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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칼럼] 남자애들 녀성화 현상을 두고

편집/기자: [ 리영애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1-12-06 15:18:05 ] 클릭: [ ]

맹영수(수필가) 

일전에 교육부의 어느 한 분이 중소학교에서 남자애들의 녀성화 현상을 두고 개탄하면서 이런 현상은 조속히 개진되여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실로 적시적이고 지당한 지적이라고 해야겠다. 조금만 주의를 돌린다면 주변에서 우리는 이런 현상들을 쉽게 찾아볼 수가 있다. 이를테면 요즘 남자애들은 키꼴은 후리후리하나 지구력과 의지력이 약해서 달리기 등 운동에 뒤떨어져있고 얼굴은 말쑥하나 건강미가 적으며 수다는 많지만 자신심이 부족하여 녀자애들처럼 곧잘 수집음을 타군 한다…

알다 싶이 축구는 세계적인 운동으로서 세계 축구계의 진입은 수많은 중국인들의 꿈이다. 하지만 우리들의 그 념원은 쉽게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왜냐 하면 14억이란 인구비례에 비하여 진정 축구를 즐기는 열광적인 축구인들과 팬들이 적기 때문이다. 대국이란 이름과 달리 우리 나라에서 축구에 종사하는 인원수는 한국이나 일본에 비해 턱없이 적다. 솔직히 일본이나 한국 등 나라의 남자애들은 학창시절부터 축구를 즐기고 그것을 남자의 운동과 하나의 자존심으로 여기고 있지만 우리의 적지 않은 애들과 학부모들은 축구, 그 자체를 학업과 련계시키면서 그런 운동은 소위 ‘지력이 낮은’ 애들이나 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때문에 이웃나라들의 축구 성적은 날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는 반면 우리의 축구 수준은 점점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이 얼마나 한치보기 편견들인가?

물론 남자애들 녀성화 문제는 축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애들 양육문제에서도 우리의 부모들이 찾아볼 점들이 적지 않다. 일부 부모들은 애들을 온실의 화초로 간주하고 그냥 얼룩 한점 묻을세라 곱게만 키우고 있다. 그들은 애들의 학업성적 제고와 영양 개선에는 온갖 심혈을 몰붓지만 로동이나 체육, 의지단련… 등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하여 우리 애들 속에는 밥을 지을 줄 모르고 옷을 씻을 줄 모르며 체육에 뒤전인 애들이 많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일부 엄마들은 아들애를 다섯살, 지어는 소학교 입학할 때까지 목욕을 시켜주고 잠자리도 함께 하면서 녀자애들처럼 꾸며주고 있다. 이를테면 파마를 시키고 연지곤지 찍어주고 알록달록한 옷을 입혀서 가끔은 애들 스스로도 자신의 정체성을 착각하도록 만들고 있다.

여기서 잠간 오래전에 읽었던 〈승냥이 아이〉란 일화를 곁들고 싶다. 어릴 때 승냥이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란 한 애가 있었는데 그 애의 생활습성은 승냥이를 많이 닮아있었다. 기여다니고 생고기를 즐겨 먹어서 인간의 본성을 쉽게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 일화는 우리에게 어릴 때 처한 환경과 교육이 십분 중요함을 여실히 알려주고 있다…

남자애와 녀자애는 성별이 다른 만큼 그 관심과 보살핌, 그리고 교육방식이 분명 달라야 한다. 남자애를 녀자애들처럼 키우면 그 애는 스스로도 ‘본성’과 ‘야성’을 잃어버려 ‘꽃병’으로 될 수는 있어도 ‘대들보’로 되기는 쉽지 않다. 남자애들은 일반적으로 호기심이 많고 용감하고 뛰기를 좋아하고 특별히 자존심과 승벽심이 강하다. 그들은 녀자애들처럼 까근하지 못하고 치장에 소극적이고 좀 게으르다. 총칼을 즐기는 그들은 유희에서도 늘 서로가 맞서면서 ‘장군’이 되고 ‘리더’가 되려고 옥신각신한다… 현명한 부모들이라면 애들의 이런 본성을 리해하고 존중하고 인도하여 어릴 때부터 기백 있게 키워야 한다. 다시 말하면 남자애들을 ‘꽃’으로가 아니라 좀 거칠고 좀 춥게 또 좀 야박하게 키워 부드러운 ‘조약돌’보다는 풍랑에도 끄떡없는 ‘섬 바위’로 되게 해야 한다.

우리말에 “싸리를 심으면 싸리가 나고 콩을 심으면 콩이 난다”, “가난을 이겨내면 큰일을 할 수 있다”는 명언이 있다. 알다 싶이 발명왕 에디슨이나 천재적인 희극왕 챠플린은 모두가 가난과 기시로 하여 어린시절 훌륭한 교육을 받지 못하였다. 하지만 그들을 억센 의지로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나중에는 부모들의 관심 속에서 사내라는 그 오기로 세인들이 승인하는 명인으로 되였다.

어느 한 선인은 “남자가 남자다울 때 세상은 평화롭고 그 가정도 화목하다”고 했다. 어떤 의미에서 말하면 남자는 나라의 기둥이고 평화의 초병이고 가정에서도 역시 대들보나 다름 없다. 고금중외를 막론하고 남자가 약하면 나라가 쉽게 흔들리였고 가정들도 쉽게 깨여졌다. 솔직히 평화의 년대이고 과학기술이 발전한 오늘이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은 여전히 ‘나무’같은 남자들에 더 호감을 갖고 있다. 남자란 굵은 근육을 가진 대장부로서 그들은 무의식적으로도 나라와 가정, 그리고 녀자들과 약자들을 보호하고저 한다. 그만큼 진정한 남자의 이미지는 절대로 ‘꼭두각시’와 같은 이미지와 뒤섞이지 말아야 한다.

어떤 각도에서 보던지 남자애들의 녀성화는 제창할 바가 아니다. 휘여든 못이 자리가 없듯이 ‘아련해진 남자’들의 설자리는 별로 없는 것이다. 하기에 이제라도 우리의 학교와 학부모들은 병에 따라 약을 쓰듯 남자애들의 심리 특점에 맞게 교육방법을 깊이 터득하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 다시 말하면 강하지만 때론 휘여들 줄을 알고 승벽심이 있지만 때론 리해와 용서도 알고 가끔은 바다처럼 한없이 넓은 마음을 갖도록 남자애들을 육성해야 한다.

남자애들은 강물을 보면 고기를 잡으려 하고 녀자애들은 꽃을 보면 치장하려 한다. 꽃 속에 묻힌 모습도 좋지만 꽃에 물을 주는 모습이 더 보기 좋다고 했다. 남자란 바로 그런 이벤트의 출연자여야 한다.

세상만물은 다 자기만의 특징이 있다. 남자애와 녀자애들의 다른 점을 진정으로 알 때 우리의 교육방식도 질적인 변화를 일으켜 보다 맞춤한 인재들이 육성되지 않을가?

총적으로 남자라면 ‘호랑이’는 못될지언정 ‘고양이’로는 되지 말아야 한다!

                                                                                        길림신문/ 맹영수(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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