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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버님의 따뜻한 사랑 릴레이

편집/기자: [ 신정자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7-04-10 20:59:18 ] 클릭: [ ]

23년 전 청명절날은 바로 시아버님이 돌아가신 날이다. 나는 이른 아침부터 시아버님의 산소에 갖고 갈 음식을 장만하느라 주방에서 서둘렀다. 우리 부부는 정성스레 만든 차례음식이며 생생한 과일들을 가방에 차곡차곡 넣고 시아버님의 산소-화룡시 룡수 룡호 뒤산으로 향했다.

우리 부부는 시아버님의 묘지에 가토하고 음식을 차린 후 절을 올렸다. 그 순간, 시아버님의 따뜻한 사랑이 온몸으로 느껴지면서 눈물이 주르르 두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우리가 결혼을 하자 시아버님은 내가 화룡시에서 룡수 룡호촌으로, 가난한 농촌 살림도 마다하지 않고 시집왔다고 무척 고마와하시면서 우리들의 살림에 하나라도 보탬이 되여주시느라 안깐 노력을 다하셨다.

시아버님은 우리들의 출근시간이 지나면 어디 손댈 곳이 없나 해서 연장을 들고 우리 집에 오셔서는 감쪽같이 일해놓고 가군 했었다. 겨울이면 또 자신들이 아껴쓰며 한푼두푼 모은 돈으로 우리더러 석탄을 사때라며 보태주시군 하셨다. 그 정성도 모자라 시아버님은 젊은이의 집엔 텔레비죤이 있어야 한다며 “래년 가을엔 쌀을 팔아서 꼭 사주마.” 하고 스스로 약속하셨다.

하지만 그해 따라 기막힌 흉년이 들어 두쌍이나 되는 밭에서 겨우 식량만 해결할 정도였을줄이야.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며 시아버님은 “새해 농사를 지으면 꼭 사주마.” 하고 재약속하시면서 이듬해 이른 봄부터 농사차비에 서두르셨다. “올해 가을엔 애들에게 꼭 텔레비죤을 사줘야 하는데…” 시아버님은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자식사랑을 잊지 않으셨다. 하지만 아버님은 끝내 병마를 이겨내지 못하고 그토록 바라던 손군도 안아보시지 못한 채 저세상으로 가셨다. 그때가 바로 23년 전 청명절날이다.

시아버님의 며느리로 일년, 나는 그동안 받기만 하고 보답해드릴 기회도 없이 떠나가신 아버님께 죄송스럽기만 했다. 나는 시아버님의 따뜻한 사랑의 계주봉을 이어받아 시어머님께 배로 정성을 쏟으려고 결심했다. 그동안 나는 애 둘을 키우느라 경제상황이 푼푼친 못했지만 시어머님의 생활비는 달마다 꼭꼭 드렸고 조금이라도 편찮으신 기미가 보이면 인차 병원에 모시고 가 검진을 받게 했으며 친척들의 대소사 부조도 도맡아 해드렸다.

나는 나 자신도 소중하지만 나와 함께 하는 가족은 더욱 소중하다는 마음가짐으로 항상 더 많이 베풀기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항상 웃음과 행복이 넘치는 우리 가정을 보면 나는 마음의 부자가 된 듯 뿌듯해난다.

나는 시아버님께 공손히 절을 올리며 약속했다. "아버님, 이젠 우리 살림 걱정은 마시고 저세상에서 이 며느리를 응원해주십시오. 아버님의 따뜻한 사랑 릴레이는 대대손손 이어갈 것입니다."

/지송옥(연길시새싹유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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