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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문수, 그녀의 꽃다운 생명은 영영 빈곤부축의 길에 멈췄다

편집/기자: [ 심영옥 ] 원고래원: [ 신화사 ] 발표시간: [ 2019-07-03 13:33:18 ] 클릭: [ ]

 
일하고 있는 황문수의 생전 모습 /사진 락업현 제공

눈앞은 산홍수에 파묻혀버린 한갈래 길, 그대로 맞받아나가면 천만 위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주저앉아버리면 날이 샐 때까지 마을에 돌아갈 수 없다.

그 시각, 황문수의 마음에는 그대로 주저앉으려는 생각이 아예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전진’을 택했다. 바로 자기가 마음에 두고 있는 그 땅을 향해, 자기가 마음에 두고 있는 군중들을 향해 ‘전진’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전진’으로 영원히 흉흉한 홍수 속에 휘말려버렸다.

황문수, 북경사범대학의 우수 석사졸업생, 광서 백색시 락업현 신화진 백니촌의 제1서기인 그녀는 6월 16일(일요일) 저녁 차를 몰고 락업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불행하게도 목숨을 잃었다. 이렇게 30세의 꽃다운 생명은 영영 빈곤부축의 길에 멈췄다.

빈곤부축의 길에는 전진만 있을 뿐 후퇴란 없다

우기에 들어서면 백색은 폭우가 무시로 찾아오고 홍수에 침수, 붕괴까지 자연재해도 비일비재이다. 늘 이 산간지대를 드나드는 사람들은 산홍수에 대해 어느 정도 료해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만은 홍수가 하도 사납게 덮쳐든 바람에 차를 몰고 1년에 2만 5,000키로메터를 달리는 황문수마저도 어지간히 겁이 났다.

“차 한대가 이미 홍수에 밀려갔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이는 황문수가 사고가 나기전 위챗에서 친구와 채팅한 기록이다. 이는 30세의 녀성이 위험한 상황에 부딪쳤을 때의 정상적인 반응인 것이다. 다만 혹자는 안전한 곳으로의 대피를 택하고 혹자는 위험에 도전하는 쪽을 택했을 뿐이다.

그 날은 어느 주말 저녁, ‘아버지의 날’이기도 했다. 황문수는 전양현성에 있는 집에 갔다가 락업으로 돌아가는 길이였다. 그녀의 아버지가 암으로 금방 수술을 마친 상황이라 주말에 집에 가 년로하신 아버지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녀에게는 큰 위안이였다. 사업과 생활의 이런저런 압력 앞에서 그녀는 항상 미소를 잃지 않았고 락관적이고 쾌활했으며 적극적이고 진취적이였다. 설사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지라도 그녀는 백니촌 군중들에 대한 관심을 잊지 않았다.

“그 날 저녁 백니촌도 폭우의 세례를 겪었습니다. 황서기는 락업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도 자주 재해 상황을 문의하군 했습니다.” 백니촌 촌민위원회 주임 반지화는 이렇게 회억했다.

17일 오전, 촌의 간부들은 그녀에게 재해 상황을 회보하려고 했지만 전화도 통하지 않았고 위챗에서도 대답이 없었다. 반지화는 즉각 진에 황문수의 상황을 문의했다. 진의 간부들은 확인 후 황문수는 진에 없으며 현의 빈곤부축회의에도 참가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반지화와 다른 한명의 촌간부는 즉시 차를 몰고 100키로메터 밖의 릉운현 령참요족향 구민촌 재해구역에 가서 상황을 알아보았다. 폭우가 지나간 뒤라 길이 말이 아니여서 평소 두시간이면 닿을 거리를 두 촌간부는 세시간 넘게 달렸다.

그들은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그처럼 열성적인 황문수가 그저 림시로 구조대오에 가담했기 때문에 촌으로 돌아오는 시간을 지체한 것 뿐이라고. 그런데 누가 알았으랴, 구조대원들의 노력과 지문 대비를 거쳐 황문수의 시체를 이미 찾았음을 확인했다는 불행한 소식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나는 지금도 그녀가 우리 곁에 없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습니다. 촌민들도 그녀의 죽음에 비통해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촌을 위해 너무나 많은 일들을 했습니다.”라고 반지화는 말한다.

가자, 조국이 제일 수요하는 곳으로

2016년 우수 정향인선전근생(定向選調生)으로 백색시당위 선전부에서 사업하게 된 황문수는 2018년 3월 26일, 백니촌 주둔 제1서기로 파견되였다.

“그녀는 제1서기로 가야 하는지를 나에게 물은 적 있습니다. 나는 ‘그럼, 조국이 제일 수요하는 곳으로 가야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 녀자애들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지!’ 하고 말했습니다.” 같은 명문대 인선전근생이며 똑같이 제1서기를 지낸 적 있는 로염은 줄곧 빈곤부축의 길에서의 황문수의 안내자이기도 했다.

