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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촌진흥]대성촌 빈곤부축에 나선 부현장급 ‘법관서기’

편집/기자: [ 유경봉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8-03-29 15:01:50 ] 클릭: [ ]

 

-화룡시 룡성진 대성촌 제1서기 오경춘을 만나보다

지난 겨울은 추위가 유난히도 기승을 부렸다. 하지만 화룡시 룡성진 대성촌의 87세 고령의 독거로인 김정숙할머니의 마음은 포근하기만 하다. 더 이상 겨울나이를 근심하지 않아도 되였기때문이다.

“예전에 이웃집 단칸방을 빌려 지내면서 석탄이 아까와 불을 때지 않다 보니 구들은 항상 차거웠고 수도물도 얼어붙었더랬지요. 오서기가 촌에 와서부터 촌민위원회와 함께 저를 도와 거처를 마련해주고 불도 따뜻하게 때주어 너무나 감사합니다.” 최근 생활에 일어난 변화를 얘기하는 김할머니의 류창하지 않은 한어에는 구절마다 “오서기”가 떠나지 않았다.

김할머니가 말하는 ‘오서기’는 바로 대성촌 주재 ‘제1서기’인 연변주중급인민법원의 오경춘(吴京春, 58세) 법관이다.

화룡시법원 원장, 연변주법원 심판위원회 위원과 민사법정 제3정 정장 등 직무를 력임하며 사법전선에서 수십년을 분투한 로법관인 그는 2015년의 사법체제개혁 과정에서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중층간부 일터를 양보하고 원액법관을 쟁취하는 기회도 포기했다. 주법원 지도부에서 대성촌 “제1서기”를 맡으라고 제안했을 때도 그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오경춘이 ‘제1서기’의 직책을 절실히 리행하여 대성촌을 가난에서 벗어나 부유해지고 초요를 이루도록 도와나선 지도 어언 2년이 지났다. 그는 어느새 촌민들의 인정을 받고 그들이 정답게 부르는 ‘오서기’가 되였다.

 

대성촌은 화룡시 교외에 위치, 2개 자연툰과 6개 촌민소조에 등록인구가 348가구, 1084명이지만 실제 거주 촌민은 201가구, 425명이다. 그중 빈곤인구는 2015년말까지 181가구, 369명으로서 촌인구의 90%에 달했으며 오경춘이 부임되는 2016년 3월까지만 해도 대부분 촌민들의 수입원천은 단순히 농업재배에만 의거하였다.

오경춘은 촌의 당지부와 촌민위원회의 회의장소와 사무장소가 작아 많은 촌간부들이 부득불 집에서 사무를 볼 수 밖에 없는 문제를 발견하고 촌사무실 건설을 대성촌에서의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로 삼았다.

오경춘의 보고를 받은 연변주법원 유성일(庾成日) 원장이 법원을 대표하여 현금 10만원과 4만원의 사무 설비, 용품을 선뜻 지원하였고 화룡시법원에서도 20만원의 기초건설비용을 해결하였으며 화룡시당위와 룡성진 당위, 정부에서도 자금 조달에 적극적으로 힘을 모았다. 당해 10월말에 200평방메터의 “원스톱” 서비스강당과 완전한 기능을 갖춘 촌급 활동장소가 사용에 교부되였다.

오경춘은 대성촌 경제발전을 제약하는 도로건설 문제를 빈곤해탈의 탈출구로 삼았다. 그와 촌민위원회의 노력으로 눈비날씨만 되면 진흙탕으로 변하여 촌민들의 골치덩어리던 1500메터의 주요도로가 세멘트 도로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2016년 오경춘은 또 촌민위원회 간부들과 함께 위험주택을 27채 개조하였고 9만원을 투입하여 60평방메터의 로년활동실을 개조하였다.

그외에도 부임 당해에 6개 촌민소조로 흩어진 촌의 181가구의 빈곤호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그들의 실제 곤난을 정밀 장악하여 서류를 만들어 손금 보듯 료해하였다.

그는 방문과정에 5년전에 남편을 저세상에 떠나보내고 매달 300여원의 최저생활보장금으로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는 87세 고령의 빈곤호 김정숙 할머니를 알게 되였다. 살림집이 없어서 이웃집을 빌려 들고 있는 데다 겨울의 추위 나기가 아주 어려운 상황이였다. 2016년 9월 16일, 오경춘과 촌간부들의 적극적인 조률하에 김정숙 할머니는 로년활동실에 거주하게 되였고 외로운 할머니를 보살피기 위해 오경춘도 로년활동실로 거처를 옮겼다. 그는 옷장, 가구, 텔레비죤과 랭장고 등 가정기물들을 가져왔다. 함께 지낸 시간이 길어지자 할머니는 오경춘을 자신의 가족으로 여겼고 자신의 최저생활보장금 통장도 시름 놓고 맡겼다. 세심한 오경춘은 랭장고의 과일이나 닭알, 채소, 고기가 떨어지기 바쁘게 미리 사왔다. 할머니가 세멘트바닥 청소를 힘에 부쳐 하자 연길에 가서 나무장판을 사다가 깔아주었다. “나는 참말로 복이 많은 사람일세. 글쎄 이 나이에 아들을 하나 얻었다니깐.”라고 김정숙 할머니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아들’자랑을 늘여놓는다. 오경춘도 김정숙 할머니를 ‘김어머니’라고 정겹게 부른다.

