삯일을 해서 겨우 해결하였다. 아이를 위해 아글타글 고생하는 나를 보고 이웃들은 “늘그막에 왜 그런 고생을 사서하는가?”, “아이를 애비한테 돌려보내라”고 수차 권고하기도 했다. 고달플 때면 후회하며 수차 보내려고 생각했으나 그럴 때마다 무럭무럭 자라는 애가 눈에 밟혀서 안정된 생활을 하지 못하는 애아빠한테 차마 아이를 보낼 수가 없었다. 아이의 장래가 걱정돼서 자기 힘으로 계속 애를 키우기로 했다. 령감도 나와 같은 생각이였다.

“할아버지, 할머니”하며 기특하게도 졸졸 따라다니는 애를 볼 때마다 남의 자식같지 않고 갈수록 친자식처럼 가슴에 품게 되였다. 보모가 아니라 친할머니가 된 듯 했다. 나와 남편은 아이를 친손자처럼 키웠다. 그런 보살핌 속에서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건실하게 자랐다. 인제는 귀엽고도 살갑게 놀아 우리 내외는 ‘손자’의 정에 세월 가는 줄 모르고 고생도 가뭇없이 사라졌다. 인제 우리 내외는 아이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혈육의 정으로 바뀌여지고 그 정이 더 두터워지고 굳어져갔다. 그런데 아이를 소학교에 보내야 하겠는데 경비가 문제로 되였다. 애아빠는 설상가상으로 겨우 출근하던 직장마저 부도가 나서 자기 혼자 살기도 힘들다 한다. 이 말을 들은 우리의 가슴에 무거운 바위돌이 가슴우에 올려놓은 듯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갈수록 심산인 애아빠의 경제수입을 생각하면 애아빠에게 아이를 맡길 수 없었다. ‘애아빠를 믿다가는 애를 버릴 것 같다’고 생각한 우리 량주는 며칠 동안 해결방법을 생각했다. “할머니, 할머니”하며 어리광 부리다 애는 가끔씩 학교 가겠다고 졸라대기도 했다. 우리는 아이의 장래 학습과 발전을 위해 자금을 장만하기로 결정짓고 돈 벌려고 외국으로 가기로 했다. 아이는 마음씨 착한 잘 알고 있는 집에 맡기고 생활 비용을 대주며 공부시키기로 했다. 그후부터 우리 량주는 애를 친 ‘손자’로 키우려고 마음을 다잡았다.

우리 내외는 해외 로무 길에 올랐다. 그때 우리 나이가 60대 중반이였다. 한평생 농사 일만 해온 우리는 농사 일외에 다른 손재간이 없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편벽한 시골마을을 전전근근하며 닥치는대로 돈벌이를 했다. 일하면서도 늘 생각나는 것이 남에 집에 맡긴 우리 ‘손자’였다.

‘공부는 잘 하는지?’, ‘말은 잘 듣는지?’, ‘아프지는 않는지?’ 근심걱정이 태산 같았다. 아이의 양육비와 학잡비는 제때에 꼭꼭 부쳐보냈다. ‘손자’가 보고 싶을 때면 유치원 때 찍은 사진을 꺼내보군 하였다. ‘손자’는 우리 기대에 어긋나지 않고 공부를 잘해 소학교 졸업시험에서 전교 1등 해 표창 받았고 세번이나 ‘꼬마박사’칭호를 받았으며 가슴에 훈장도 달았다. 그리고 연변소년궁에서 펼친 전 주 소학생수학경연에서 성적이 출중하여 표창까지 받았다. 그런데 초중때부터는 생활비와 학잡비가 한달에 3,000원 이상 들었다. 초중에 진학해서부터는 숙사생활을 할 수 있지만 ‘손자’가 꺼려하니 원래 있던 집에 그냥 있으면서 학교를 다니기로 했다.

‘손자’는 출중한 성적으로 초중을 졸업하였을 뿐만 아니라 체육 특장도 있어 10여차례나 금메달, 은메달을 목에 걸어 인기인물로 되기도 했다. 특히 축구를 잘 차는 우리 ‘손자’다. 뿐만 아니라 공청단사업도 적극 참가하여 공청단 연변조선족자치주 우수단원으로 표창받기도 했다.

지금 연변1중 3학년 학생인 우리 ‘손자’는 올해 대학 시험을 치르게 된다. 우리 량주는 매일 대학교 입학시험을 잘 치를 것을 바라며 두손모아 빌고 또 빈다. 그간 우리 량주가 몇년간 외국에서 벌어온 돈도 인제는 굽이 보인다. 지난 학기에는 생활비가 부족하여 할 수 없이 고민끝에 외국 로무를 떠난 딸과 손녀로부터 만원 돈을 지원받고 학교 도움도 받았다.

나이 들어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남편은 하루 건너 병원으로 드나들지만 ‘손자’의 미래를 위하여 비용을 아끼면서도 마음은 뿌듯하다. 방학때면 꼭꼭 찾아오는 ‘손자’덕에 우리 내외는 항상 얼굴에 웃음을 담고 만년을 행복하게 보내고 있다. ‘손자’가 “할아버지, 할머니”하고 부를 때면 우리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처럼 힘이 나고 기쁘다.

20년전에 돈을 벌겠노라고 시작한 것이 지금은 번 돈을 밀어넣으면서 ‘손자’ 뒤바라지를 하는 나와 남편은 70대 중반이 되였다. 이웃에서 훌륭한 사람들이라고 탄복하기도 한다. 사실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니다. 누구든 그런 일에 봉착하면 의례히 그렇게 할 것이다. 우리 ‘손자’가 착하고 밝게 자라주어서 고맙다. 앞으로 나라에 쓸모 있는 인재가 되였으면 하는 것이 우리의 바램일 뿐이다. / 김숙자 구술 김삼철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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