황문수가 백니촌을 위해 봉사한 1년 2개월 20일이 되는 나날에 그녀는 백니촌을 도와 전자상거래를 발전시켜 사탕귤 등 지방특산물을 전국 각지에 판매했다. 그녀는 또 백니촌을 위해 마을을 통하는 가로등 항목을 신청, 촌민들은 밤길에 더는 손전지가 필요없게 되였다. 그녀는 전 촌 195세대의 빈곤가정을 한집 한집 돌며 필기장에 매 가정의 빈곤 초래 원인을 자세하게 기록해놓았다…

황문수는 마음에 두고 있던 많은 일들을 아직 채 끝내지 못했다. 선천성 뇌위축질환을 앓고 있는 촌민 반씨회의 큰아들의 최저생활보장금도 아직 신청하지 못했다. 황문수는 병원에 가서 아이를 위문하면서 그를 도와 최저생활보장금을 신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명절 때면 그 아이에게 선물을 가져다주고 음력설이면 또 자기 호주머니를 털어 500원의 세배돈을 쥐여주기고 했다…반씨회는 밭일을 마치고 돌아와서야 황문수에 관한 비보를 전해들었다. 그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어제 저녁 한잠도 못 잤습니다. 그냥 그녀의 웃는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26세 나는 촌민 황조우는 곧 입당하게 된다. 그런데 황문수는 이미 곁에 없다. 황문수는 쾌활한 사람이였다. 그녀는 여러 사람들과 벗으로 사귀기는 것을 특별히 좋아했으며 일처리 태도도 아주 적극적이였다. 황조우는 이렇게 황문수를 회억했다. “우리는 때론 현성에서 일을 했는데 그녀는 현성에 일 보러 왔다가도 주동적으로 우리에게 전화를 걸어와 젊은이들은 적극적으로 입당해야 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촌의 발전은 젊은이들을 떠날수 없다며 당원에 들면 더욱 훌륭히 촌을 위해 기여할 수 있다고 일깨워주었습니다.”

백니촌 한 간부의 사진기에서 기자는 6월 14일, 황문수가 자락툰에서 재해 상황을 알아보는 사진을 보았다.‘제1서기 황문수’라는 글귀가 새겨져있는 붉은색 마고자를 입은 그녀가 두손을 진흙에 지탱해가며 간신히 개천에 올라 재해 상황을 시찰하는 모습이였다. 그런데 이틀 후 사품치는 홍수가 그녀를 삼켜버릴 줄이야 그 누가 생각이나 했으랴.

인민들의 훌륭한 서기, 인민들은 잊지 않으리

로혁명근거지 백색은 전국 14개 집중특곤지역의 하나로서 2018년말까지 의연히 280개 빈곤촌이 빈곤모자를 벗어버리지 못했으며 19.35만 빈곤인구가 빈곤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한패 또 한패의 제1서기들이 빈곤퇴치 난관공략의 중요한 사명을 두 어깨에 짊어지고 이곳에서 피땀을 뿌리고 지어는 생명을 바쳤다.

“백색은 빈곤퇴치 난관공략의 주전장으로서 어떻게 백색의 혁명선렬들의 용왕매진하고 끊임없이 박투하는 정신을 계승해나가는가는 청년일대인 우리들로 말하면 밀어버릴 수 없는 책임이다. 촌 주둔 제1서기로서 나는 당중앙의 정확한 지도 아래 전면적인 승리를 거두지 못하면 절대 물러서지 않을 신심이 있다.” 황문수는 생전에 지방 텔레비죤방송국에서 제작한 한 프로에서 이렇게 말했다.

북경사범대학 학우총회에서 위챗공중계정에 게재한, 황문수의 빈곤부축 소감 글에서 그녀는 이렇게 쓰고 있다. “빈곤부축에 나섰던 사람들이 전쟁년대에 싸움에 뛰여들었던 사람들처럼 자호감을 느끼게 해야 한다”, 장정을 했던 전사들은 죽음도 개의치 않았거늘 요만한 곤난이 어찌 나의 전진의 길을 막을 수 있으랴. 그녀는 바로 이 같은 정신으로 빈곤부축의 길에서 용감히 앞으로 나아가도록 자신을 격려했다.

고생고생하며 자기를 길러준 부모에게 아직 그렇다 할 만한 보답도 못했는데, 지어는 아직 련애다운 련애 한번도 못해봤는데 그녀는 꽃같은 나이에 영원히 이 세상을 떠났다. 병상에 누워있는 그녀의 아버지는 아직 이 불행한 소식을 모르고 계실 것이다. 황문수도 아버지가 아시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한것은 그들 형제자매는 암이라는 진실한 병상황도 아버지에게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황문수의 조난 소식은 위챗공식계정 등 소셜 미디어(社交媒体)에서 강력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많은 간부, 군중들과 인선전근생, 대학생들이 앞다투어 이 소식과 그녀 생전의 사진을 전재했다.

“인민들의 훌륭한 서기여, 인민들은 그대를 잊지 않으리”, “천국에는 홍수가 없기를”, “선배언니, 잘 가세요! 시름 놓으세요. 많고 많은 백색 학생들이 고향에 돌아와 아름다운 고향 건설의 계주봉을 이어받아 청춘의 힘을 이바지할 거예요.”

황문수의 사적은 빈곤퇴치 난관공략 사업에 청춘의 정열을 휘뿌리도록 더욱 많은 청년들을 격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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