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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 29] 사명

편집/기자: [ 홍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9-12-19 14:49:26 ] 클릭: [ ]

얼마전에 지인들과 함께 내몽골로 려행을 다녀왔다. 내가 살던 곳,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하는 일은 늘 즐거움과 설레임이 함께 하는 법이다.

우리는 꼬박 하루동안 기차를 타고 내몽골자치구의 훌룬부이르에 도착하였다. 훌룬부이르는 내몽골자치구의 동북부에 위치한 도시로서 경내에 있는 훌룬호와 부이르호로 인해 얻게 된 지명이라고 한다. 우리는 하이랄시 역에 내려 칭키스칸광장으로 갔다. 몽골제국을 통일하고 유럽대륙까지 정복했던 걸출한 정치가, 군사가인 칭키스칸의 이름을 따서 세워진 내몽골자치구에서 가장 큰 광장을 대충 둘러보고 우리는 뻐스를 타고 만주리로 향했다.

 내몽골 초원에서의 필자(좌)

우리가 도착한 날은 날씨도 좋아 차창 밖으로 맑고 푸른 하늘이 기분을 상쾌하게 해주었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은 늘 꿈 꿔오던 것과는 조금의 차이가 있었지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힐링이 되는 느낌이였다. 나무와 바위는 거의 볼 수가 없었고 가도 가도 풀밭이였다. 이따금 소와 양떼가 풀을 뜯고 말들이 한가로이 물을 마시는 흔한 초원의 풍경을 볼 수 있었다. 하늘도 우리가 늘 보던 하늘이고 풀도 늘 보던 풀이지만 왠지 초원의 하늘은 더욱 높아보이고 더욱 푸르러보였으며 초원의 풀 한포기에도 색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졌다.

“여러분, 아름다운 초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홀린 듯 바깥 경치를 바라보는데 가이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늘 그렇듯 려행 길에서 훌륭하고 자질이 높은 가이드를 만나면 력사 공부도 하고 자칫 힘든 려행 길이 지루하지 않게 되는 행운을 누리게 된다.

“저는 쫭쫭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의 왕림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여러분들께 아름다운 초원을 구석구석 잘 소개해 드리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번 려행단은 연변에서 오신 ‘선족(鲜族)’분들이 많습니다. ‘선족’ 들은 노래 잘 부르고 춤 잘 추며 몽골족과 매우 비슷한 면이 많죠.”

“‘선족?’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가이드는 아마도 이번 려행객중에 조선족이 많다는 것을 알고 친근감을 나타내려고 했나본다. 하지만 그가 무심결에 내뱉은 ‘선족’이란 단어는 나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여보, 방금 저 가이드가 ‘선족’이라고 그랬죠?”

나는 조금 화가 나서 저도 몰래 언성이 높아졌다.

“좀 가만 있소. 사람도 많은데.”

흥분한 나를 남편이 말렸다. 그러던 차에 가이드가 인원체크를 하느라 우리가 앉은 쪽으로 다가왔다.

“이봐요. 가이드처녀, 우린 ‘선족’이 아니라 ‘조선족’이라오. ‘선족’이란 말은 일제가 조선족을 경멸하고 비하하기 위해 만들어낸 말이니 이후에도 ‘조선족’이라고 불러줬으면 좋겠소.”

우리 일행중의 한분이 가이드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 낮지만 근엄한 목소리로 가이드에게 정중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아, 그렇습니까?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음부터 꼭 주의를 돌릴게요.”

가이드는 약간 당황했지만 이내 머리를 끄덕였다.

“여보, 그런 말을 왜 합니까? 가이드가 얼마나 창피하겠습니까?”

지인분의 안해가 남편을 나무랐다.

“언니, 아저씨가 말씀하시지 않았더라면 제가 했을 거예요.”

“맞아, 나도 말하려고 했어.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우리 조선족을 ‘선족’으로 잘못 부르고 있잖소.”

“아저씨, 말씀 잘하셨어요. 우리가 잘못된 호칭을 바로 잡아줘야 해요.”

“난 오늘 ‘선족’이란 말이 우리 민족을 비하하는 말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소.”

“일제강점기 시절에 ‘아침의 나라’라는 뜻을 나타내는 ‘조’를 빼고 ‘선족’이라고 불렀대요.”

“그렇구나. 앞으로 정확한 호칭을 쓰도록 우리가 많이 알려야겠어.”

“그럼요. 그게 우리 교육자들이 해야 할 일인 것 같아요.”

동행했던 분들이 대부분 교육계통에서 일하시는 분들이라 너도나도 한마디씩 했다.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우리 민족의 정확한 호칭을 모르고 있었다. 동북3성을 벗어나 조선족이 적은 지역에 가면 우리 조선족을 ‘선족(鲜族)’, ‘조족(朝族)’이라고 부르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많이 보게 된다. 여러 TV 프로그람에서도 ‘선족’이라는 호칭이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으며 심지어 우리 조선족 조차도 그 유래를 모른 채 ‘선족’이 조선족의 략칭인 줄로만 알고 스스럼없이 쓰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호칭에 대한 문제 뿐이 아니라 잘못된 우리 말 간판 글과 잘못된 우리 말 사용법들이 난무하다.

한번은 지인이 화장품을 선물해 줬는데 제멋대로 우리 글로 번역을 해서 도무지 뜻을 알 수가 없었다. 이런 현상은 비일비재하다. 도로표지판까지도 엉터리다. 입구를 구입으로, 장춘을 춘장으로 왕청을 욍청으로 표시한다. 틀린 표기법들이 난무하는 걸 보면 가슴이 답답하다. 조선족이 집결해 사는 연변에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외국에서 오시는 동포분들도 타지방에 살고 있는 우리 민족들도 고향에 돌아오면 간판 제일 우에 우리 글이 제일 먼저 씌여있는 걸 보면서 친근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말에 대한 정확한 규제와 점검이 따라가지 못해 이런 황당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조선민족이다. 우리의 선조들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우리 말과 글을 지켜나가야 하며 우리의 자랑스러운 이름도 지켜나가야 한다.

이번 행차는 소중한 것들을 지키는데 우리가 앞장서야 하고 우리 후대들에게 자랑스러운 우리 민족의 이름과 말과 글을 물려줘야 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하는 려행 길이였다. / 조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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