오경춘은 조림과 방목에 알맞는 대성촌의 유리한 조건에 비추어 촌민위원회와 함께 상급의 빈곤부축 정책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빈곤호들을 한데 무어 양식전업합작사를 세웠다. 지난해, 주법원과 화룡시법원에서는 각각 12만원, 8만원의 자금을 투입해 대성촌의 소사양산업 대상의 확건을 도와주었다. 지난해 소사양합작사 대상과 참나무버섯산업 대상의 수입은 22만 500원인데 빈곤호들에게 가구당 평균 1200여원씩 리윤을 나누어줄 수 있게 되였다. 이런 조치들은 촌민들의 수입을 높여주고 그들에게 가난에서 벗어나 부유해질 수 있다는 신심을 북돋아주었다.

 

오경춘은 자신에게 제1서기 중임을 맡긴 것은 자신에 대한 조직의 믿음이고 더우기는 묵직한 책임이라고 보고 있다. 대성촌의 새로운 발전에 직면하여 자금을 유치하여 촌의 소사양전업합작사 대상을 확대하고 하우스 건설을 확장하며 돼지양식 대상을 건설하는 동시에 빈곤부축 자금을 쟁취하여 수도관을 개조하고 집집마다를 련결하는 세멘트도로와 농용도로를 수건하며 태양에너지 가로등을 설치하고 쓰레기 처리장을 건설하며 수로제방과 물도랑 등을 수건하는 등 2년 계획을 세우고 실현하는 중이다. 촌민들의 돈주머니를 두둑하게 하고 생활의 질을 높이며 공동으로 가난에서 벗어나 초요수준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지난해 하반년, 오경춘은 간이온실에서 사계절 무공해의 앵두, 딸기와 여러가지 채소를 재배하고 관광산업과 농촌관광(农家乐) 등 제3산업을 발전시키려는 구상과 훈춘에 해당 대상을 솔선적으로 인입한 회사가 있다는 정보를 주법원 지도부에 보고했다. 주법원 유성일 원장은 즉시 화룡시법원 조문길 원장, 오경춘과 함께 훈춘을 여러차례 고찰했다. 량급 법원의 지지하에 대성촌은 촌집단경제 실체를 등록하고 국가의 전문자금을 쟁취하여 선진기술과 자금으로 생태농업원구를 합작경영할 계획을 무르익혀가고 있다. 지난해 11월 23일 생태농업원구 대상이 정식으로 가동되였다. 오경춘의 노력으로 대성촌은 집체 경제수입을 늘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촌민들에게 더욱 많은 일자리를 공급하여 3년내에 빈곤에서 벗어나고 초요사회를 향해 돌진하는 목표를 실현하게 될 것이라 한다.

“오서기는 중국인민대학을 졸업한 우등생으로서 저는 모를 것이 있으면 수시로 그를 찾아가 지도를 청하고 어떤 일은 오서기가 직접 해줍니다. 부현장급 간부가 우리를 위해 복무하는 것이 아닙니까!” 촌회계 양춘산은 문건이나 통계도표를 작성할 때면 항상 오경춘을 찾아가 도움을 청한다. 방조부축에 착수한 이래 오경춘은 신속히 촌민들과 한데 뭉쳤고 촌민들도 그와 스스럼 없이 롱담한다.

“우리가 군중들에게 가깝게 다가갈수록 군중들은 우리와 더 빨리 친해집니다.” 이는 오경춘이 사업을 대하는 태도이며 그의 진실된 감수이다. 그는 또 다년간 심판사업에 종사한 우세를 리용해 촌민들에게 해당 법률, 법규를 설명해주고 토지분쟁 등 촌민들의 모순을 조정해주어 많은 모순과 분쟁이 맹아상태에서 화해되였다.

대성촌의 빈곤해탈을 위한 오경춘의 아낌 없는 노력과 기울인 심혈은 조직의 충분한 긍정도 받았다. ‘제1서기’로 부임한 첫해인 2016년 년말에 오경춘은 연변주당위 조직부로부터 우수‘제1서기’로 평의되였으며 이듬해 7월에는 연변주 민족단결진보 선진개인으로 평의되였다.

 

대성촌 촌민들이 오경춘을 만나면 건네는 첫마디: “오서기, 식사했소? 우리 집에 가서 잡숫기요.”

서먹서먹하던 때가 어제 같은데 어느새 촌민들과 익숙해지고 융합되기까지, 얘기를 나누던 데로부터 마음을 나누기까지 “대성촌에서의 경력은 나의 인생에서 보귀한 재부로 되였다”고 오경춘은 감개무량하게 말한다.

/길림신문 유경봉기자, 통신원: 나화붕(那华鹏), 류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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