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닫기

[두만강칼럼]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

편집/기자: [ 리영애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2-06-02 05:57:40 ] 클릭: [ ]

 
로은화
 

반년전에 반포된 나라의 ‘두가지 부담 감소’정책에는‘학교’와 ‘교외양성기구’라는 골자가 자주 나온다. 여기에서 우리는 교외양성기구를 대대적으로 정돈하고 학생들이 진정 학교에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규범화하려는 나라의 시도를 엿볼 수 있다.

교외양성기구에 발이 꽁꽁 묶여있던 아이들을 다시 교정으로 돌려 보내야 한다는 의도로 시작된‘두가지 부담 감소’정책은 교육의 본질에 대해 분명하게 천명했다. 필자는 이러한 정책이 뿌리를 내리고 든든히 자리를 잡자면 반드시 교원들의 책임감과 능력을 끌어 올리는 데 착안점을 두어야 한다고 본다.

학생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저 실시된 이번 정책이 아이들한테는 하나의 덜기 계산식으로 그 의미를 간추릴 수 있겠지만 교원들로 놓고 보면‘가감승제’가 모두 가미된 응용문제나 다름 없다.

교육의 발전은 교원을 떠나 운운할 수 없다. ‘두 가지 부담 감소’정책으로 교원들의 부담이 어느 정도 늘어난 것만은 엄연한 사실이다.

아이들의 수면시간을 보장하려는 취지하에 허다한 지방에서는 중소학생들의 등교시간을 뒤로 미루었다. 간혹 일찍 등교하는 아이들을 텅 빈 교실에 홀로 내버려둘 수 없으니 교원들의 아침시간 역시 여느 학부모님들과 마찬가지로 전쟁터나 다름없다.

어디 그 뿐이랴. 방과 후 수업이 추가되면서 교원들의 근무시간도 따라서 늘어나게 되였는바 교원들은 방과 후 시간대에 숙제를 지도하는 한편 학생들에게 알맞춤한 활동도 다양하게 조직해야 한다. 게다가 교수안을 짜고 숙제를 검사하고 학부모들과 소통을 하다 보면 거의 12시간 이상을 학교에서 팽이처럼 돌아쳐야만 한다.

그러나 학생들의 부담을 덜어 준다는 건 그 부담을 교원들에게 넘긴다는 의미가 절대 아니다. ‘부담 감소’ 정책의 취지와도 어긋난다. 교육부 관련 부문에서도 체제를 부단히 보완하여 교원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사업이 실제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독촉할 것이라고 밝혔다.

근년래, 교외양성기구가 아이들이 진정 교육을 받아야 할 교정을 제치고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창궐하게 날뛰여 주객이 뒤바뀐 듯한 비정상적인 판도가 이뤄지고 있는데 이는 공영학교에서 자기 책임을 다하지 못한 과실로 인해 초래된 비정상적인 현상이다.

집에서 숙제를 하다가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학교 담당선생님보다는 교외양성기구 선생님에게 먼저 문자를 보내는 데 길들여진 학생들이 수두룩하다.

이러한 시점에서‘두가지 부담 감소’정책은 학교의 교육 교수질을 부단히 높이고 보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숙제를 포치해야 한다고 명확하게 제기함으로써 학생들이 진정 교정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포석을 깔아주었다.

가급적 학생들이 그 날 배운 내용들을 소화할 수 있게끔 이끌어주고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먼저 담당선생님을 찾을 수 있도록 교원과 학생들 사이의 믿음의 고리를 엮어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교원들이 꾸준히 교수실천을 분석하고 발전방향을 모색하는 방법으로 업무능력을 부단히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다. 또한 수업방식을 최적화하고 다양한 교육 수업활동을 탐색하여 학생과 학부모의 다원화 학습수요를 만족시켜야 한다.

더불어 량호한 교육생태환경을 구축하기 위해서는‘시험성적’으로 교원을 평가하는 구조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고 본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 아이들마다 자신만의 개성을 유지하면서 진정 자신감 있는 아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도 교원 의무중의 하나가 아닌가 싶다.

물론 이러한 ‘성적유일론’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학교에서도 교원을 평가함에 있어서 다각적인 척도가 있어야 한다. 아이들의 전면적인 발전을 힘 있게 지지한다 하면서도 우수교원을 선정할 때 학생들의 성적으로 평가하는 데 치우친다면 교원들의 정서도 흐리고 정책 자체도 신뢰를 잃게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교원들의 적극성을 불러 일으켜야만 ‘두가지 부담 감소’정책이 효과적으로 실시될 수 있고 교육 강국의 목표도 무난히 실현될 수 있다.

얼마전 한 교원이 흑판에 글을 쓰는 동영상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다. 여러 가지 글자체를 자유자재로 다루며 흑판에 환상적인 하모니를 그려내는 모습에 네티즌들은‘걸어 다니는 프린트’가 따로 없다며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하마트면 사라질 번했던 교원들의 가장 기초적인 기량— 흑판글을 십여년만에 다시 보게 되여 너무도 기뻐서 그랬을 것이다.

평화로운 교정, 밝고 넓다란 교실, 자애로운 선생님과 생기발랄한 아이들… 이것이야말로 교육의 가장 본연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로은화(연변인민출판사 편집)

0

관련기사 :
 
21세기중국정보사이트-백두넷
한길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