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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칼럼] 윤동주 다시 읽기

편집/기자: [ 리영애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1-07-21 15:32:18 ] 클릭: [ ]

김혁(소설가, 칼럼니스트) 

요즘 이 문단의 이슈는 단연 윤동주의 시집 《별 헤는 밤(数星星的夜)》의 한문(汉文)판 출간일 것이다.

역서를 내놓은 작가는 중국 문단에서 그 문명을 알린 조선족 작가 전용선, 중국 영화의 거장 장예모가 11억의 수익으로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벼랑 끝에서》의 씨나리오작가로서 영화의 흥행과 더불어 누님과 함께 번역한 윤동주 한문시집도 아시아 도서 랭킹 1위를 달리는 기염을 토했다.

장정이 아치한 시집은 강소봉황문예출판사에 의해 출간, 〈서시〉 등 윤동주의 주옥같은 시 91수와 수필 4편을 번역, 수록했다.

해내외에서 출간된 윤동주의 시집은 그 판본이 류류별별 수백부가 넘지만 국가통용언어문자 한문으로 번역된 시집은 네권 정도 밖에 안된다.

이번에 시집이 출간되면서 《중국신문주간》등 20여개 주류 매체가 동시에 윤동주라는 인물에 대해 소개, “묻혔던 천재 시인의 발굴”이라며 감탄과 함께 반겼다. 윤동주 연구의 권위자 일본 와세다 대학의 오오무라교수가 룡정의 산야에 방치된 윤동주의 묘소를 발굴한 뒤, 근 40년이 지나서 민족작가들 사이에서만 알려졌던 윤동주가 중국 주류 문단에서 마침내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한 듯하다.

따라서 조선족 독자, 작가들중에서 또다시 윤동주붐이 은연중 일고 있다. 모두들 새삼스럽게 윤동주 시 읽기 ‘삼매경’에 빠져들고 있다. 다투어 한문(汉文)판 시집을 구매하고, 유튜브로 작가의 출간기념회의 광경을 시청하고, 윤동주의 시가 여러 위챗그룹과 모멘트를 도배하고… 유명 작가가 일으킨 시너지 효과라고 본다.

돌이켜보면 사실 우리는 고향이 배출한 겨레의 시성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던가?

그의 시 한두수 정도나 낯가림, 랑송용으로 외우지 않았던가?

그의 116수의 시를 완독한 적이 있었던가?

그의 민족을 걱정하고 자신을 부끄러워했던 별빛같은 고매로운 삶의 빛갈에 대해 헤아려본 적이 있었던가?

이러한 질문이 오늘따라 갈마든다.

무엇보다도 그가 남긴 전편의 시를 잘 알고 그 내용에 대해 관심을 두고 또 깊이 있게 연구하고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적다는 것에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윤동주의 생애에 대해서는 프로필 훑기 식으로, 작품에 대해서는 대표적이고 지극히 짧은 〈서시〉 정도는 읊조리고 있지만, 막상 그의 고매함으로 점철된 생애, 주옥같은 시작품들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석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주변의 작가, 독자 연구자들이 시인의 이름은 이모티콘인양 ‘애용’하지만 그의 민족적인 문제에 대한 천착, 그를 넘어서는 세계적인 가치, 깊은 철학관, 미학관 등으로 구성된 그의 시 세계의 실상에 대해서는 ‘수박 겉 핥기’ 식으로 깊이 읽어내려가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반듯한 귀공자의 이미지에, 아담한 생가, 평양, 일본으로의 류학 그리고 서정성 넘치는 시구들을 편단적으로 흥감적으로 접하고는 윤동주에 대해 가볍게 다가서는 이들이 많다.

사실 윤동주가 살았던 시대는 동아시아에 전운이 감돌던 불안과 격동의 시대였다. 윤동주의 모교는 반일운동의 죄목으로 잔악한 일제에 의해 불탔고, 윤동주와 학우들이 꾸린 학보도 강제 페간되였고, 민족적 정서가 검열에 란도질당하는 시국에 우리말로 된 시집조차 온전히 낼 수 없었다. 말도 고향도 육신도 앗겼고 일제감옥의 찬 감방에서 생체실험으로 인한 옥사라는 비극의 나락으로 떨어져야 했다.

그 와중에도 윤동주는 일제신사의 참배를 거부했고 창씨개명을 늦추었고 적의 나라에서 ‘시가 쉬이 씌여짐’을 부끄러워했고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피를 흘릴’ 마음의 준비를 했다.

일제강점 시기의 암울한 상황에서도 진실한 삶, 참인간이 되고저 했던 윤동주는 이렇듯 투철한 시대의식을 지닌 저항의 시인이였다.

“자신의 내밀한 삶을 토로하는 고통의 시들은 시인 자신의 고통을 덜기 위함이 아니라 위기에 놓인 력사와 문명에 대해 말하기 위함이다”고 비평가들은 말했다.

그렇게 각혈하듯한 심정으로 시대의 행간에 온몸이 붓자루 되여 적어내려간 시들을 우리는 단지 유흥에 빠져 무심코 읽어내려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윤동주를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것은 그의 시가 갖는 높은 가독성 때문이 아니라 그의 시를 관통하는 맑은 령혼 때문일 것이다.

암울했던 시대 ‘주어진 길’을 가며, 자아성찰로 일관된 그의 성품과 작품은 력사적 귀감이 되였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깊이 새기고 선양해야 함이 아닐가 싶다.

윤동주 번역시집의 출간과 동시다발적으로 그의 고향 룡정 명동촌도 태깔을 벗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다시 한번 세간에 회자되고 있다.

일전 《인민일보》는 〈새로운 길을 열어 행복한 생활을 누리다〉는 제목으로 명동촌이 관광자원을 발굴하여 촌민들을 빈곤에서 해탈시킨 활로에 대해 보도했다. 《길림일보》에서도 관광업을 중점적으로 구축하고 있는 명동촌에 대해 소개, 시인 윤동주의 생가 등을 일례로 들었다.

룡정시와 녕파시의 동서부 협력사업의 중요한 부분인 명동 정품민속촌락 건설대상도 이미 가동을 걸었다.

녕파의 총기획자는 “유명한 애국시인 윤동주의 생가가 바로 명동촌에 있는데 향후 윤동주시인의 생가를 찾는 국내 및 한국의 관광객들이 늘어날 것이라는 판단이 이곳에 민속촌락을 건설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중 하나”라고 피력했다.

시인 윤동주에 의해 해내외에 널리 알려진 명동촌은 자원우세를 통한 수익사업 개발에 의욕이 크며 이를 통해 마을의 공동체의식을 단단히 다지고 있다.

이러한 밝은 시류에 편승하여 윤동주 읽기가 일시적인 가벼운 랑독거리로, 그리고 현학적 취미를 넘어서기를 바란다.

그저 시류에 따라가는 작가, 독자가 되지 말고, 이 참에 윤동주를 제대로 읽고 알아가는 계기가 되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길림신문/ 김혁(소설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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