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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칼럼] 칼럼의 매력

편집/기자: [ 리영애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1-08-04 15:18:02 ] 클릭: [ ]

 
김학송(시인) 

얼마전에 한 교원으로부터 보내온 메시지를 접했다.내가 쓴 칼럼 〈돌이 내게 말을 걸어온다〉(2019년 7월 3일 《길림신문》 ‘두만강’칼럼 코너에 발표)가 조선족 중학교 8학년 하권 조선어문훈련과목에 실렸다고 한다.

기분 좋은 소식이였다. 솔직히 칼럼은 별로 써본 적이 없는데 그냥 청탁에 의해 쓴 글이 발표된 지 얼마 안돼 교과서에 수록됐다고 하니 가슴이 무척 설레이였다.

흔히 교과서에 오르는 글은 글중에서도 학생들의 글짓기 공부에 최대한 도움이 되는 가장 모범적인 글로 선정된다. 이번의 칼럼은 나도 모르는 누군가에 의해 리해관계가 철저히 배제된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선정된 글이여서 더구나 보람차고 마음이 뿌듯해진다.

왜 하필 이 글이 교재에 올랐을가?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을 굴리게 되였다.

아래와 같은 몇가지로 그 원인을 개괄해보았다.

아마도 글에 담긴 소박한 내용이 긍정적인 메시지로 큰 울림을 낳은 것이 첫번째 원인일 것이다.

글에서는 명품수석이 형성되는 과정과 명품인간이 탄생하는 과정의 모종 류사성으로부터 시작하여 수석애호가인 ‘내’가 돌 앞에서 무한한 경이와 감동을 느끼는 원인을 하나하나 밝혀나간다.

수천만년 파도 속에서 뒹굴며 수마(水磨)와 사마(沙磨)와 풍마(风磨)를 거쳐 생겨나는 게 수석이다. 수석은 오랜 시간 모진 아픔을 감내하며 몸에 붙은 허접찌꺼기를 버리고 자연의 예술품으로 거듭 태여난다. 돌은 돌이지만 고난의 수련을 거쳐 돌의 경지를 넘어 수석이라는 새로운 생명으로 자신을 뛰여넘는다. 인간도 온갖 시련과 아픔과 역경을 이겨내야 비로소 정갈하고 단단한 내면을 지닌 참된 인간—명품인간으로 우뚝 일떠서게 된다.

론리적 련계가 잘되였기에 글의 내용에 대한 신뢰도와 호감도가 높아진 것 같다.

명품수석의 조건과 명품인간의 조건을 대입시키며 설득력 있는 비유로 공감대를 극대화시킨 데도 원인이 있다.

명품수석이 되자면 모양이 이뻐야 하고 수마로 피부가 부드러워야 하고 색상이 아름다와야 하는데 그중에서도 석질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돌의 재질이 단단하고 물씻김에 의해 돌의 피부가 부드럽고 거친 데가 없어야 명품수석의 반렬에 오른다. 인간도 ‘문화의 물씻김’에 의해 내면이 윤이 나고 부드러워야 참된 인간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핵심적 문구는 ‘문화의 물씻김’이다. 문화의 물씻김이 의미하는 바를 제대로 인지하는 것이 이 글을 제대로 읽은 키워드이다.

문화는 부드러운 물에 비견된다. 물은 부드럽지만 만물만상을 다스린다. 이 가운데 내재된 철리가 ‘문화의 물씻김’이라는 표현을 지탱하는 내적인 에너지이다. 한낱 무생물인 돌도 부드러운 물씻김에 의해 숭고한 예술품으로 승격되는데 하물며 인간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심령을 다스리는 문화는 무엇보다 강한 힘으로 우주에 참여하고 인간성의 형성에 참여한다.

문화는 경제보다 군사보다 강한 힘으로 인류의 진화를 추진한다.

여기서 물과 문화의 류사성은 합리성과 설득력을 가진다.

진정으로 깊은 문화를 가진 사람은 부드러울 수 밖에 없다.

령혼에 윤기가 돌 수 밖에 없다. 문화의 세탁에 의해 오물이 제거된 까닭이다. 하기에 목소리도 눈빛도 부드럽고 온화하다. 리타적이고 행실이 한없이 겸손하고 착하다.

성미가 거칠고 욕심이 사나운 인간은 사람접대를 받기 어려운 법이 아니던가! (성격이 거친 사람을 가리켜 덜된 사람이라 한다)

소박한 은유와 여러가지 수사법도 이 글의 문화성과 교훈성을 높이는 데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 글에서 작자가 궁극적으로 보여주려 한 것은 결국 명품수석의 조건이 아닌 명품인간이 되는 조건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그래서 굳이 날 선 사회비평이나 풍자가 아니더라도 부드럽고 짧은 글이 더 큰 감화력으로 독자들에게 다가선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이 칼럼이 성공한 비결인듯 싶다.

                                                                                                           길림신문/ 김학송(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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