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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와룡산의 소나무》의 편찬과 그 의미

편집/기자: [ 심영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9-12-04 09:25:48 ] 클릭: [ ]

 연변대학 조선언어문학학부 명사들의 이야기를 엮은 《와룡산의 소나무》 

올해는 연변대학 창립 70주년이 되는 해이자 연변대학의 기둥학과인 조문학부의 개설 7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이러한 때에 《와룡산의 소나무: 연변대학 조문학부 명사들의 이야기》라는 자그마한 책자를 내게 되였다.

장장 70년 세월, 조문학부가 있었기에 이민사 150년을 기록하는 이 시점에서도 우리 조선족형제들은 자기의 말과 글을 알고 온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문화민족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오봉협과 김창걸을 비롯한 제1대 교수진, 정판룡과 최윤갑을 비롯한 제2대 교수진, 김병민과 전학석을 비롯한 제3대 교수진, 그리고 오늘의 제4대 교수진이 대를 이어 끈질기게 노력, 분투한 끝에 조문학부는 2003년에 국가 중점 학과로, 2018년에 세계 일류 학과 건설 프로젝트에 선정되는 쾌거를 일구어냈다.

청화대학의 영원한 교장 매이기(梅貽琦)선생은 “대학이란 무엇인가? 고층빌딩이 많아서 대학인 게 아니다. 대사(大師)들이 계시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했다. 천고의 금언이다. 로마군사에 의해‘돌 우에 돌이 없을 정도'로 풍비박산이 난 예루살렘 근교의 야부네학교에 요하난 벤 자카이라는 랍비가 있었기에 유태의 력사와 전통을 지켜내고 후세들을 키워낼 수 있었다. 일본 야마구치현의 자그마한 쇼카손주쿠(松下村塾)에 요시다 쇼인(吉田松陰)과 같은 걸출한 교육자가 있었기에 일본의 근대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인물들을 키워낼 수 있었다. 우리에게도 이런 큰 스승들이 계셨다. 근대의 려명기에 서전의숙을 개설한 리상설선생, “나의 행동이 나의 유언”이라고 하면서 지행합일의 모범을 보여준 명동학교 교장 김약연선생, 그리고 연변대학 초대 교장 림민호선생과‘민중의 벗’정판룡선생이라 하겠다.

이 책에서는 작고한 교수들의 일대기만 간략하게 다루었는데 이들의 미덕과 기여를 아래의 네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첫째로 민족교육에 대한 불같은 사명감과 책임감이다. 김창걸선생은 재만조선인문단의 대표적인 작가였지만 조문학부 교수로 영입된 후 후학들을 가르치기 위해 소설 창작을 접고 무려 다섯개 학과목이나 가르쳤다. 초창기 연변대학의 시설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고 이들 교수들은 대체로 가정부담이 많고 째지게 가난했다. 하지만 이들은 단 한시간도 강의시간을 빼먹을 줄 몰랐고 밤낮 독서와 연구의 삼매경에 빠져있었다. 특히 현룡순선생은 조문학부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안고 자전거를 타고 수많은 선배, 동료, 제자들을 취재해 《겨레의 넋을 지켜》라는 조문학부사를 펴냄으로서 모교 사랑, 학부 사랑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둘째로 목숨을 걸고 진리를 추구하고 학문을 연찬함으로써 조문학부의 교육철학을 정립했다. 오봉협선생은 연변대학 최초의 론문 〈훈민정음의 하도기원설>을 내놓았고 최윤갑선생은‘문혁'시기 군대표의 무지와 횡포와 맞서 끝까지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이 창제했음을 강조했다. 정판룡선생은 조선족의 이중정체성을 분명히 밝히고 조선족은 자기의 민족적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주류사회에 적극 진출해 주류사회에 도움이 되는 존재로, 존경을 받는 존재로 되여야 한다고 하였다. 또한 연변의 지정학적 위치가 가지는 의미와 가치를 발굴하고 조선—한국학을 중심으로 하는 인재 양성과 과학연구의 특성화로 승부수를 던졌다. 이를테면 북경대학의 계선림 같은 어른을 보고 연변대학의 대부분 교수들이 조선족이니 조선—한국 언어나 문학을 강의하고 연구할 경우에 영문학과에서 원어민 교사를 모시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씀을 드렸다. 이에 계선림교수는 “연변대학은 조선—한국 언어와 문학을 연구할 수 있는 특별히 좋은 조건(得天獨厚的條件)을 갖고 있다”고 긍정했고 이로써 조문학부는 1986년에 조선—한국 언어문학 박사학위 수여권을 갖게 되였다.

셋째로 제자에 대한 사랑과 스승에 대한 존경이다. 사제애(師弟愛), 즉 스승과 제자들 사이에 오가는 사랑과 존경은 조문학부의 가장 아름다운 전통중의 하나이다. 조문학부의 스승들은 제자들을 사랑과 정성으로 가르쳤고 제자들은 스승을 따르고 존경했다. 스승의 따뜻한 애(愛)와 제자의 돈독한 경(敬)이 합쳐져 진정한 교육을 일구어냈다. 스승님들은 제자에게 도와 진리를 전하고 학업을 전수하며 사리에 대한 의혹을 풀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제자를 친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했다. 김병민은 학생 시절 좀 허약한 편이였는데 김동익선생은 시장에서 소의 염통을 사다가 보이라칸에 들어가 땀을 철철 흘리면서 구워서 먹였다. 김영덕선생은 제자 박정양의 결혼식 후에 학부의 여러 선생들에게 귀한 모태주 두병을 내놓고 제자 대신 인사를 했다. 김해수교수 역시 제자 김중기의 결혼잔치를 차려주었다. 스승의 따뜻한 사랑이 있으니 스승에 대한 제자의 돈독한 존경이 따르기 마련이다. 자고로 군사부일체요, 제자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고 했다. 팔순의 김해수선생은 지금도 스승인 최윤갑선생의 앞에서는 고개를 돌리고 담배를 피운다. 또한 조문학부 선생들은 자기의 스승과 은사를 극진히 모시는데 이는 하나의 전통으로 자리잡았다. 조문학부 선생들이 주축이 되여 세운 림민호동상, 리욱시비, 김창걸문학비, 그리고 정판룡문학비가 이를 말해준다.

