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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추억 91] 유 정 세 월

편집/기자: [ 김정함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8-07-06 13:35:39 ] 클릭: [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19)

▩리오로(장춘)

유정세월에 보낸 고중시절 류수촌 동창들과 함께. 뒤줄 중간이 필자 리오로.

교하시 로야령 상봉에다 뿌리박고 서쪽으로 흘러내리면서 수천쌍 옥답을 적셔주고 수만명 생령들의 생명수가 되여 흘러흐르다 송화강수와 합수하는 강, 이 강이 바로 망우하(牤牛河)이다

내가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을 보낸 고향이 이 망우하 중류에 있는 류수촌(柳树村)이다.

이 류수촌은 원래 영길현 강밀봉구에 속했는데 지금은 길림시 룡담구 강북향에 속해있다.

우리 조선족들은 일찍 일제 략탈에 살 수 없어 조선에서 이곳으로 와서 버들방천을 논으로 개간하고 마을을 세웠다. 버들이 많다고 마을 이름을 류수촌이라 지었단다. 처음은 완전조선족마을이였지만 후에 두부방, 마차부, 간이매점 등 한족 몇집이 들어오면서 혼합마을이 되였다.

나는 아홉살 나던 해인 1943년 12월에 조선에서 이곳 류수촌에 왔다. 그 때 이미 마을이 있었고 일본소학교도 있었다. 그러니 이 마을이 생긴 것은 썩 이른 시기였을 것이다. 조선말 한마디만 해도 자대로 종아리매를 맞았다. 그런 학교를 반년 다니다 광복이 되여 일본인 선생들은 다 가버리고 마을의 유지들이 아이들을 모아놓고 교과서도 없는 조선말 수업을 했다. 가갸거겨도 가르치고 한문도 가르치고 수신이라는 과목으로 도덕상식 같은 걸 배워줬다.

이 학교가 조선어로 강의하는 학교가 되고 정부에서는 연변에서 정식교원을 두분이나 청해왔다. 그러나 4학년까지 이 학교에서 공부하고 5학년부터는 리가툰 소학교나 강밀봉소학교에 다녀야 했다.

마을 복판에 있는 이 학교는 마을 사람들의 휴식터이기도 했다. 학교주위에 느릅나무, 백양나무들이 무성해서 한여름철 그늘 좋은 휴식터가 됐다.

농한기에는 돼지 오줌깨에다 바람을 불어넣고 가는 짚 새끼로 둘둘 감아서 축구공으로 찼다. 방학하면 학교마당에서 자치기도 치고 씨름도 하고 농악무도 추고 나무 아래 그늘에서 관악대도 연주를 했다. 학교운동장은 마을 사람들의 아주 즐거운 놀이터이고 휴식터였다.

그 시절 물질생활은 궁핍했지만 온 마을이 한집처럼 화기애애하게 서로 도우며 정답게 살았다.

일년에 한번씩 강밀봉구에서 체육운동대회를 하면 그 날은 온 마을의 잔치날이다. 남녀로소를 막론하고 걸을 수 있는 사람은 다 운동대회로 간다.

마을 부녀회에서는 운동대회에 가는 마을 사람들이 다 먹을 수 있는 점심 음식을 준비해가지고 소수레에다 싣고 운동대회로 간다.

1949년 중국신민주주의청년단 강밀봉 리가촌 제2지부 설립 기념. 뒤줄 오른쪽 첫 사람이 필자

우리 마을은 주민 호수가 51가구인데 중학생수는 54명이나 되였다. 그러다 보니 강밀봉 체육대회에서 우리 마을이 축구, 배구, 륙상에서 모든 상을 싹쓸이했다. 나도 여러 항목에서 일등을 하여 벼가을 낫만 다섯자루를 탔다. 그 외 빨래비누, 세수비누, 치약 같은 상을 많이 타서 상 못 탄 분들에게 나눠주었다. 길림시 중학교 운동대회에서도 100메터 1등을 하는 나인지라 상을 많이 탈 수 밖에…

운동대회 총결이 끝나면 우리 마을 관악기가 울리고 춤판이 벌어진다.

강밀봉에서 우리 마을까지는 15리 길이다. 선수들을 소수레에다 태우고 어른들은 풍악을 울리고 춤을 추며 마을까지 온다.

그 날 저녁은 학교 운동장에 온 마을 분들이 다 모여 밤새기를 하며 춤추고 논다. 먹는 것이라야 기껏해서 막걸리, 김치, 깍뚜기 뿐이였지만 그렇게 즐겁게 그렇게 정답게 그렇게 흥겹게 춤추고 노래하며 밤을 새웠다.

망우하는 물이 맑기로 가재가 사는 일급수였다.

물고기로는 메기, 붕어, 잉어, 야레, 버들치, 장어… 없는 고기가 없고 꼬마 녀자애들도 강에 들어가 메기를 잡는 맑은 강이였다.

물고기는 봄이면 새끼 까러 물 우로 올라오고 가을에는 과동 준비로 깊은 물속으로 내려간다.

내가 고중 1학년에 다니던 방학 때다. 어른들은 강물을 자갈로 막고 발을 놓아 고기를 잡았다. 나와 지윤이더러 밤에 강에 나가 발에 걸린 고기를 건지라고 했다.

모기에 물려가며 저녁 내내 발에 걸린 물고기를 물초롱에다 주어담았는데 팔뚝 같은 메기, 어른 뼘 한뼘이 넘는 붕어… 없는 것이 없었다. 아침에 보니 물고기가 네바께쯔나 되였다. 우리는 긴 막대기로 묵직한 바게쯔를 꿰여 메고 마을로 들어왔다.

생산대 대장이 집집마다 다니며 잡아온 물고기를 똑같이 나누어준다.

그 물고기에 깃든 인정, 대장도 고기 한마리 더 안 가져가던 사리사욕이 없는 유정의 세월, 한집처럼 서로 도우며 뭉쳐살던 유정의 세월, 호박을 하나 삶아도 서로 나누어먹으며 살던 유정의 세월, 이제는 어디로 갔나. 이렇게 흥성하고 정 많던 마을이 지금은 세호에 다섯사람만 남았다. 적막강산이 되고 말았다.

아-아-! 유정세월이 그립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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