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닫기

고 윤수범선생 문집 《로법관의 로후》출판기념회 장춘서

편집/기자: [ 박명화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7-08-08 12:41:27 ] 클릭: [ ]

“화피창렬사릉원의 비문에는 렬사 203명의 명단 밖에 적혀있지 않다. 후에 찾은 렬사들의 명단이 길림성민정부문에 등록되여있는데 267명이다. 아쉽게도 이들의 이름이 아직 렬사릉원에 새겨지지 못했다. 그들을 위해 비문을 하나 더 세우고 이름까지 새겨넣기 바란다. 그리고 해당 력사자료를 더 발굴하여야 한다. ”

지난 8월 4일, 장춘시제1자동차조선족로인협회 활동실에서 열린 윤수범 문집 《로법관의 로후》 출판기념회에서 장춘시조선족차세대관심사업위원회 오상금 집행주임은 고 윤수범선생이 장춘시 조선족 로인협회와 차세대관심사업위원회 등 조선족 단체, 단위들에 부탁한 일화를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길림시 창읍구 교외에 위치한 화피창렬사릉원에는 60여년전 길림지구의 해방을 위해 목숨을 바친 동북인민해방군 독립 6사의 654명(아직 무명 렬사 184명) 조선족렬사들의 넋이 고이 잠들어있다.

오상금은 또 “윤선생이 생전에 ‘해남도 조선인 천인갱’이 위치한 상세한 주소, 역이름 등을 알려주면서 당지 정부와 당지의 력사를 잘 아는 사람을 찾아 ‘천인갱’의 력사자료도 더 완벽하게 발굴해야 한다.”고 부탁했다고 전했다.

‘해남도 조선인 천인갱’은  2차대전 시기인 1943년, 일본침략자들이 조선반도에서 청년‘정치범’ 1,000여명을 해남도 삼아에 붙잡아다 도로와 철도, 비행장 수건 등 고역을 시키고 투항하기 직전 삼아시 삼라촌의 황막한 언덕에 집단 살해한 력사죄증이다.

고 윤수범선생은 생전에 연변주검찰원 검찰장, 연변주법원 원장, 길림성인대 내무사법위원회 부주임위원 등 직무를 력임하고 1999년 청장급 순시원으로 정년퇴직했다.

퇴직 후 윤수범선생은 민족력사문제에 대한 견해를 비롯하여 자신의 법률인생, 소수민족간부에 대한 견해, 민족에 대한 사랑, 멋진 로후생활, 병마와의 싸움,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등 국내 신문, 잡지, 방송에 발표했던 문장들을 집대성하여 35만자에 달하는 문집으로 재집필, 지난 7월초 연변조선족자치주중급인민법원에 의해 《로법관의 로후》로 내부 출판되였다.

이날 기념회 행사는 장춘시조선족로인협회와 장춘시조선족차세대관심사업위원회에서 공동 주최하고 윤수범선생이 회원으로 몸을 담았던 장춘시경제기술개발구조선족로인협회와 장춘애청애독자클럽에서 공동 주관했다. 행사에는 주최단위와 주관단위의 회원, 장춘시 조선족 단위, 단체 대표, 가족 대표 등 120여명이 참가했다.

고 윤수범선생이 생전에 병상에서 문집을 보다.

기념회는 저자 윤수범선생과 책소개, 축사, 윤수범선생의 생전 동영상 방영과 추모 발언, 그가 작곡, 작사한 노래 애창, 시랑송으로 펼쳐졌다.

발표자들은 특히 윤수범선생이 퇴직 후 변호사, 법률고문 신분으로 선후로 돈화림업국 림모 계약분규사건, 장춘공항 벌금사건, 길림시 화피창렬사릉원 보수관리 등 문제를 해결한 사실과 ‘해남도 조선인 천인갱’ 자료 발굴에 들인 공, 로후에 컴퓨터와 운전 기술을 익힌 대범함, 노래를 작사, 작곡하여 친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 재능, 죽음에 초연했던 정신력 등 로법관으로서의 윤선생의 빛나는 업적과 로인들의 훌륭한 본보기로서의 그의 풍부한 로후생활을 돌이켜보았다.

참석자들은 회고를 통해 조선족사회에 큰 힘과 믿음을 주었던 윤선생을 가슴깊이 추모하면서 그의 작고는 “크나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참석자들은 윤수범선생이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 없고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았다고 높이 평가했다.

그러면서 조국과 인민에 대한 그의 충성심, 민족의 발전과 부흥을 위해 종신 분투한 드높은 사명감, 온갖 고난과 질병에 대한 그의 락관정신 등 그의 고결한 인격과 품성을 따라배워 로인들의 정신생활을 풍부하게 하면서 민족의 문화와 민족의 정기를 고양시키자고 인식을 모았다.

기념회에서는 재장춘 조선족 단위, 단체들에 책을 증정했다.

《로법관의 로후》는 연변과 장춘에서 출판식을 준비하던중 윤수범선생이 타계, 그의 생전에 출판식을 가지지 못한 아쉬움을 남겼다. 윤수범선생은 지난 7월 14일, 지병으로 치료에 효험을 보지 못하고 7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0

관련기사 :
 
연변부동산
21세기중국정보사이트-백두넷
한길넷