넷째로 다양한 개성을 존중하고 안아주는 화이부동의 조직구조와 목표 달성을 위한 팀워크의 강한 결속력과 추진력이다. 조문학부에서는 키가 크든 작든, 성미가 느리든 급하든, 두주불사의 술고래든 술 한잔 못하는 샌님이든 애오라지 성품이 어질고‘18반무예’중에 한두가지를 정통하기만 하면 인재로 알아주고 안아주었다.‘작은 거인 사인방'이라 할 수 있는 김영덕, 김병수, 허룡구, 리해산 선생은 키는 작지만 모두 한학과 중국고전문학에 조예가 깊고 중한 번역에서 일가를 이루었다. 서일권 학부장은 중년에 상처하고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시도 때도 없이 술타령을 불렀지만 솔선수범의 강한 책임감과 추진력으로 교수 배치를 면밀하게 짰고 자습대학을 경영해 조문학부의 초요사회(小康社會)를 앞당겨 일구어냈다.

아놀드 토인비는 력사와 문화는 인간과 인간사회의 자유의지와 실천적인 행위에 의해 형성, 발전된다고 하면서 인류의 력사는 도전과 응전의 력사라고 했다. 말하자면 운명은 인간에게 다음 단계로 올라가라고 도전장을 던진다. 그 단계에 이르면 다른 도전이 와서 또 다음 단계로 올라가게 한다. 그렇게 죽는 순간까지 인간은 도전을 받고 살아간다. 하지만 개인은 물론이요 조직체와 문명권도 침체되고 타락하면 망한다.

우리 은사님들이 보여준 상술한 미덕과 조문학부의 전통은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원동력으로 되여왔으며 지금까지 조문학부를 불패의 기반에 서게 했다. 하지만 강산은 얻기 쉬우나 지키기는 어려운 법(打江山易,守江山難)이다. 현재 조문학부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두만강개발은 진행중에 있고 우리는 여전히 주변부에 처해있으며 개방도가 낮은 ‘죽음의 변계'와 맞닿아있다. 대학들간의 인재 쟁탈전에 밀려 우리는 적잖은 우수한 인력들을 내주고 있으며 젊은 인력과 풍부한 경제적 자원을 가지고 급성장을 하고 있는 여러 대학 한국어학과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더우기 대학들간의 경쟁으로 말미암아 우수한 고급중학교 졸업생들을 받을 수 없고 그 결과 미래의 우수한 교수진을 확보할 수 없게 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문학부의 전체 교수들은 일심동체가 되여 높푸른 리상과 비전을 제시하고 자신감과 열정을 가져야 한다. 스승님들이 일구어낸 전통을 살려 주변의 도전에 슬기롭게 응전하면서 새로운 도약과 발전을 가져와야 한다. 사무엘 울만의 〈청춘〉이라는 시가 떠오른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을 뜻하나니

장미빛 볼, 붉은 입술, 부드러운 무릎이 아니라

풍부한 상상력과 왕성한 감수성과 의지력

그리고 인생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신선함을 뜻하나니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

그 탁월한 정신력을 뜻하나니

때로는 스무살 청년보다 예순살 로인이 더 청춘일 수 있네

……

이 책은 김병민 등 교수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조문학부에서 기획하고 출간했다. 이 책에는 조문학부에 몸 담고 열과 성을 다해 일하다가 승천하신 명사 30명을 모셨다. 70년 세월 많은 자료들이 인멸된 상황에서 집필자들은 그들의 가족과 제자들을 찾고 서류자료들을 깊이 발굴해 ‘오직 진실’의 원칙에 비추어 그들의 일대기를 집필했다. 김병민교수는 여러 가지 중요한 일들을 접어놓고 서일권, 김현근 교수의 일대기를 처음으로 집필했고 박정양교수는 투병중이지만 흔쾌히 김영덕교수의 일대기를 집필했으며 류은종교수는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김상원교수의 일대기를 집필했다. 김병활, 방금순, 우상렬 교수는 젊은 교수들이 자료가 없다고 손을 들고 나앉은 마당에 김제봉, 김종수, 현룡순, 김병수, 박상봉 교수의 일대기를 완수했다.

특히 연변인민출판사와 조문학부 내지 연변대학은 오랜 세월 동안 조선족 문화의 창달과 발전을 위해 손 잡고 일해온 의좋은 파트너요, 운명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량문화 사장을 비롯한 출판사 지도부에서는 책의 출간에 전폭적인 성원과 지지를 주었다. 특히 문예편집실 채운산 주임과 강정숙, 김정옥, 정려란 편집이 알뜰하게 편집을 해주었다.

이 자그마한 책자가 조문학부의 새로운 도약과 발전을 위한 하나의 디딤돌로 되리라 생각하면서 집필해주신 여러분과 연변인민출판사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림과 아울러 젊은 교원과 학생 제군들, 학부모님들께서도 일독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

/김호웅(연변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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