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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17] 선택

편집/기자: [ 홍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9-08-16 16:52:17 ] 클릭: [ ]

[수기 17] 선택

 

일본 친구와 함께 있는 필자 조려화(오른쪽)

“나도 일본에 가고 싶어.”

22년 만에 만난 친구에게 용기 내여 말했다. 늘 언니처럼 자상히 챙겨주던 친구였다.

“아니, 가지 말어.”

그녀는 낮지만 단호한 어조로 어렵게 꺼낸 내 말을 단칼에 잘라버렸다.

“돈을 벌고 싶어.”

“지금도 잘 지내는데 뭐가 부족해서 돈을 더 벌겠다는 거니?”

“얼마전에 동창들을 만났는데 다들 나보다 잘살고 있더라. 국장인 친구도 있고 돈 잘 버는 친구들도 있더라. 게다가 교도주임에 교장까지 하고 있는데 나만 바보처럼 아무 것도 해놓은 게 없어.”

“왜 그렇게 생각하니? 너도 충분히 멋진 사람인데.”

“남들보다 번듯하게 살려고 마음 먹었는데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도록 그 ‘번듯한 날’은 오지 않는구나.”

“번듯하게 산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니?”

“이쁜 집, 멋진 차, 경제상의 자유… 돈이 많아서 나쁠 게 뭐니?”

속으로는 돈을 많이 벌었으니 배부른 소리 한다고 아니꼬운 생각이 들기까지 하였다. 친구가 돈을 많이 벌어서 잘살아보겠다는데 그렇게 매정하게 거절할 줄이야!

“내 얘기 들어봐.”

그녀는 모닝커피를 진하게 타서 한모금 마시더니 눈웃음을 지으며 철없는 동생 바라보듯 나를 바라보았다.

“다들 잘사는 것 같아보이던? ”

“응, 나만 빼고 다들 잘살아보였어.”

“몇십년 만에 만났는데 그럼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 보이겠니?”

“그거야…”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동창들을 만난 후로 어깨가 축 늘어져지내고 있던 나였다. 모두들 멋있게 살고 있었다. 외국에서, 대도시에서, 높은 직위에서, 돈도 많이 벌고 잘살고 있었다. 늘어나는 새치와 주름살을 동반한 우울한 심정이 동창들을 만나고 난 후로 더욱 심해져갔다.

급기야 짜증이 많아지고 시도 때도 없이 화가 나는 최악의 상황까지 오게 되였다. 이 나이 되도록 아무 것도 이뤄낸 것이 없는 나 자신이 그저 한심하고 불쌍해보였다.

“나도 동창들 소식 들어서 알고 있다. 직급이 높은 친구들도 있고 돈 많이 번 친구들도 있다. 사실이다. 하지만 다들 아무런 근심걱정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 같니?”

“……”

“송매는 처음 남편과 리혼하고 혼자 애 데리고 십년이나 고생했다. 지금 남편과는 재혼인데 너도 알다 싶이 재혼가정이 풍파가 없이 조용하니?”

“그리고 심철이, 돈 많이 버는 사장님이지? 그런데 돈을 엄청 들여서 애를 외국에 류학 보냈더니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고 중도에 포기하고 돌아왔다. 얼마나 속을 썩였는지 모른다.”

“영희는 외국의 큰 회사에서 근무한다. 아주 잘 나가지. 그런데 리혼하고 애도 없이 혼자 산다. 부족한 게 없지만 늘 외롭단다.”

“너는 작은 도시에서 살지만 집도 있고 차도 있고 일정한 수입도 있잖니? 남편도 훌륭하고 번듯한 직장이 있잖아. 주말이면 시골에 내려가 터 밭을 가꾸고 함께 놀러도 다니고 얼마나 좋니? 속 썩이는 일이 하나도 없는데 뭐가 불만인거니? 돈만 많으면 행복할 것 같니?”

그녀는 철학자라도 된 것 같았다. 모르는 건 아니지만 잘 살고 싶은 건 인간의 욕망인데 누가 감히 돌을 던지랴.

“도리를 모르는 게 아니야. 그렇지만 더 잘살고 싶어.”

“그렇다면 넌 반드시 다른 걸 잃게 될거야.”

“무슨 소리야?”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하고 살라는 말 알지? 그런데 그보다 더 많은 것을 바라고 쫓아가게 되면 결국 다른 것을 잃게 돼.”

그녀는 식어버린 커피잔에 다시 커피분말을 넣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나 일본에 나가서 돈도 진짜 많이 벌었다. 고향에 있었으면 한평생 구경도 못했을 정도로 말이다. 돈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걸 볼 때마다 그렇게 기분 좋더라. 몇년만 벌고 돌아오려고 했는데 돈 버는 재미에 자꾸 미루게 되더라.”

그녀는 잠간 말을 멈췄다. 나는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보았다.

“한해, 두해 미루다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다. 남편이 불시에 돌아갔어.”

나도 얼핏 들어서 알고 있었다.

“내 욕심 때문이였지. 그 사람은 기약 없이 날 기다리다가 허무하게 돌아가셨어. 난 이제 돈을 벌어도 재미가 없고 삶의 목표를 잃었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아끼고 사랑해주던 사람이 곁에 없어. 행복한 일이 있어도 같이 기뻐해줄 사람도 없고 딸은 결혼할 때 식장에 함께 들어갈 아빠를 잃었단다. 네 눈에는 내가 돈을 많이 벌어 행복해보이지? 아니야, 나는 조금도 행복하지 않아.”

마냥 돈을 많이 벌어 행복하게 지내고 있을 줄만 알았었는데 그녀는 가슴에 슬픔을 담고 살고 있었다.

“너무 많은 걸 바라지 말어. 너는 이미 넘치게 많이 가졌어. 널 부러워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니? 그러니 다시는 외국 나간다 어쩐다 하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어. 나중에 나처럼 땅을 치며 후회하게 돼.”

그녀가 이야기하는 동안 나는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을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온 내 자신이 부끄러워났다. 내가 원하는 삶이 도대체 무엇인지, 내가 가진 행복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것인지 곰곰히 생각해본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무작정 타인의 삶만 들여다보고 비교하고 자신을 비참하게 만든 것은 나였다.

“내 말 들어. 널 사랑해주는 남편과 널 행복하게 해주는 모든 것들에 감사하며 살어. 네가 더욱 행복해지는 일은 그 모든 것들을 사랑하는 거야.”

행복지침서의 한구절 같은 그녀의 말을 들으며 나는 갑자기 남편이 보고 싶어졌다.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수많은 사람들과 수많은 일들이 떠오르며 저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졌다. 답은 이미 정해졌다. / 조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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