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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견 촌서기로 돈화 횡도하자촌에서 보낸 마지막 하루

편집/기자: [ 신정자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1-07-27 15:45:48 ] 클릭: [ ]

-4년전 돈화시 추리구진 횡도하자촌의 제1서기로 파견된 허전흠(许传鑫)의 일기

길림성 빈곤해탈공략총결표창대회에서 선진개인으로 표창받은 허전흠(许传鑫)

2017년 5월 나는 조직의 수요로 연변조선족자치주 돈화시위 사무실의 공작일군으로부터 돈화시 추리구진 횡도하자촌의 제1서기 겸 공작대 대장으로 파견되였다. 세월은 참 빠르기도 하다. 어언 1500여일이란 시간이 흘렀다. 한 사람의 일생에서 4년이란 시간을 수차 겪게 되지만 하향해서 쌓은 경력은 내 인생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빈곤촌에 뿌리 박고 흑토지에 뛰여들어 군중들과 함께 비바람을 맞받으며 간고한 분투를 거쳐 일떠세운 산촌의 거대한 변화, 길가에 정연히 세워진 가로등이며 확 트인 광장, 가쯘한 담벽... 이 모든 것들을 내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어 참 가슴이 뿌듯하다.

돈화시 추리구진 횡도하자촌의 제1서기로 파견된 허전흠(许传鑫, 오른쪽 첫번째)이

촌민들의 상황을 알아보고 있다.

2021년 6월 29일,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평범한 아침이건만 이날따라 창문가에 비낀 해살은 유난히 따사로왔다. 횡도하자촌에 함께 파견되여 온 장개 등 우리 셋은 아침 6시가 되자 신선한 공기를 만끽하면서 깨끗하고 정결한 마을을 돌았다. 촌민들을 만나면 우리는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반갑게 인사하면서 집안 형편을 묻기도 하고 일상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촌민들은 여전히 그렇게 열정적으로 우리를 맞아주었고 집으로 초대하겠다며 반긴다. 그런데 오늘은 어쩐지 가슴이 뭉클해나며 섭섭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우리는 그저 손을 저으며 감사를 표할 뿐 우리가 떠난다는 걸 촌민들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우리는 4년 남짓한 사이에 변모한 마을의 구석구석을 돌아보면서 촌민들과 함께 한 소박하고 진솔한 정을 다시 한번 감수했다.

7시가 되여 촌부에 돌아오니 우리 공작대의 큰형님으로 불리우는 장개(张凯)가 아침식사 준비로 서두르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나와 장개(张开)는 인계 할 재료들을 정리했다. 아침은 입쌀죽에 닭알볶음 그리고 촌민들이 가져다놓은 오이와 대파였다. 침묵이 흘렀다…

7시 40분쯤 사무실에 돌아온 우리는 촌부의 아래우층을 오르내리며 깨끗이 청소를 하느라 서둘렀다. 횡도하자촌의 당지부 포서기도 일찍 출근한지라 우리를 일하지 말라고 연신 말렸다. “우리를 한번만 더 일하게 해주십시오. 오늘 새로운 동지가 오는데 잘해놔야죠.” 내가 이렇게 말하자 포서기는 그제야 머리를 끄덕이며 막지 않았다. 그런 덕에 침묵을 깨뜨렸다. 우리는 화제를 촌의 공작에 돌렸다. 마치 또다시 4년전으로 되돌아간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오늘의 화제는 빈곤촌 해탈의 미래에 대한 전망인 것이 아니라 빈곤촌의 간난신고를 돌이키면서 초심을 잊지 말자는 것이였다. 

허전흠(许传鑫, 왼쪽 첫번째) 서기가 빈곤에서 벗어난 촌민의 집을 방문하는 장면

8시가 되자 촌간부들이 륙속 촌부에 모이기 시작했다. 나는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회보에 귀를 기울이고나서 포서기와 함께 촌에서 해야 할 공작을 토론했다. 회의가 끝났지만 촌간부들은 되돌아갈 념을 하지 않고 있었다. 내가 “왜 다들 이러고 있지요? 저희들과 헤여지기 아쉽나보네요. 이후에도 여러분들을 뵈러 자주 올겁니다.”라고 말하자 그제서야 동주임이 “허서기님, 허서기님이 말씀한대로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 모두 기다리겠습니다!”라고 인차 말을 이었다.

10시 10분쯤 돈화시 추리구진 당위 요위(姚卫) 서기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공작을 배치할 일이 있으니 우리더러 사무실에 왔다가라는 것이였다. 우리를 위안하련다는 짐작이 갔다. 추리구진에 가니 요위 서기는 우리가 생각한바와 같이 공작임무 대신 안심하고 도시에 돌아가 공작하고 촌의 일은 시름놓으라고 당부했다.

11시 반이 되여 추리구진의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어제날 함께 어깨 겯고 빈곤해달공략전에서 진의 지도자들과 함께 산업발전, 농촌마을 건설을 계획하고 드높은 열정으로 쟁론을 벌이던 정경이 눈앞에 선히 떠올랐다.

돈화시 추리구진 정부 사무실에서 공작을 인계하는 장면

오후 2시에 우리는 진소동 주임의 안내하에 돈화시 추리구진 정부 사무실에서 송목천 등 세사람에게 우리의 공작을 인계했다.

오후 3시가 되여 촌 마을에 돌아온 우리는 빈곤에서 벗어난 집들을 돌아보면서 새로 온 동지들을 촌민들에게 소개함과 아울러 작별인사를 나눴다. “전흠서기, 안가면 안돼요? 여기서 얼마나 잘하셨어요.”, “허서기님, 이렇게 가신후엔 또 돌아오십니까?”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났다. 촌민들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슬그머니 몸을 돌렸다.

오후 4시에 촌부에 돌아온 우리는 굳게 손을 잡고 서로 어깨를 다독였다. 우리는 4년 동안 함께 한가마밥을 먹으며 어깨 겯고 함께 싸운 ‘전우’이며 단지 공작만으로가 아닌, 한집식구가 되여 깊은 정을 나눈 형제들이다.

오후 4시 45분쯤 우리는 정든 횡도하자촌을 떠나 또 하나의 새로운 시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빈곤해탈공략전에서 향촌 진흥을 위한 로정에서 주재 제1촌서기로 있으면서 촌민들과 함께 한 나날들을 소중히 여기며 당의 호소를 높이 받들고 계속 당을 따라 저그마한 힘이라도 이바지 하련다.

 

/편역 신정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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